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인류의 치욕 731부대

입력 2015-04-14 05:00:00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원폭 투하에 이어 9일 소련이 참전을 선언하자 만주에 있던 일본군은 다급해졌다. 소련군은 개전과 동시에 하얼빈시 근교 핑팡 지구에 있었던 제731부대를 향해 물밀듯 내려오고 있었다. 일본의 항복 선언은 시간문제였다.

731부대 책임자던 이시이 시로는 부대 철수를 서둘렀다. 이시이는 부대가 한 짓이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만행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소련군이 들어오기 전에 731부대의 흔적을 없애야 했다.

부대엔 아직 죽이지 않은 400여 명의 마루타(일본어 통나무'생체 실험 대상자)가 있었다. 독가스를 사용했다. 시신은 미리 파놓은 8개의 구덩이에 묻고는 휘발유를 뿌려 소각했다. 인간을 상대로 온갖 세균실험과 약물실험을 자행하던 시설들 역시 모조리 파괴했다. 중요한 극비 실험 자료는 직접 챙겼다. 그리곤 비행기 편으로 조선을 거쳐 일본으로 달아났다.

이시이는 전후 도쿄 국제 전범 재판에서 '마루타'가 총 3천850명이었다고 진술했다. 러시아인이 562명, 한국인이 254명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중국인이었다. 이 가운데 생존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럼에도 이시이를 비롯해 731부대 관련자 그 누구도 전쟁 범죄자로 기소되지 않았다. 미국이 인체실험 자료를 넘겨받는 조건으로 관련자들을 전원 석방했기 때문이다. 731부대의 만행은 무죄가 됐고, 묻혔다.

그래도 영원한 비밀은 없다.

1981년 일본인 작가 모리무라 세이치가 다큐멘터리 '악마의 포식'을 발표하며 731부대의 만행을 알렸다.

중국은 지난해 1월 1950년대 발굴된 731부대 기록물을 대대적으로 공개했다. 일본이 파괴한 731부대 유적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일본정부는 731부대의 존재에 대해 끝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급기야 일본 의사들의 양심적인 자기반성이 잇따르고 있다. 일본 의료 및 보건업 종사자, 시민단체 등이 12일 모여 '역사에 입각한 일본 의사 윤리의 과제' 특별행사를 열고 731부대에서 근무했던 이들의 증언, 관련기록 등을 공개했다. 일본 정부에 '731부대 관련 자료를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그래도 아베정부는 여전히 '확인 중'이다.

일본군이 저지른 흑역사는 일본 정부가 아무리 감추고 싶어해도 감출 수도, 지울 수도 없다. 731부대 만행 역시 위안부 역사만큼이나 드러내놓고 치료해야 할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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