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은… MB인수위 자문 '정치인형 기업인'

입력 2015-04-10 05:48:37

10대 신문팔이 등 고생, 20대 중반 건설업 도전, 선거법 위반 의원직 상실

1951년 충남 해미에서 태어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생전 인터뷰 등을 통해 봤을 때 글자 그대로 입지전적인 사람이었다.

1963년 겨울, 당시 12세 소년이었던 성 전 회장은 고향인 충남 서산에서 10원짜리 지폐 몇 장만 들고 무작정 기차를 타고 서울로 왔다.

그는 서울 영등포의 한 교회에 머물며 신문팔이와 약국 심부름 등을 통해 억척스럽게 돈을 모았다. 밤에는 교회 야학에 다니며 초등학교 중퇴의 한을 달래기도 했다.

성 전 회장은 서울 생활을 통해 모은 돈으로 1970년 고향으로 돌아가 당시 돈 1천원으로 화물운송업을 시작했다. 이어 20대 중반의 나이에 서산토건 지분을 인수,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건설업에서 차근차근 바닥을 다진 성 전 회장은 1985년부터 10여 년간 대아건설 회장을 지낸 데 이어 2004∼2012년에는 도급 순위 26위권(작년 기준)의 경남기업 회장으로 재직하는 등 건설업계에서 이름을 날렸다.

그의 이름이 일반 대중에게 알려진 계기는 2000년대 초반부터 정치권에 깊숙이 발을 담그면서부터다.

그는 2003년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총재특보단장을 맡아 김종필 당시 총재를 보좌했고, 2007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는 박근혜 후보를 측면지원했다.

17대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된 직후에는 잠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가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 자문위원 역할을 맡기도 했다. 이것이 나중에 'MB맨'이라는 꼬리표가 달리는 계기가 된다.

그는 2012년 선진통일당 소속으로 충남 서산'태안 지역구에서 19대 국회의원에 출마, 당선돼 본격적으로 정치적 보폭을 넓히려던 와중에 공직선거법에 걸려 정치권과의 인연도 끝을 맺는다.

총선 전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던 서산장학재단을 통해 지역 주민을 지원한 게 문제가 돼 검찰 수사를 받았고 결국 지난해 6월 대법원에서 의원직 상실형인 벌금 500만원이 확정돼 의원 배지를 반납했다.

성 전 회장은 이명박정부 출범 전 대통령직인수위에서 일한 경력 때문에 세간에서 'MB맨'으로 지칭하는 데 대해 매우 억울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이런 심정 이면에는 현재 검찰에서 진행 중인 자원외교 비리 의혹 수사가 일종의 '표적수사'라는 불만이 잠재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선거법 위반의 중심이 됐던 서산장학재단과 관련, 그의 '나눔 인생'도 뒤늦게 조명받고 있다.

그는 사업이 안정되자 1991년 사재(私財) 31억원을 출연해 서산장학재단을 설립했다. 서산장학재단은 수백억원의 기금을 조성해 장학과 학술'교육사업, 문화 및 사회복지사업을 벌였다.

성 전 회장은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로 고아가 된 삼 남매 소식을 들었을 땐 대구로 직접 와 삼 남매에게 대학까지의 학자금을 약속하기도 하는 등 어려웠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남을 돕는 일에 열심이었다.

장성현 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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