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로 점령한 거리의 악사 "대구의 골목을 노래하라"
거장 건축가 크리스토퍼 알렉산더는 '도시의 축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일상에서는 표출할 수 없는 내적인 에너지를 발산하기 위해 사람들이 환상적인 이벤트를 꿈꾸는 것처럼, 도시도 도시만의 꿈이 필요하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왜 거리에서 춤을 추지 않는 것일까? 거리에서의 춤은 기쁨을 표현하는 최고의 수단이다. 그러나 근대화되고 복잡해져 버린 현대사회에서는 이와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사라졌다." 그리고는 이런 제안을 던진다. 바로 '거리의 악사'가 필요하다는 것. 이들의 연주가 사람들을 춤추게, 궁극적으로는 도시가 꿈을 꾸게 만든다는 얘기다. 그 무대는 곳곳의 노천극장이고, 무수한 거리이며, 넓은 광장이다. 대구에도 그런 공간이 있다. 버스킹 골목, 동성로다.
◆버스킹 상설 공연장, 동성로
지난달 27일 저녁 대구 동성로. 오랜만에 제법 따뜻한 봄 햇볕을 쬔 도심은 밤늦게까지 포근함을 잃지 않았고, 더구나 금요일 밤이라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래서 겨우내 휴식기를 가졌다가 다시 활동을 시작한 이들도 여럿 발견할 수 있었다. 행인들을 그대로 관객으로 삼는 거리의 악사, 버스킹 연주자들이다.
버스킹(busking)이란 뮤지션들이 거리에서 금전함(tip box)을 앞에 두고 행인들을 상대로 공연을 하는 것을 가리킨다. 금전함에 관람료를 받아 생계를 해결하고, 공연 실력도 쌓으며, 덤으로 불특정 다수의 행인과 교감하는 행위다. 다양한 거리 예술이 버스킹에 포함되는데, 음악 연주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요즘 버스킹은 금전함의 유무를 떠나 즉흥적인 거리 공연 그 자체를 가리키는 용어로 자리 잡고 있다.
대구에는 100여 팀이 넘는 인디 뮤지션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 중 버스킹으로 시민들과 만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날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 야외공연장에서 밴드 '마쌀리나'의 두 멤버라고 밝힌 이들이 기타와 타악기 '카혼'을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가요와 외국 록 등 기성곡에다 자작곡을 섞어가며 공연을 진행했다. 금세 30여 명의 시민들이 모여들더니 그대로 관객이 됐다. 마쌀리나의 공연이 이어지던 중 인근 한 건물 앞에서는 한 외국인이 마이크를 들고 랩 공연을 시작했다. 그의 앞에도 금전함이 놓여 있었다. 버스킹이었다.
동성로 로데오 골목의 한 식당 앞에 마련된 테라스에서는 래퍼 '와이리'와 기타 연주를 맡은 '좋은남자'가 듀엣 힙합 공연을 하고 있었다. 이따금 관객들로부터 신청곡도 받으며 넉살 좋게 공연을 이어나갔다. 비슷한 시각 동성로 로데오 골목에서는 인디 뮤지션 '김캡틴'이 동료 1명과 함께 버스킹을 펼치고 있었다. 이들도 기타와 타악기 '젬베' 2인조 구성으로 연주를 했는데, 잔잔한 포크부터 경쾌한 록까지 선곡의 폭이 굉장히 넓었다. 선율을 맡는 기타와 리듬을 담당하는 타악기, 이러한 2인조 구성은 요즘 버스킹의 최소 단위로 인식되고 있다. 혼자서 통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것보다는 다양한 곡을 소화할 수 있어서란다. 물론 소수지만 혼자서 악기 연주 대신 반주 음악 파일을 틀고 노래 실력을 뽐내는 이들도 있다.
◆동성로 버스킹 명소는 어디?
동성로에는 수년 전부터 버스킹 문화가 꽃피기 시작했다. 대구의 제일 번화가이고, 그래서 관객으로 삼을 유동인구 역시 대구에서 가장 많아서다. 동성로 안에서도 특히 보행자가 많은 곳이 버스킹 장소로 선호된다. 대구백화점 앞 야외공연장, 롯데시네마 아카데미점 앞, 중앙파출소 앞은 공간이 넓어 안성맞춤이다. 교보문고 대구점 앞과 2'28기념중앙공원 옆 도로변도 잘 알려진 버스킹 장소다.
동성로 환경이 개선된 이후 떠오른 명소들도 있다. 차 없는 거리(중앙파출소~대구백화점) 곳곳에 설치돼 있는 나무 벤치는 그대로 버스킹 연주자들 또는 관객들 차지가 된다. 버스킹 연주자들은 CGV 대구한일점 앞 벤치, 대구백화점 앞 야외무대 맞은편 대구읍성 성돌 구조물 벤치, 스파 브랜드 '자라' 대구점 앞 벤치를 선호했다. 또 로데오 골목의 한 식당에서는 기다리는 손님들을 위해 쓰는 테라스를 가끔 버스킹 연주자들에게 공연 장소로 제공한다. 상점들이 문을 닫는 오후 9~10시 이후에는 동성로 곳곳 골목 어귀가 자유로운 버스킹 공연장이 된다. 수십 개 크고 작은 골목이 모여 있는 동성로의 매력이 십분 활용되는 셈이다.
◆버스킹 문화의 매력은 무엇?
대구의 버스킹 문화를 잘 보여주는 이들이 있다. 5인조 밴드이자 1천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는 통기타 동호회이기도 한 '마쌀리나'다. 소금으로 음식에 맛을 내듯이 음악으로 무미건조한 우리 삶에 참맛을 낸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맛 살리나!'. 동호회 회원들은 2009년부터 거의 매주 정기모임을 갖고 있고, 최근 대구 중구에 있는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건립기금 마련을 위한 버스킹을 펼치기도 했다. 그리고 5인조 밴드 구성의 마쌀리나도 수시로 거리에서 버스킹을 하고 있고, 2013년 6월에는 첫 미니(EP)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버스킹은 마쌀리나를 지금까지 이끈 중요한 원동력이다.
마쌀리나 멤버 임홍빈 씨는 "도심 속 버스킹은 다양한 인디 뮤지션들의 도전이자 소통 수단이다. 불특정 다수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음악을 들려주고, 음악을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들과는 SNS 등을 통한 소통이 이어진다"며 "길을 걷다가 우연히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도심 속에서 시민들에게 또 관광객들에게 특별한 기억 내지는 추억을 선사한다"고 했다.
◆다채로운 버스킹 축제 속속 동성로 입성 중
요즘 동성로를 중심으로 대구 도심에서 다양한 버스킹 축제가 시도되고 있다. 즐기려는 수요와 연주하는 공급 모두 늘고 있다는 방증이다. 우선 25일에는 버스킹 연주자들이 대구 중앙로 곳곳에서 환경을 주제로 연주를 겨루는 '지구의 날 버스킹 페스타'가 열린다. 또 요즘 10, 20대를 중심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랩'(힙합)으로 버스킹 경연을 펼치는 '래퍼레이드'가 다음 달 15일 반월당역 14번 출구 앞에서 펼쳐진다.
두 행사를 기획한 인디053의 신동우 기획팀장은 "대구에서는 매년 수백 명의 대중음악 전공자가 배출되고 있다. 이들을 포함해 자발적으로 버스킹을 펼치는 청년들, 또 그들의 팬이 되는 젊은이들이 많다. 버스킹을 통해 대구 도심을 그저 걷고 노는 공간이 아닌 새로운 예술활동의 장으로 바꿔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뮤지컬 버스킹'도 마침 뮤지컬 광장이 있는 동성로를 화려하게 수놓고 있다. 대구시는 시민밀착형 길거리 생활 공연을 활성화하고 대구의 새로운 관광상품으로 활용하기 위해 올해부터 이 사업을 시작했다. 특히 지역 뮤지컬 관련 학과 대학생들이 중심에 선다. 지역 뮤지컬 인재 양성의 취지를 더한 것이다. 김정화 계명문화대 생활음악학부 뮤지컬담당 교수는 "학생들은 수업 열 번보다 이러한 공연 한 번으로 더 많은 것을 배운다. 실전으로 실력과 자신감을 함께 쌓는다"고 했다.
뮤지컬 버스킹은 올해 11월까지 동성로를 포함해 동대구역 광장,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엑스코 등 대구 도심 곳곳에서 펼쳐진다. 이달 동성로 공연 일정은 23일 오후 1시 CGV 대구한일점 앞, 오후 2시 30분 중앙파출소 앞, 30일 오후 4시 중앙파출소 앞 및 오후 6시 30분 CGV 대구한일점 앞이다.
글'사진 황희진 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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