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과 전망] 경남기업과 랜드마크72

입력 2015-04-22 05:00:00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때문에 주목받는 부동산 물건이 하나 있다. 베트남 수도 하노이 서쪽 신도시 지역에 우뚝 선 '랜드마크72'가 그 주인공이다. 경남기업의 사운을 걸고, 건설인 성완종의 인생을 걸고 지은 초대형 복합건물이다.

건축 비용은 물론 현재 시장 추정 가격도 1조원을 넘는다. 서울 여의도 63빌딩보다 100m가 더 높다. 최고 72층(350m) 높이의 복합타워동과 48층짜리 주상복합 건물 2개 동으로 형성돼 있다. 연면적은 60만8천㎡로, 63빌딩의 3.5배나 된다. 이름 그대로 베트남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제일 높은 건물이다.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이 동남아 국가로는 처음으로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직접 한복을 입고 패션쇼 무대 위를 걸어서 화제가 된 바로 그 건물이기도 하다. 짓는데만 6년이 걸린 '작품'이다.

베트남에는 우리 기업이 지은 상징적인 건물이 적지 않다. 20년 가까이 하노이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했던 '대우호텔'도 그중 하나다. 1996년 세계경영을 내걸었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작품으로, 대한민국 대사관이 입주해 있었고 본국의 귀빈이 오면 으레 묵었던 유서깊은 곳이다. 역대 대통령들이 베트남에 오면 당연히 묵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베트남 업체 소유가 됐다. 그 후 대사관은 대우호텔을 떠나 65층짜리 '롯데센터 하노이'에 입주했다. 2009년 착공해 5년 만에 완공된 롯데센터는 호텔과 백화점 쇼핑센터 등으로 구성된 대규모 건물이지만 랜드마크72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베트남 경제 중심지인 호찌민에도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건물이 있다. 코트라를 비롯해 우리 기업 베트남 법인 사무실이 빽빽이 들어서 있는 '다이아몬드 프라자'나 금호그룹이 지은 '금호 아시아나 프라자'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두 건물 모두 최고는 아니다. 호찌민시의 대표 건물은 현대건설이 시공한 68층짜리 '비텍스코 파이낸셜 타워'이다. 시공은 우리 업체가 했으나 소유는 베트남 금융그룹인 비텍스코사이다. 그래서 다소 김이 샌다.

성 전 회장의 죽음에 가려 주목받지는 못하지만 우울한 뉴스가 하나 있다. 바로 경남기업의 상징물인 '랜드마크72'가 외국기업의 손에 팔려나갈 위기에 놓이게 됐다는 것이다. 경남기업은 이 건물 준공 후 임대 실적 부진과 경영 부실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어왔다. 결국 경남기업의 부채가 1조7천억원에 이르는 등 정상 경영이 어려운 지경에 이르자 성 전 회장은 필생의 꿈의 결정체인 이 건물 매각에 나섰다고 한다. 카타르투자청과는 가격협상도 오갔으나 경남기업은 1조원 이상을 부르고, 카타르투자청은 7천억원에서 9천억원 정도를 주겠다고 해서 타결을 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는 바람에 중단됐다는 것이다. 카타르투자청은 다시 이 건물에 눈독을 들이는 중이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성 전 회장의 죽음과 상장 폐지 등으로 궁지에 몰린 경남기업이 이 건물을 외국 자본에 헐값으로 넘기는 것은 아닌가를 우려하고 있다. 그게 현실로 닥친다면 참으로 허망한 일이다. 대우호텔의 전철을 랜드마크72가 다시 밟게 할 수는 없어서다. 이제 겨우 다시 살아나려는 베트남 붐에도 찬물을 끼얹을까 걱정이다. 10만 명에 이른다는 베트남 교민들 사기에도 악영향이 우려된다.

하노이의 발전과 팽창은 그 속도가 무섭다. 전 세계 어느 나라 수도보다 변화가 빠른 곳이 바로 하노이다. 그곳의 '대장' 건물이 우리 기업 소유라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 아닌가. 또 짓는데만 최소 5~6년, 전체 프로젝트에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한 초대형 건축물을 형편없는 가격에 외국 자본에 내다 파는 것은 국부의 손실이기도 하다.

언젠가 하노이를 다시 찾았을 때 랜드마크72 건물에서 우리 기업의 이름이 빛나고 있으면 좋겠다는 나이브한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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