[정혜영의 근대문학을 열다] 조선의 '로빈슨 크루소'는 왜 축약 번역되었나

입력 2015-05-02 05:00:00

최남선.
최남선.

한국 장년층의 향수를 자극하는 것 중에 계몽사에서 나온 전체 50권의 '소년소녀 세계명작전집'이 있다. 어린이를 위한 동화가 드물었던 1960, 70년대 한국에서 붉은색 표지의 이 전집은 말 그대로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다. 그러나 이 전집에 포함된 작품 중에는 '아라비안나이트' '로빈슨 크루소' '그리스 신화' 등 원작 자체가 어른을 대상으로 한 것들도 꽤 있었다. 이 작품들의 경우, 근친상간, 문명과 야만, 인간과 신의 문제에 대한 철학적 추구 등 어린이가 소화하기 힘든 내용은 모두 생략하고, 어린이가 읽기 쉽도록 새롭게 구성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힘든 작업을 누가 한 것일까. 당연히 번역자이다. 1719년 영국에서 발표된 다니엘 데포의 '로빈슨 크루소'가 어린이들이 읽기 쉬운 형태의 문장으로 한국어로 재구성되어 나오는 모든 과정에 번역자가 관여했다. 이처럼 '번역'이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듯 '타 언어'를 '모국어'로 기계적으로 옮기는 과정을 넘어서 '타 문화'를 '우리 문화'와 '독자의 문화'에 맞도록 '조정'하는 역할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1910, 20년대의 조선은 서구의 근대 문물이 일본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던 시점이었고, 이 시기 '번역'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일본은 oxygen(酸素, 산소), hydrogen(水素, 수소)과 같은 과학적 용어부터 ego(自我, 자아), social(社會, 사회) 등의 개념적 용어까지 조선 또는 동양에는 존재하지 않던 모든 새로운 '서양적' 개념을 번역해 내고 있었다. '아희놈'과 '아희새끼'라는 용어 외에는 어린 아이를 표현할 별다른 용어가 없었던 조선에 '어린이' '소년' '소녀' 등 어린 아이를 개별적 인격체로서 인정하고 존중하는 용어가 일본을 통해 조선에 새롭게 이입된 것도 바로 이 시점이었다. 언어의 번역과 더불어 새로운 의식도 함께 수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최남선이 잡지 '소년'에 발표한 '로빈슨 무인절도표류기'(1909)는 조선에 소개된, 최초에 가까운 '로빈슨 크루소'일 것이다. 물론 그 내용은 당시 조선 상황에 맞게 축약되고 변형됐다. 왜 최남선은 소설 내용을 완역하지 않고 '축약' 형태로 발표했던 것일까? 거기에는 계몽사 발간 소년소녀 세계명작 시리즈처럼 어린이를 독자로 간행했기 때문인 것과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1900년대 초의 '소년'은 지금과는 달리 젊은이들, 근대적 신문명으로 의식을 무장한 새로운 세대를 의미하고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 조선의 젊은이, 혹은 조선의 독자 대중에게 로빈스 크루소의 내용 전체를 읽어낼 수 있는 지적 기반을 갖고 있지 않았다.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들은 타 문화와 우리 문화, 타 언어와 모국어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판단하고, 그 판단에 따라 타 문화를 어떤 방식으로 수용할 것인지를 차분하게 결정할 만한 심리적 여유도 없었고, 주체적으로 판단할 능력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아울러 식민지 조선은 '서양'을 번역하고 옮겨올 '언어적' 기반조차 갖추고 있지 못했다. 이런 상태에서 불가피하게 개항을 맞은 조선의 지식인들은 '일본이 번역한 서양'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식민지를 경험한 모든 나라의 지식인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비극이었다. '제국 일본'이 '식민지 조선'에 끼친 영향을 인정할 수도 없고 부정할 수도 없는 현대 한국 지식인의 갈등과 고뇌는 여기에서부터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정혜영 일본 게이오대 방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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