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지사 무상급식 예산지원 중단은
가난한 학생에 낙인 찍는 비교육적 방식
밥 먹는 수 비례해 사람간 친밀도 상승
학교급식으로 '공동체 정신' 함양해야
가족을 다른 말로 식구(食口)라 부르기도 한다. 한솥밥을 먹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관계의 친밀도를 밥으로 표현하는 것이 재미있다. 식구, 진실을 오롯이 담고 있는 단어다. 관계가 금이 간 사람들은 함께 밥을 먹지 않는다. 함께 밥 먹는 횟수가 많을수록 그 관계는 친밀하다. 회사에서 회식을 하고, 공공기관이 예산에 회의비를 책정하는 목적도 함께 먹는 밥을 통해 유대감과 소속감을 높이려는 데 있다.
요즘 함께 먹는 밥의 의미가 홍준표 경남도지사 때문에 새롭게 다가온다. 경상남도가 무상급식 예산 지원을 중단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언론에는 홍 지사의 행보를 대권으로 향하는 고도의 초기 전략으로 보는 해석이 많이 보도되고 있고, 본인은 "진보좌파들에 의해 선동된 무책임한 무상 정책을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 국가 미래를 바로잡고자 하는 고육지책"이라고 주장하지만, 그의 내심을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그러나 최근 홍 지사가 한 일련의 발언에서 그의 교육관을 읽는 것은 가능하다. 그의 발언 중에서 '학교는 공부하러 가는 곳이지 밥 먹으러 가는 곳이 아니'라고 한 말은 단연 두드러진다.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공동체 정신과 민주시민 의식을 함양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교육 항목이다. 공동체 교육은 책이나 동영상으로 할 수도 있고, 선생님의 교훈을 통해 할 수도 있겠지만, 더 좋은 방법은 함께 밥을 먹게 하는 것이다. 학교급식은 함께 밥을 먹게 하기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한 공간에서 같은 밥과 반찬을 먹고 학교급식 과정에서 이뤄지는 활동에 참여하면서, 학생들은 공동체 정신과 함께 민주시민 의식을 익히게 된다. 구성원이 동일한 조건에서 매일 함께 밥을 먹는 곳에 우열감이나 차별이 어떻게 자리를 잡을 수 있겠는가?
요컨대 학교급식은 학교 교육에서 핵심 위치를 차지한다. 그런데 학교는 공부하러 가는 곳이지 밥 먹으러 가는 곳이 아니라며 밥과 공부를 대치시키다니, 홍 지사를 무식하다 해야 하나, 용감하다 해야 하나? 학교급식법에 '학교급식은 교육의 일환으로 운영되어야 한다'고 규정한 조항이 들어 있는 것을 홍 지사는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밥과 공부의 관계는 다음과 같이 고쳐 표현해야 옳다. 밥을 먹어야 공부가 된다. 좀 더 정확히는, 밥을 '함께' 먹는 것이 '진짜' 공부다.
학생들이 함께 밥 먹는 것을 공부가 아니라고 보는 홍 지사가 학교급식을 비교육적인 자세로 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보편적 무상급식 방식을 예전의 선별적 무상급식으로 환원하고 무상급식 지원 예산을 서민을 대상으로 한 선별적 교육지원 사업에 투입하겠다니 말이다. 앞으로 경남의 저소득층 학생들은 3월 초 신학기에 자기 집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시시콜콜 증명해 보이는 서류를 들고서 담임교사와 첫 대면을 해야 한다. 그런 구차함과 수치를 감수해야만 급식비를 지원받을 수 있게 될 터이니, 이 얼마나 비교육적인가. 새로 서민층에게 집중 지급한다는 교육지원비를 받으려 할 때도 가난증명서 제출은 불가피할 것이다. 한 학급 안에서 급식비를 내는 학생과 안 내는 학생 사이의 위화감이 조성될 터이니 보편적 무상급식을 통해 형성되었던 공동체 정신은 큰 손상을 입을 것이다.
한창 성장하는 시기에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입고 차별을 내면화한 아이가 민주공화국의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차별을 해소하고 공동체 정신을 함양해야 할 학교에서 학생들의 마음에 '나는 가난하다'라는 낙인을 찍는 급식 방식을 재도입하는 것은 비교육적이다 못해 잔인하다.
이처럼 학교 교육의 퇴행을 몰고 올 조처를 취하면서도 홍 지사는 당당하다. 자신의 결정이 한국 사회의 빈부갈등을 해소하는 방책이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한다. 희한한 일은 보편적 복지를 '진보좌파의 위선'이라고 비판하면서 자신이 추진하는 선별적 복지야말로 진짜 좌파정책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아무리 사상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하지만 보수우파 정당의 공천을 받아서 당선된 현직 도지사가 마치 진성(眞性) 좌파 커밍아웃을 하듯 말을 내뱉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코미디인가, 정치 드라마인가?
전강수(대구가톨릭대 경제금융부동산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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