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말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했을 때,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는 국제관계에서는 유례가 없는 아주 강경한 발언을 했었다. 예전에 한 번 이야기한 것처럼 '-머리'라는 접미사는 '얌통머리', '소갈머리', '인정머리' 등과 같이 비하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위에 있거나 존중해 주어야 할 사람에게는 쓸 수가 없는 말이다. 그중 '버르장머리'는 주로 어른들이 철없는 아이에게나 쓰는 말이기 때문에 국제 관례에는 맞지 않지만 그 당시 국민들은 대통령의 발언을 매우 통쾌하게 생각했었다. 그래서 외교 전문가들이 우려를 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지지를 보냈었다.
그 이후 한일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는데, 그때 나는 우리 과 대학원에 있던 일본인 유학생들과 이 문제에 대해 많이 이야기를 했었다. 그들에 따르면 일본 사람들은 한국 대통령이 말한 '버르장머리'라는 말의 의미를 알고는 경악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한국이나 일본 모두 우파가 사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데, 양국의 우파들은 기본적으로 서로에 대해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친해지기가 어렵다고 했다. 우리는 일본을 쪽바리, 왜놈이라고 부르며 우리의 영향으로 문화가 발전했지만 은혜를 모르는 얍삽한 나라라고 생각한다. 반면 일본은 우리를 게으르고 허풍만 셀 뿐 실속이 없어서 언제든지 밟을 수 있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백제나 가야인들이 일본에 식민지를 건설했다고 생각하지만 일본인들은 히미코 여왕 이래로 우리나라로부터 조공을 받아왔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우리나라를 노략질한 왜구에 대해서도 일본인들은 우리나라가 조공을 바치지 않는 것에 대한 응징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을 알면 일본 정치인들이 왜 시시때때로 도발적인 망언(妄言)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우리나라를 자극하는 도발적인 망언으로 인해 국제적인 마찰이 발생할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내부적으로는 지지층을 결집하는 효과가 더 크기 때문에 정치인들로서는 밑지는 장사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버르장머리'라는 말로 지지층을 결집함으로써 대통령의 집권 후반기에 국정 운영의 동력을 얻었다는 점에서 밑지는 장사가 아니었다. 그때 일본에서는 일본 관료들의 망언에 대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과 같이 매우 격앙된 반응이 있었다. 일부 언론에서는 '조만간 우리가 너희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고 1년 뒤 우리나라는 외환 위기가 닥치면서 일본에 자금 지원을 요청하는 굴욕적인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충분히 지원을 해 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요청을 외면하고 IMF를 통해서 지원을 받으라고 하며 우리의 사절단을 문전박대한다. 이것이야말로 인정머리 없고, 버르장머리 없는 것이었지만 그것을 고쳐줄 힘과 당당함은 우리에게 없었다.(일본은 우리의 버르장머리를 확실히 고쳐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 뒤의 과정은 모두 아는 바와 같이 IMF로부터 자금을 빌리고 IMF의 요구(IMF 뒤에 숨은 미국과 일본이라고 하는 편이 정확하다.)를 모두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역사책을 읽다 보면 참으로 답답한 것이 우리나라는 입으로는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막상 일이 닥쳤을 때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고 하염없이 굴욕을 맞이했었다. 그런 과거가 있지만 지금도 일단 큰소리부터 친다. 당장 독도 근해에 자위대 이지스 함이 뜨면 우리에게 무슨 대책이 있을까 의문스럽기도 하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아주 힘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본은 전범 국가이고 우리는 세계 평화에 이바지해 온 국가이다. 세계인과 세계 여론은 누가 올바른지, 누가 정의를 지키는 것인지 분명히 알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를 위협하는 것은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이런 버르장머리는 세계인들이 고쳐줄 수 있을 것이다.
능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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