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세 경영 소홀, 쪼그라든 살림 '대아' 이름 남을까
포항을 넘어 대구경북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번 1등 부자, 황대봉 대아가족(이하 대아) 명예회장이 향년 86세를 일기로 유명을 달리했다. 대아의 큰 기둥이 쓰러졌지만, 그룹 내 변화는 크지 않을 전망이다. 생전에 이미 사업 대부분을 아들 3형제에게 나눠주고 정리했기 때문이다. 황 명예회장은 살아생전 못해 본 것이 없을 정도로 많은 걸 이뤘지만, 사후에는 부동산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예전과 같은 거부(巨富)는 남아있지 않다.
◆대아의 흥망성쇠
1967년 시내버스 7대로 출발해 언론'금융'건설'해운'관광레저 등 대아를 15개 계열사로 성장시킨 황 명예회장은 한때 '한강 이남 최고의 현금 부자'로 불렸다. 지금 그가 떠난 자리에는 전성기 때 대아를 지탱했던 기업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2005년 큰아들에게 기업을 물려준 지 10년 만의 일이다. 지역 경제인들은 고인이 부동산 사업으로 이룬 재산을 서비스업에서 제조업으로 전환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입을 모았다. 생전 지역사회에 장학사업 등을 활발히 펼치며 인심을 얻으려 노력했지만, 고용창출 및 설비투자 등이 병행되지 않은 서비스사업과 부동산업에 대해 지역 민심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황 명예회장은 일반의 인식에 비해 아주 많은 기부사업을 펼쳤다. 포항의 상징이었던 '오거리 시민의 탑'(1974년)을 필두로, 죽도시장 확장 사업(1977년), 학교법인 영암학원 세명고등학교 설립(1983년), 영암장학회 설립(1985년), 영암도서관(1986년)설립, 연오랑세오녀상 건립(1999년) 등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다. 한 관계자는 "고인은 지역 사랑이 남달랐으나 포항시민들이 이를 인정해주지 않아 안타까워했다"고 말했다.
고인은 시외버스터미널 인근 땅과 죽도동'상도동 등의 일대를 토지구획정리하면서 엄청난 돈을 벌었다. 당시 고인은 명운을 걸고 전 재산과 지인들의 돈, 은행 빚 등을 모두 끌어들여 사업을 벌였고, 상상 이상의 성공을 일궈냈다. 주변 다른 지역에서 토지구획정리 사업을 하던 인사가 망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고인의 사업은 독보적인 성공을 거뒀다. '고인의 땅을 밟지 않고는 포항을 다닐 수 없다'는 말이 허언이 아닐 정도로 '땅 부자'가 됐다.
'땅 부자'가 된 후 투자는 지역 경제계의 바람과 달리 시내버스, 해운업 등 서비스업에 중심을 두고 이뤄졌다. 한 원로 경제인은 "대아는 포항경제를 떠받들고 있는 대표 향토기업이었다. 하지만 경제선순환을 위한 기업활동보다는 부동산이나 서비스업 등 당장 돈을 만질 수 있는 사업에만 매진했다"며 "사람 쓰는 일에 투자를 많이 했다면 기업의 건전성뿐만 아니라 포항사람들에게도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남아있을 텐데 아쉽다"고 했다.
또 다른 원로 경제인은 시청 부지 선정이나 송도백사장 유실 예방안 등을 예로 들며 고인이 매우 뛰어난 기획력을 가진 인물이었다고 기억했다. 물론 그의 대표적 기획안이 포항시에 의해 좌절됐지만, 지금에 와서 되돌아보면 고인의 생각이 맞았다는 게 원로들의 지적이다.
◆대아는 어디로?
고인은 포항시의 도시계획안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아니면 포항시민들이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아서인지, 말년에는 경주로 주소를 옮겨 '경주시민'이 되기도 했다. 앞서 대아를 우뚝 서게 한 대부분의 사업은 기획 단계부터 실행까지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워낙 기획력이 있다 보니, 고인은 자신이 아니면 아무도 믿지 않았다고 한다. 자식들에게도 이 원칙은 그대로 적용됐다. 사업을 물려준 뒤에도 하나하나 확인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탓에 자식들이 상당히 어려움을 느꼈다고 주변인들은 전했다.
황 명예회장의 측근들은 2, 3세 가운데 고인만 한 추진력과 열정을 가진 인물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2, 3세들은 고인이 일궈놓은 사업을 더 크게 성장시키기보다는 사업 외적인 일에 몰두하기 일쑤였다. 고인이 사업 일선을 공식적으로 떠난 지 불과 10년 만에 대아는 외견상 볼품없이 줄어버렸고, 가장 중점을 두던 부동산 역시 많이 없어진 상태다. 고인이 자랑하던 장학사업마저 기업 거래 과정에서 세금을 줄이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쓰이고 있다는 얘기마저 나올 정도다.
장남인 황인찬 회장은 최근 들어 공'사석에서 기업을 모두 정리하겠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최고의 황금 노선인 포항~울릉을 운항하는 대아고속해운을 지난해 다른 기업에 판 것도 정리 과정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아직까지 크고 작은 기업이 여럿 남아있어 정리하려 해도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황 회장의 성향에 비춰 얼마 후에는 '대아'라는 이름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황 회장은 지난해부터 국내에 머물지 않고 거의 외국에 체류하고 있다. 측근들은 "사업에 흥미를 잃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고인과 오랜 세월을 함께한 한 인사는 "고인이 평생 일궈놓은, 그리고 생전에 탄탄하다고 자랑하던 대아가, 수년 사이 범죄에 연루된 2, 3세들로 인해 급속히 내려앉고 있는 것을 보니 가슴이 미어진다"면서 "고인이 없는 대아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말들이 많은데, 후세들이 이 말이 잘못됐음을 증명해 주는 바른 경영을 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포항 박승혁 기자 psh@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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