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는 가장 멋진 연인" 포항성모병원 자원봉사 이상숙 씨

입력 2015-04-15 05:00:00

"반갑습니다. 이상숙 헤레나라고 합니다."

팔순을 바라보는 할머니(78)는 포항성모병원에서 환자들을 위한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올해로 32년째다. 병원 설립이 38년째니, 병원과 인생 후반기의 궤를 같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녀 같은 밝은 미소가 아름다운 할머니는 사진촬영이 부담스러운지 내내 시선을 한 곳에 두지 못했다. 그래도 봉사활동의 보람을 얘기할 때는 확신에 찬 목소리와 신념의 눈빛으로 정면을 바라봤다.

"제가 건강하고 행복한 비결이 바로 이겁니다. 제가 좋아서 한 일이고 앞으로도 계속할 겁니다. 다만 몸이 예전 같지 않다 보니, 저의 도움을 받는 이가 행여 불편할까 그게 걱정입니다."

이 할머니는 요즘 환자 수술실에 들어가는 용품을 만드는 데 손을 보태고 있다. 이전에는 이동도서'외래'약국'일반검진'환자방문 등의 분야에서 활동했지만 힘이 부쳐 환자들의 필요물품을 만드는 봉사실에서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할머니는 그래도 봉사는 뭐니 뭐니 해도 제 몸이 힘들어야 할 만하다고 했다.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의 몸을 씻겨주는 봉사가 가장 보람되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재미있다.

"상대에게 알몸을 보인다는 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근데 그게 말이죠, 세상 사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상대도 아주 자연스럽게 몸을 보이더라고요. 목욕봉사는 몸이 조금 힘들어도 나이 든 사람이 하기에 참 좋아요. 몸뿐만 아니라 그간 속상했던 마음도 함께 씻겨주기에는 젊은이보다는 연륜이 있는 우리가 조금 더 나으니까요?"

이 할머니는 처녀 시절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어 수녀가 되길 원했지만, 불교 집안이라 어른들의 반대에 부딪혀 좌절됐다. 부모님들의 찬성이 있어야만 수녀원에 갈 수 있었기에, 할머니는 친한 친구가 대신 꿈을 이루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평범한 주부로 살던 할머니는 마흔이 넘어서야 종교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고, 이때부터 봉사활동과 인연을 맺었다. 할머니가 다른 이를 배려하는 것은 봉사활동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성당에서도 화장실이 더럽다고 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먼저 고무장갑을 끼고, 거리에 떨어진 휴지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그래서 하루가 굉장히 바쁘다고 한다. 집에서는 몸이 불편한 남편을 돌보고, 밖에서는 다른 이웃을 돌보니 하루가 48시간이라도 부족하다고 한다.

"얼마 전부터 아들이 힘들다고 좀 쉬라고 하대요. 근데 저는 봉사활동 다닌다는 생각 안 해요. 그저 주변 이웃들과 놀러다닌다고 여겨요. 제가 즐거우면서 남도 즐겁게 할 수 있는 이 일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요."

할머니보다 나이 많은 봉사자들도 있긴 하지만, 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한 연차로만 따지면 최고참이다. 그래서 그런지 할머니는 병원 돌아가는 사정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안다. 할머니는 "봉사와 관련된 병원의 어떤 일을 맡겨도 척척 해낼 자신이 있다"면서 "마지막까지 이렇게 살고 싶다"고 했다. 할머니는 봉사를 다른 말로 풀이하면 '인생 후반기에 만난 가장 멋진 연인'이라고 했다.

포항 박승혁 기자 psh@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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