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현철의 별의 별 이야기] 영화 '장수상회' 배우 박근형

입력 2015-04-23 05:00:00

70살 연애 초보 성칠(박근형)과 그의 마음을 뒤흔든 꽃집 여인 금님(윤여정),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 연애를 응원하는 사람들까지. 첫사랑보다 서툴고, 첫 고백보다 설레고, 첫 데이트보다 떨리는 특별한 러브 스토리를 그린 영화 '장수상회'(감독 강제규)에서 연애에 서툰 할아버지의 모습은 물론, 후반부 드러나는 반전과 마주하는 관객은 박근형의 연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연기 대선배는 역할 창조에 공을 들이고, 노력했다.

일흔다섯의 베테랑 배우 박근형은 '장수상회'에서 "치열하게 연기했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연기하는 게 당연하다"는 말과 함께다.

과거 1950년대 연극을 했었을 때 연극학도처럼, 또 이전 작품들에서 보여준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신들린 연기'를 선보였다. 후반부 반전의 지점에 나타난 멍한 성칠의 얼굴이 관객의 뇌리에 깊게 박혔다.

"'장수상회' 시나리오를 보고 '내 인생 마지막에 온 기회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예전에 연극을 배울 때 '감동이 없는 극은 극이 아니다'고 배웠거든요? 최근 출연한 작품에서 감동까지 연결되는 건 거의 없었어요. 하지만 '장수상회'는 10대와 30대, 70대 할 것 없이 사랑이라는 공통점을 통한 공감대가 있어요. 세대별로 봐도 각양각색의 감동이 크지 않나요?"

오랜만에 제대로 적극적인 로맨스도 펼쳐야 해 베테랑을 설레게 했다. 아무리 나이가 들었다고 해도 사랑에 빠진 사람의 설렘은 당연한 감정이었다.

"로맨스 연기가 많이 설레었다"는 박근형은 상대 역이 드라마 '장희빈'과 '꼭지'에서 이미 호흡을 맞췄던 윤여정이라서 더 반가웠다. "둘이 눈빛만 봐도 알 정도였다"고 만족해했다. 추가적인 어떤 대화는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

"'장희빈'을 찍을 때 윤여정은 정말 총명하고 영리했어요. 얼굴도 예쁘고 눈망울도 초롱초롱했죠. 그때부터 연기 호흡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이후 몇 번 함께 연기한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본격적으로 연기를 함께한 건 오랜만이네요. 물론 함께 있으면 보통 내가 야단을 맞아요. 윤여정은 어렸을 때부터 아주 총명하고 생각도 반짝반짝하고 진취적이었던 반면에, 난 약간 보수적이어서 서로 농담이 안 통할 때가 있기도 했지만요."(웃음)

윤여정을 제외하고 나이 어린 후배들은 대선배와의 호흡이 어려웠을 것도 같다. 특히 아이돌그룹 엑소의 찬열은 더 심했을지도 모르겠다.

박근형은 "아마 그랬을 것"이라고 인정했다. 다만 후배들이 '자기만 연기하나?'라고 오해할 수 있어 리허설 때 충분히 보여줬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리허설과 본 촬영을 똑같이 했다. 상대 배우들이 생각의 여지를 갖게 하기 위해서다. 이는 박근형 연기 사전에 애드리브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근형은 서로 간 약속을 깨는, 애드리브를 자주 하는 배우들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요즘은 애드리브가 그렇게 성행할 수가 없어요. 배우가 애드리브를 쳐서 영화를 살려줬다는 엉터리 같은 소리를 많이들 하는데 어처구니가 없다고 생각해요. 연기는 배우 간 약속인데 말이죠."

그는 '쪽대본'에 대한 아쉬움도 털어놨다. "옛날에도 대본이 늦게 나온 적은 있지만 쪽대본은 아니었다. 완성된 대본으로 나와 배우들이 편안했다. 지금은 연륜 있는 이들은 극복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는 앵무새밖에 안 된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말 그대로 고난의 행군"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극 중 손녀 아영(문가영)의 남자친구 민성을 연기한 엑소의 찬열에게는 조언을 건넸다. "사실 엑소라는 그룹을 처음에는 몰랐다. 내가 아는 아이돌은 슈퍼주니어의 동해(드라마 '판다 양과 고슴도치'에서 호흡을 맞췄다)밖에 없었다"고 한 박근형은 "찬열이가 그 나름 연기를 꽤 잘했다"며 "조금 더 연기를 잘하고 싶으면 좋은 선배들을 만나 연기를 계속하면 좋겠다. 좀 더 높은 수준의 연기를 하고 싶으면 연극에도 관심을 두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현재 MBC 수목극 '앵그리맘'과 케이블채널 tvN '꽃보다 할배-그리스 편'으로 시청자들을 찾고 있는 박근형. 조만간 영화 '그랜드 파더'와 '명탐정 홍길동' 등으로도 관객을 찾는다. "어렸을 때부터 연극을 하면서 역할에 욕심이 많았다"는 그는 "남이 하는 역할까지 나로 대입해서 생각하기도 했다. 연기를 생각하고 연기하면 가슴이 뛴다"고 웃었다. 여전히 쉼 없이 종횡무진 할 것이라는 예고이기도 하다.

시니어 여행 예능의 주역이 된 그는 '로맨티스트'라는 별명도 얻었다. 박근형은 "평상시 나는 그냥 평범하다. 별명이 '박씨 아자씨'다. 강한 역을 맡다 보니 까칠해 보이게 됐는데 좋은 이미지가 됐다. TV에서 로맨티스트로 나오니 아내가 웃더라. 여행 때문에 멀리 떨어져 있었고 수술한 아내가 걱정돼 전화했을 뿐인데"라며 의도치 않은 캐릭터로 설정된 사실에 멋쩍어했다. 그래도 예전부터 함께 연기로만 인사했던 이들과 외국에 나가 추억을 쌓는 게 정말 행복하다는 듯 한동안 여행 이야기에 푹 빠져 즐거워했다.

박근형은 '꽃할배'가 인기인 것처럼 영화에서도 나이 든 이들이 함께하는 작품들이 계속 많아지고 인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노년 배우 자원이 많은데 제대로 활용이 되지 않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처럼 나이 든 이들과 어린 사람들이 출연해 세대 간 어울리는 극본이나 시나리오, 대본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나만의 인생 목표가 뭐냐고요? 내가 필요 없어서 부르지 않을 때까지 역할에 대한 욕심은 계속될 것 같아요. 또 고향에 조그만 서당 같은 곳을 만들어 제 연기를 향한 욕심과 열정, 연극 발전에 관해 아이들과 둘러앉아 이야기하고 싶은 게 노년의 꿈이기도 하고요."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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