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가가치세 도입이 유신 종말 초래?
종부세 도입으로 노무현정부 실권?
'증세로 정권 몰락' 설명은 단순 논리
누군가 정치적 의도로 만든 느낌 강해
정부가 담뱃값 인상, 소득세 증수(增收), 주민세'자동차세 인상 검토 등을 추진하면서 갑자기 증세 관련 논의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언론 보도의 기조는 '증세 정치는 필패'라는 것이다. 멀리는 1773년 보스턴 차 사건을 사례로 들기도 하고, 가깝게는 캐나다의 멀로니 총리가 연방부가세를 도입한 후 그가 이끈 보수당이 선거에서 참패한 사례를 언급하기도 한다. 당시 보수당은 169석을 차지한 거대 정당이었으나 1993년 선거에서 2석을 얻는 데 그쳤다. 대처 영국 총리의 사임이 인두세 도입 때문이었다는 내용과 일본 자민당의 패배 뒤에는 항상 증세가 있었다는 내용도 종종 언론에 오르내린다.
언론이 자주 언급하는 사례는 한국에도 있다. 박정희정부의 부가가치세 도입과 노무현정부의 종합부동산세 도입이다. 언론 보도의 논리는 이렇다. 부가가치세 도입은 장기집권과 독재 등 정치적 요인과 맞물려 민심의 저항을 불러와서 결국 유신체제의 종말을 초래했으며, 종합부동산세 도입은 '세금폭탄론'을 내세운 기득권 세력의 공격과 그것에 영향을 받은 민심의 이반을 야기하여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의 재집권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증세 없는 복지'에 집착하는 것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부가가치세 도입 때문에 몰락하는 과정을 퍼스트레이디로서 지켜보았고 노무현정부 때는 '세금폭탄' 공세를 직접 이끌면서 조세저항의 위력을 체험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보도되기도 했다.
'증세의 저주', 그것은 분명 한국 정치인과 언론인의 생각을 사로잡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생각에는 얼마나 사실적 근거가 있을까? 필자가 조사한 바로는, 부가가치세 도입이 박정희 정권의 몰락을 초래했다는 주장의 근거는 "부가가치세에 대한 나빠진 여론이 부마항쟁 당시 시위를 자극했다. 구호에도 부가가치세 폐지가 언급됐다"는 식의 회고담이나, 1978년에 치러진 제10대 총선에서 공화당이 의석수에서는 승리했으나 득표율에서 야당에 1.1%포인트 뒤지는 결과가 나온 것을 두고 부가가치세 도입에서 원인을 찾는 다소 주관적인 해석밖에 없다. 종합부동산세의 경우도 비슷하다. 그것이 노무현정부의 쇠락과 열린우리당의 재집권 실패를 초래했다는 인식은 정치권을 중심으로 형성된 가십성 이야기에 근거를 두고 있을 뿐이다. 부동산 부자와 강남 지역 주택 소유자의 조세저항은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 일반 국민의 동조가 뒤따랐는지, 그 때문에 열린우리당이 재집권에 실패했는지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부가가치세 도입이 유신체제의 종말을 초래했고 종합부동산세 도입이 노무현정부의 실권(失權)을 가져왔다고 단정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논리다. 그렇게 인과관계를 설정해도 되는지부터 의문이다. 박정희 정권의 몰락과 관련해서는 장기집권과 억압적 통치, 석유 위기로 인한 경기침체와 민생불안, 노동탄압, 김영삼 총재 제명 등 부가가치세 도입보다 훨씬 선명한 원인들이 즐비하다.
노무현 정권의 쇠락과 관련해서도 각종 재보선에서의 연이은 참패, 한미 FTA 추진과 대연정 제안으로 인한 지지층 민심 이반, '집값은 반드시 잡겠다'고 단언하고도 적기(適期)에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지 못한 데서 오는 실망감 확산 등, 먼저 꼽을 수 있는 원인이 많다.
훨씬 중요한 요인들을 제쳐놓고 세금 하나로 정권의 몰락을 설명하는 단순논리가 이렇게 널리 퍼진 것은 정말 이상하다. 강만수 전 장관은 회고록에서 부가가치세 때문에 유신체제가 무너졌다는 주장은 10'26사건 이후 공화당에서 제기한 것이라고 증언한다. 이 말이 맞다면, 당시 공화당은 왜 그런 주장을 제기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혹시 갑자기 절대 권력자였던 주군을 잃고 혼란과 두려움에 빠진 나머지 희생양을 찾다가 '부가가치세 원인론'을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모든 책임을 부가가치세라는 비인격체에 돌릴 수만 있다면 자신들은 빠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종합부동산세의 경우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노무현정부 임기 중에도, 임기 후에도 종합부동산세에 대한 여론조사의 지지율은 무척 높았다. 납세자의 자진 신고율도 100%에 육박했다. 납세자들이 세금도 잘 냈고 여론 지지율도 높았던 세금 때문에 노무현정부가 몰락했다고 하면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종합부동산세 원인론'도 누군가 어떤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냈다는 느낌이 강하다. 결론은 이렇다. '증세의 저주'란 없다.
전강수(대구가톨릭대교수 경제통상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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