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通] 대구시교육청 인문학 전도사 한준희 장학사

입력 2015-04-24 05:00:00

"인문도서 기부 릴레이 대구발 '아이스 버킷 챌린지' 전국으로 확산 예감 들어요"

◆한준희 장학사는 1982년 대구 심인고 졸업 후 시인, 문학가를 꿈꾸며 경북대 국어국문과 입학했다. 졸업 후 경명여고(1990~2011년)에서 국어를 가르치다 교육청과 글쓰기, 독서지도가 인연이 되어 대구시교육청 장학사로 들어갔다. 전국 최초 독서교육 전담 장학사 임용이었다. 2013년부터 인문학 활성화를 위한 TF를 가동해
"10년 후 대구는 한국의 피렌체가 되어 있을 겁니다." 10년 넘게 대구 교단에서 인문학 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대구시교육청 한준희 장학사. 대구시교육청 제공
◆한준희 장학사는 1982년 대구 심인고 졸업 후 시인, 문학가를 꿈꾸며 경북대 국어국문과 입학했다. 졸업 후 경명여고(1990~2011년)에서 국어를 가르치다 교육청과 글쓰기, 독서지도가 인연이 되어 대구시교육청 장학사로 들어갔다. 전국 최초 독서교육 전담 장학사 임용이었다. 2013년부터 인문학 활성화를 위한 TF를 가동해 '경연' '집현전' '인문학 100-100-1 프로젝트' 같은 인문학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저서로는 '문학의 숲으로 떠나는 여행' '13+1' '연꿈술사' 등이 있다.

물적 성장의 정점(頂點)과 정신문명 위기의 임계점에서 만난다는 인문학. '마음의 근육' 인문학의 인기가 불끈하고 있다. 세계 각국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구글은 최근 신입사원 6천 명 중 5천 명을 인문학 전공자로 뽑았고,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출발이 '인문학과 과학의 접점'이라고 말한 바 있다. 중국에서도 '공자가 부활했다'고 말할 정도로 각종 매체에서 '고전의 재해석'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제 한국 사회에서 인문학은 최고의 키워드. 어디서든 인문학을 말하지 않으면 한 축에 못 들 상황이 됐다. 현재 인문학은 미디어 매체, 강연, 출판에서 거대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이런 요란한 시장에서 살짝 비켜나 교육현장에서 묵묵히 인문학을 지켜온 사람이 있다. 교사로, 정책 입안자로 독서와 글쓰기 활성화에 나선 지 벌써 10년째. 대구 교육계의 인문학은 모두 그의 손을 거쳐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지역 교단에서 인문학 전도사를 자처하는 대구시교육청 한준희(50) 장학사를 만나봤다.

◆10년간 교단서 독서토론, 글쓰기 지도

어느덧 대구 교육행정의 정책 입안자로, 실무자로 잔뼈가 굵은 그이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장학사로 행정가로 자신의 진로가 열릴 줄은 몰랐다.

"10여 년 전 국어교사로 재직할 때는 가르치는 게 좋았고 그게 전부였죠. 그런데 수업에 뒤처지는 아이, 나보다 자질이 뛰어난 아이를 위해 내가 해줄 게 없다는 한계를 깨달았어요."

이런 한계에 대한 해법으로 그는 인문학을 떠올렸고, 이때부터 독서'토론'글쓰기에 대한 단상들을 글로 풀어내고 학생들을 지도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대학입시에 논술이 반영되고 글쓰기 열풍이 불면서 그의 작업도 바빠졌다. 지금은 논술이 사교육의 주범으로 몰려 폐기 직전 신세가 돼버렸지만, 당시 교사들이 논술에 거는 기대는 무척 컸다. 통합논술이 자기주도학습의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2008년도에 논술이 대폭 축소되면서 한 장학사는 정치논리에 휘둘리는 교육 현실에 크게 실망했다.

싹이 잘린 인문학 육성의 비극. 그는 대안을 '책쓰기 프로그램'에서 찾았다. 이때 나온 작품이 2009년 경명여고에서 출간된 '13+1'이었다. 대구시교육청이 학생글쓰기운동을 추진한 이후 첫 작품이기도 한 이 책은 당시 여학생들의 꿈, 진로 고민, 성장통을 재미있게 담아내 화제가 됐다.

◆장학사 부임 후 인문학에 전념=책쓰기 프로젝트를 계기로 교육청과 인연을 맺은 한 교사는 그 후 교육청과 몇몇 사업을 추진하다 2011년 장학사로 들어가게 된다.

10년 동안 정들고 익숙했던 자리를 떠나 교육행정이라는 낯선 자리로 옮겨가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평소 꿈꿔왔던 글쓰기, 독서에 대한 지도를 정책으로 구체화할 수 있는 기회라 여겨 흔쾌히 나섰다.

하루아침에 관리 대상(교사)에서 관리자(장학사)로 신분이 바뀌면서 웃지 못할 일들이 많이 생겨났다. 그 해프닝은 역설스럽게 바로 지금까지 적(籍)을 두었던 교사들과의 갈등이었다.

"막상 장학사가 되고 보니 관료와 일선 교사들 사이에 큰 괴리감이 있었어요.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죠. 정책과 현장 사이의 마찰이었으니…."

한 장학사는 일일이 교단을 찾아다니며 설득했고 실무에서 나오는 목소리를 행정에 반영하려 애썼다. 그런 과정을 거쳐 신뢰가 회복되었고, 초창기 갈등을 빚었던 교사들이 지금은 그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었다.

2013년부터 시교육청에서는 인문학 활성화를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가동했다. 정책팀과 자료팀으로 나뉜 TF는 토론을 거쳐 정책의 결과물들을 하나씩 풀어냈다.

첫 번째 나온 프로그램이 교사 인문학 모임인 '경연'(經筵)과 학생 중심 인문학 세미나인 '집현전'이다. '사람을 따뜻하게 만드는 인문학'을 취지로 열린 인문학 독서 나눔 한마당도 작년에 야심 차게 기획했던 행사다. 독서 토론 프로그램으로 기획되었다가 교사'학생들의 반응이 좋아 장기 프로그램으로 발전한 행사다.

◆교단 인문학 프로젝트 대성공=대구시교육청의 인문학 성과를 말할 때 올해처럼 의미 있는 해도 드물다. 수많은 대형 프로젝트들이 쏟아져 나와 각계의 주목을 받았고, 일부 캠페인은 범시민운동으로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주목받은 사업은 '인문도서 기부 릴레이 선포식'이었다. 매일신문사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주관하고 시교육청과 NH대구농협이 후원하는 이 사업은 지역사회 개인, 기관, 단체가 학생들에게 도서를 기부하는 사업이다. 작년에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끌었던 '아이스 버킷 챌린지'처럼 대구발 도서 기부 릴레이가 전국으로 퍼져 나갈지 벌써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 이 행사를 위해 시교육청은 초'중'고별 추천 인문도서 359권을 발표했다.

책 100권을 읽고 100번 토론한 뒤 그 결과물을 1권의 책으로 남기는 '인문학 100-100-1 프로젝트'도 타 지자체에서 관심의 대상이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동서양 인문 고전 도서 선정이 이루어졌고, 다양한 인문교육 관련 프로그램도 소개했으며, 이를 실현할 '인문학서당'도 지속적으로 열어갈 계획이다.

내년부터 지방공무원 승진 심사 때 도입되는 '인문학 이수제'와 신규 교원 채용 시 인문학적 소양을 평가하는 제도는 전국적인 화제. 신라시대 '독서삼품과'(讀書三品科)를 연상시키는 이 기획은 교육자들이 고전을 통해 감성, 지성을 충전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제도다.

이렇듯 대구의 인문학 상승엔 시류의 운도 크게 따라주었다. 박근혜정부는 문화융성을 국가 정책 코드로 삼고 대통령 직속으로 인문정신문화연구특위를 설립했다. 특위의 인문학 7대 육성과제에 '초'중등 인문과정 활성화'가 포함되었다.

특히 특위의 모든 행정을 총괄하고 뒷받침하는 '초중등인문소양교육센터'가 대구에 세워짐으로써 한국 교단에서 대구 인문학의 위상을 한껏 뽐낼 수 있었다.

초중등인문소양교육센터가 설립되고 사무소가 대구로 오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도 재미있다. 처음 문화체육관광부 인문학 육성 계획에는 '초중등 인문학 육성안'이 빠져 있었다. 마침 문화부 회의에 참석했던 한준희 장학사가 일선 학교에 인문학 도입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그 안건이 문화부와 교육부의 협의를 거쳐 초중등 인문학 정책으로 반영된 것이다.

◆10년 후 대구는 인문학의 요람?=지금 대구 교단에서 펼쳐지는 인문학 프로그램은 10년 후 대구를 어떻게 변화시킬까. 아마도 훨씬 훈기가 도는 도시가 되어 있지 않을까. 현재 시교육청에서 펼치는 인문학 관련 사업은 그 양과 질에서 타 지역을 압도한다. 우선 최근 선포된 인문도서 기부릴레이는 지역을 넘어 전국으로 확산될 분위기다. 수시로 걸려오는 문의 전화와 견학 요청이 이를 입증한다.

대구 인문학의 장점은 무엇보다 튼튼한 '기초 체력'이다. 현재 2천500개가 넘는 독서, 글쓰기, 토론 동아리는 인구 비례로 전국 최대 규모. 이런 양적 성장은 한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동안 정책을 수립한 교육청과 기획을 일선 현장에 잘 접목시킨 교사들의 공로인 것이다.

"대구 인문학 정책은 진보교육감들에게 특히 관심이 많습니다. 견학 신청 대부분은 진보교육감 당선 지역입니다. 대구의 인문학 정책이 그만큼 선도적이고 혁신적이라는 뜻이겠지요."

지금 지역 교단에서 싹을 틔운 인문학은 10년 후 대구가 '한국의 피렌체'로 우뚝 서는 데 훌륭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

한상갑 기자 arira6@msnet.co.kr

◇인문학 훼손시키는 얌체 상술

인문학이 시대의 코드로 떠오르면서 이를 상술, 처세에 이용하려는 얌체들이 많이 늘고 있다. 이들의 이런 행태는 본인 망신은 물론 학문의 본질을 훼손시키고 유통구조를 왜곡할 수도 있다. 인문학을 '인분학'(人糞學)으로 변질 시키는 고약한 사례들을 정리해본다.

◆무늬만 인문학 서적들=포털 검색창에 '인문학'을 검색하면 수십 권의 책들이 떠오른다. 이들 중 상당수는 기존의 교양서, 자기계발서에 표지만 바꿔 단 경우가 많고 주제에서 벗어난 함량 미달의 책들이 상당수다.

◆가짜 인문학 강사들 등장=인문학 강의에 고액의 강사료 시장이 형성되면서 너도나도 강사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기존에 교양, 처세 강의 등 인문학과 무관한 강의를 하던 인사들이 하루아침에 인문학 강사로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인문학도 족집게 강의?=기업들이 취업 면접에서 인문학적 소양을 강조하면서 이른바 '수험 인문학'도 등장했다. 가볍고 대중적인 철학서, 역사서 몇 권을 동영상 또는 종합서로 편집해 수험용으로 판매하기도 한다.

인문학 열풍의 한쪽에서 박탈감을 느끼는 부류들이 있다. 바로 인문계 재학, 졸업생들이다. 이런 사회의 열풍이 정작 자신들의 진로와 무관한 현상이라는데 자괴감은 더 커진다. 대기업 취업 과정에서 스펙용으로 전락해 버린 인문학의 현실 앞에서 그들은 또 한 번 낙담한다.

한상갑 기자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