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유권자 5가지 특징…『우리는 왜 어리석은 투표를 하는가』

입력 2015-04-04 05:00:00

우리는 왜 어리석은 투표를 하는가/리처드 솅크먼 지음/ 강순이 옮김/ 인물과 사상사 펴냄

'2012년 12월. 선거의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위대한 선택'을 한 국민과 '아쉽게도 그른 선택'을 한 국민, 두 종류의 국민이 남겨졌다.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며 당선시킨 진영은 기세등등하게 선견지명을 자랑하고, 문재인 후보를 내세워 선거에서 패배한 진영은 침묵하면서 국가의 미래와 안위를 걱정했다. 그러나 시간은 언제나처럼 '그'를 뽑지 않은 사람들의 편이었다. 당선자는 갈수록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비상식적인 정책을 강행하고, 자신을 지지한 유권자를 배반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이쯤 되면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자신의 판단이 틀린 게 아니었는지 반문할 수밖에 없다. 국민의 위대한 선택은 '치명적인 선택'이었음이 드러나고, '그'를 반대했던 진영은 다시 한 번 반격의 기회를 노리며 집요하게 수권(授權)의 칼날을 간다.'

우리나라 정치 이야기처럼 들리는가. 사실은 2012년 대선 후보들의 이름만 국내 정치인으로 바꾸었을 뿐, 미국에서 벌어지는 선거를 통한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저자 리처드 솅크먼의 통렬한 비판이다. 저자는 9'11사태 이후 부시 정부의 전횡과 정부의 선전'선동에 무방비로 속아 넘어가는 미국 국민들에 대한 실망에서 이 책을 썼다.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정치인들의 무능과 배신만을 주로 이야기 한다. 그러나 선택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바로 '그런' 정치인을 뽑은 국민이다. 누구나 정면으로 드러내기를 꺼려하는 유권자 책임론을 이 책은 제기한다.

저자는 '대중의 어리석음'이라는 난제에 도전하기 위해 각종 여론조사에 대한 분석과 미국 건국 이후 과거 미국의 정치가 어떠했는지를 살펴본다. 유권자로서의 (미국)국민은 늘 틀리지도 않았지만, 늘 옳지도 않았음이 드러났다. 1975년 한 여론조사는 유권자들이 진실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공무법'에 대한 견해를 묻는 이 여론조사에서 미국인 응답자의 40%가 '자신만의 견해를 갖고 있다'고 답변했다. 그런데 사실은 이런 법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여론조사 요원들이 만들어 낸 법에 대해 국민들은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만의 견해'를 운운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자신들이 역사상 가장 아는 것이 많은 세대라는 큰 착각에 빠져 있다. 이런 오류는 전례 없는 정보 접근성을 실제 정보 소비로 오인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오늘날 우리는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의 전개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다. 하지만 이처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엄청난 자원을 제대로 이용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리처드 솅크먼은 '어리석은 유권자'의 특징을 5가지로 정리한다. 첫째는 뉴스의 주요 사건들을 모르고 정부의 기능과 책임을 모르는 '완전한 무지', 둘째는 믿을 만한 정보를 제공하는 매체를 찾는 일에 소홀한 '태만', 셋째는 사실이 무엇이든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으려는 '우둔함', 넷째는 국가의 장기적 이익에 반하는 공공정책을 지지하는 '근시안적 사고', 그리고 마지막은 두려움과 희망을 이용한 정치 선동에 쉽게 흔들리는 '멍청함'이다.

빌 클린턴을 생각하면 색소폰을 연주하는 모습이 떠오르고, 조지 W. 부시를 생각하면 전형적인 남부 백인 남자들과 바비큐 그릴 옆에 서 있는 모습이 떠오르며, 힐러리 클린턴이 뉴햄프셔 예비선거 첫날 눈물을 흘렸다고 그녀의 인간미에 감동해 투표소에서 '한 표'를 행사하는 유권자들이 미래는 암울하다. 저자는 국민의 현명한 판단을 가로막는 수많은 우민화 장치(언론조작, 감정에 호소하기, 우리 내부의 편향성 등)의 범람 속에서, 어떻게 '현명한 유권자의 시대'를 열아가야 할지 함께 고민하기를 간곡히 호소하고 있다.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을 앞둔 대한민국이 이 책에 주목하는 이유다. 288쪽, 1만4천원.

석민 기자 sukm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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