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수육에도 밀렸던 짬뽕, 중국음식 2위…짜장면, 중국집 '뒷방 노인' 신세
"난 짬뽕".
점심시간 중국집에 네댓 명이 모여 음식을 주문하는데 모두가 짜장면으로 통일되려는 찰나 위의 멘트가 나오면 성격이 불 같은 사람은 식탁 위에 놓인 고춧가루통을 집어던졌을 수도 있는 멘트다. 그렇다, 황신혜밴드의 노래 '짬뽕'의 가사처럼 짬뽕은 비가 오고 외로운 날에 중국집에 가서 먹는 음식일 뿐이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짬뽕은 중화요리계의 가장 뜨거운 음식이 됐다. '짬뽕 전문점'이라는 게 생기기 시작하더니 기존의 중국집들도 짜장면보다는 짬뽕을 메뉴판 위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짜장면은 중화요리계의 '뒷방 늙은이'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왜 이런 '웃기는 짬뽕' 같은 상황이 벌어진 걸까. 짜장면이 뒤로 밀린 현실에는 변화된 외식 트렌드가 있었다.
◆정말 짬뽕이 인기가 많아?
이쯤에서 "난 짜장면 많이 먹는데?"라고 반문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10월 한국갤럽이 전국 만 13세 이상 남녀 1천700명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중국 음식 1위는 여전히 짜장면(46%)이었다. 그 뒤를 이어 짬뽕이 21%, 탕수육이 19%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여론조사기관에서 10년 전 똑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미묘하게 달랐다. 1위는 짜장면(43%)으로 변함이 없는데, 2위가 탕수육(17%)이었고, 3위가 짬뽕(11%)이었다. 10년 동안 시간이 지나면서 짜장면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3%포인트(p) 는 데 비해 짬뽕은 10%p 상승과 동시에 순위도 역전했다. 핀외식연구소 김태훈 홍보'광고사업부 팀장은 "소비자가 구입하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격변동을 나타내는 지수인 '소비자물가지수'의 변동 추이를 살펴보면 최근 몇 년 사이에 짬뽕의 물가지수 상승률이 총 소비자물가지수의 상승률을 넘어간다"며 "이는 예년에 비해 짬뽕의 수요가 그만큼 늘어났다는 것을 수치로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중국집을 경영하는 사람들도 이런 흐름이 사실이라고 증명한다. 대구 중구의 한 중국집 메뉴판을 살펴봤다. 짜장면 메뉴는 일반짜장, 간짜장, 삼선짜장, 쟁반짜장 등 4가지 정도였지만 짬뽕 메뉴는 일반짬뽕, 삼선짬뽕, 해물짬뽕, 낙지짬뽕, 왕짬뽕, 백짬뽕 등 6가지 이상이다. 짜장면을 전문으로 판다는 경북 경산시에 위치한 중화요리점 '정통 천안문'의 사장 김종암(59) 씨는 "10년 전만 해도 짜장면과 짬뽕의 주문비율이 7대 3 정도로 짜장면이 훨씬 많았는데, 지금은 5대 5로 비슷하다"고 말했다.
◆장강의 앞물결이 뒷물결에 밀리듯
이처럼 짜장면이 주춤하는 동안 짬뽕은 엄청난 약진을 했다. 짬뽕이 약진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외식 트렌드의 변화였다. 먼저 사람들의 입맛이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짜장면은 어떤 재료를 넣어도 춘장의 맛에 재료의 맛이 가려지기 쉽다. 반면 짬뽕은 육수에 재료의 맛이 우러나온다. 게다가 음식은 눈으로도 먹는다. 갈색 또는 검정색의 짜장면은 그 안에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먹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지만 짬뽕은 비교적 식재료 확인이 쉽다. 또 '짬뽕은 빨갛고 맵다'는 선입견을 부수는 백짬뽕처럼 매운 맛뿐만 아니라 다양한 맛의 변주를 시도하고 있다. 이에 반해 짜장면은 갈색 또는 검정색의 예상 가능한 모습과 '사자표 춘장'으로 통일된 짜장 소스의 맛 때문에 이를 넘어서는 다른 짜장면을 시도하는 중국집을 찾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김태훈 팀장은 "짬뽕은 그 안에 들어가는 식재료가 다 보이는 데다 어떤 식재료를 쓰느냐에 따라 맛 또한 달라진다"며 "이 때문에 짬뽕은 각각의 메뉴에 대한 '스토리텔링'이 가능하고 이런 부분들이 고객들의 다양한 욕구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짬뽕이 인기를 끄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가장 큰 외식 수요층이 짜장면보다 짬뽕을 선호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외식업계에서는 20, 30대 여성 직장인을 가장 큰 외식 수요층으로 잡고 있다. 이는 데이트나 가족 외식에서 식사 메뉴 결정권을 여성이 갖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직장인의 가벼운 주머니 사정과 건강에 대한 관심은 '값싸면서도 건강한 음식'에 대한 욕구를 불러일으키게 했다. 그런 욕구가 향한 지점이 바로 중화요리 중에서는 '짬뽕'이었던 것이다.
짜장면이 50대 이상의 연령층에게는 '추억의 음식'이라는 점도 짜장면이 짬뽕에 밀린 원인으로 지적된다. 1960, 70년대 짜장면은 자녀의 생일이나 입학'졸업 등 집안 행사, 특히 자녀의 행사가 있을 때 먹을 수 있던 외식 메뉴였다. 그래서 옛맛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짜장면을 선호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짜장면에 대해 큰 감흥을 얻지 못한다. '정통 천안문'의 김종암 사장은 "내가 처음 중화요리를 배우기 시작한 1970년대만 해도 짜장면을 먹으려면 3일 왕복 차비를 모아야 먹을 수 있는 고급 음식이었다"며 "지금은 밖에서 사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종류가 다양해졌기에 짜장면의 위치가 많이 내려갔다"고 말했다.
◆짜장면 왈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이쯤 되면 짜장면의 운명이 심히 궁금해진다. 전문가들이 말한 짜장면의 운명은 그리 밝지 않다. 핀외식연구소 김태훈 팀장은 "현재 외식산업에서 짜장면의 가장 큰 단점은 확장성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짜장면은 짬뽕처럼 다양한 변화를 모색하기 힘든 요리라는 점이다.
하지만 짜장면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아직 중화요리 선택 기준의 핵심인 '배달의 편리성'에 있어 짜장면이 짬뽕보다는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짬뽕의 경우 아무리 비닐 랩으로 싸고 또 싸도 어디엔가 국물이 새기 마련이고, 랩으로 싸다 보면 결국 짬뽕 위에 놓인 고명이 흩어지면서 식욕을 돋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물이 식거나 국물에 담겨 있는 면이 짜장면보다 쉽게 불어버린다는 점도 짜장면이 짬뽕보다 나은 점이기도 하다.
색다른 짜장면 메뉴에 대한 중화요리 업계의 연구가 뒤따른다면 짜장면에게도 다시 봄날이 올지 모른다. 김종암 사장은 2000년대 초부터 짜장면의 위세가 기우는 걸 목격한 뒤부터 색다른 짜장면에 대한 연구를 시도했고, 현재까지 20가지가 넘는 짜장면 메뉴를 만들고 없앴다. 특히 김 사장이 개발한 '된장짜장면'은 특허출원까지 낸 상태다. 김 사장은 "짜장면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거나 춘장과 재료의 맛을 좀 더 조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다면 짜장면은 더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화섭 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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