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말'경어는 儒家的 계층질서의 표현반말은 수평적 민주사회에 반하는 말
경어도 사회적 지위 확인 욕구서 비롯
나이'항렬 묻지 말고 인간 존중이 필요
"너 어디서 반말하니?" 최근 이 말이 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치킨 CF를 포함해 수많은 패러디로 둔갑한 이 말이 재미있어서도 아니고 두 연예인의 욕설과 반말을 끝까지 파헤친 누리꾼들의 철저함이 놀라워서도 아니다. 한동안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연예인의 반말 사건을 다시 되짚어보는 것은 이 사건이 흥미로운 패러디로 파묻히기에는 너무나 우리 사회의 핵심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모든 언어에는 높임과 낮춤의 어법이 있기 마련이지만 우리 말처럼 복잡한 경어 체계를 갖고 있는 말도 드문 것처럼 보인다. 요즈음 커피숍에서조차 "커피 나오셨습니다. 뜨거우시니 조심하십시오"라는 말을 들으면 경어가 일상화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정반대이다. 사람들이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니까 그냥 높임말을 쓰는 것은 아닐까.
사물에 대한 이런 극존칭을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들도 있지만, 주문한 물건을 높임으로써 간접적으로 주문한 사람을 존중한다는 뜻이 담겼기 때문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아메리카노 나오셨습니다." "주문하신 사이즈는 없으십니다." 이런 말들이 비록 올바른 어법이 아닐 수는 있어도 듣기는 좋을 수 있다.
우리를 더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반말'이다. 이런 상황을 상상해보자.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였는데 종업원이 잘못된 사물 존칭을 하지 않겠다는 뜻에서 이렇게 말한다. "커피 나왔습니다." "커피 나왔다." "커피 나왔어." 이 표현들 중에서 어떤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빠질까.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던 친구들 사이라면 후자의 두 표현도 별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지만, 이 말을 종업원이 하였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쾌해할 것임에 틀림없다.
왜 그럴까? 왜 우리는 이처럼 사물에조차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표현을 하지 못하고 상대방에 따라 이상하기 짝이 없는 경어를 써야 하는 것일까? 모든 언어가 그런 것처럼 우리의 언어 역시 전통적 질서를 반영한다. 반말과 경어는 유가적 계층질서의 표현이다. 사전적 의미에 따르면 반말은 손아랫사람에게 하듯 낮추어 하는 말이다. 여기서 손아랫사람이란 나이나 항렬 따위가 자기보다 아래이거나 낮은 사람을 일컫는다.
이처럼 '반말'의 전제조건은 사회의 계층적 위계이다. 왕과 신하, 양반과 상민, 남자와 여자, 나이 많은 사람과 나이 어린 사람처럼 계층의 위계질서가 뚜렷한 사회에서 쓰는 말이 바로 반말이다. 반말을 쓴다는 것은 상대방의 계층적 위치를 확인한다는 말이다. 윗사람에게는 높임말을 쓰고 아랫사람에게는 낮춤말을 쓰는 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반말'은 항상 위와 아래를 구분하고 확인한다. 반말은 이처럼 군대와 같이 계급질서가 강한 조직에서 잘 유지되는 '수직적'인 말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점점 더 수평적인 민주사회로 전환되고 있다는 것이다. 반(半)말은 몇 가지 점에서 민주사회를 실현하는데 문제가 있다. 첫째, 반말은 사회의 계층질서를 공고히 한다. 짬밥 그릇을 세는 군대문화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사람의 관계를 수직적으로 조직하려는 경향이 반말에 깔려 있다. 둘째, 반말은 사람들 사이의 대화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반말은 토를 달지 말라는 일종의 명령이다. 셋째, 반말은 대화의 상대자를 존중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떻게 수평적 민주사회에 적합한 말을 사용할 수 있을까? 반말 대신 모두 경어를 사용하면 되지 않을까? 여기서 문제는 복잡해진다. 반말과 경어의 관계는 동전의 양면과 같기 때문이다. 경어 역시 반말처럼 상대방의 사회적 지위를 확인하려는 욕구의 표현이다. 우리가 '나이'를 묻고, '항렬'을 따지는 한 반말과 경어의 문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오히려 단순할지도 모른다. '나이, 성, 항렬, 지위와 관계없이'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면 되지 않을까? 인간존중이 그토록 어려운 일인가?
이진우 포스코교육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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