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문의 한시 산책] 개울물에 비춰진 핏줄의 그리움

입력 2015-04-11 05:00:00

사진=박지원.
사진=박지원.

[억선형(憶先兄)]

돌아가신 형님 생각-박지원(朴趾源)

우리 형님 그 모습은 누구를 닮았는가

아버지가 그리우면 우리 형님 보았다오

형님이 그리운들 이제 어디 가서 볼꼬

옷매무새 바로 하고 개울물에 비쳐보오

我兄顔髮曾誰似(아형안발증수사) 每憶先君看我兄(매억선군간아형)

今日思兄何處見(금일사형하처견) 自將巾袂映溪行(자장건몌영계행)

*憶(억), 思(사): 생각함. 그리워함. *先兄(선형): 돌아가신 형님. 曾(증): 어조를 부드럽게 하는 글자로 적극적인 의미를 지니지 않음. * 顔髮(안발): 얼굴과 머리카락. 모습. *先君(선군): 돌아가신 아버지. *將(장): 가지런히 하다. *巾袂(건몌): 두건과 소몌(소매).

오탁번의 시 중 '장모'라는 작품이 있다. 시인은 어느 날 문득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장모님이 안방에서 책을 읽고 계시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아니 장모님 어쩌신 일입니까"하고, 하마터면 큰 소리로 외칠 뻔 했는데, 다시 보니 이미 그 옛날의 장모님처럼 늙어버린 시인의 아내였다. "손 내밀면 잡혀질 듯한 어릴 제 시절이온데/ 할아버님 닮아가는 아버님의 모습 뒤에/ 저 또한 그 날 그 때의 아버님을 닮습니다." 대를 이어 닮아가는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을 그린 정완영의 시조 '부자상'(父子像)의 일부다.

피를 나눈 피붙이들은 이처럼 서로 닮기 마련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한 틀에서 나온 국화빵처럼 거의 완벽하게 닮기도 하는데, 이 시를 지은 연암 박지원(1737-1805)의 부자 형제도 국화빵에 가까웠던 모양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리울 때마다 형님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런데 그 형님마저도 돌아가셔서 이제 다시는 볼 수가 없다. 시인은 형님이 그리울 때마다 개울물에 엎드려 자신의 얼굴을 비추어 본다. 아마도 그 때 물속에 계시는 형님께서는 물 밖의 아우에게 이렇게 다정하게 속삭이리라. "아우야, 아우야, 너의 얼굴 위에 내가 있고, 그 위에 아버지가 계시는구나. 아버지에게 절을 해야겠다." 그리하여 마침내 시인은 자신이 아버지의 아들인 동시에 형님의 아우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절감하게 된다.

보다시피 아버지와 형님, 그리고 자신이 닮았다는 것이 내용의 전부다. 작품 전체가 평범한 진술로 이루어져 있는데다, 이렇다 할 수사나 기교를 부린 흔적도 없다. 하지만 나직하고도 처연한 어조, 반복되는 반어형 의문에 대한 우회적인 답변을 통하여 형님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감동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특히 너무나도 형님이 보고 싶어서, 개울물에 엎드린 채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맨 마지막 대목에 이르게 되면, 아무리 목석같은 사내라도 가슴이 뭉클하게 되리라.

이종문 시인'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1041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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