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대게 떠난 자리, 가자미·아귀가 이사왔다

입력 2015-03-26 05:00:00

"中 어선 싹쓸이 조업 방지대책도 마련해야"

경북 동해안을 대표했던 물고기들이 사라지고 있다. 전체 어획량도 감소 추세다. 물고기들이 잡히지 않으면서 마리당 단가가 치솟고 있다.

전문가들은 밥상 물가는 물론 경북 동해안 수산물 관광상품도 위협받는 수준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지구 온난화 등에 따른 생태계 변화 영향 탓도 있지만 무분별한 불법어업에 따른 개체수 감소가 큰 만큼 어업 관리 체계를 확충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제언하고 있다.

◆경북 대표 물고기가 사라진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포항 죽도어시장에는 가자미부터 오징어, 대구, 청어 등 굵직한 생선들이 많았다. 당시 5천원이면 네 식구가 오징어로 잔치를 열 수 있을 정도로 흔했다. 붕장어나 가자미회를 잔뜩 사가면 오징어는 그냥 서비스로 끼워줄 정도였다.

하지만 이달 중순 찾은 죽도어시장 어물전을 차지한 주인공들은 어느새 바뀌어 있었다. 주로 남해 쪽에서 가져오던 고등어가 빠진 곳 없이 메워져 있고, 복어와 학꽁치 등은 아예 무더기로 있었다. 그 흔했던 오징어는 만원으로 한 마리를 겨우 사먹을 정도로 귀한 몸이 돼 있었다.

40년째 죽도어시장을 지켜온 상인 김선자(68) 씨는 "주로 서'남해에서 가져오던 물고기가 이제는 이곳 위판장에서 바로 거래된다. 옛날 우리 지역에서 나던 물고기들은 요즘 강원도나 러시아 쪽 원양어선에서 더 많이 잡히니까 오히려 역수입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경북의 '최근 10년간 도내 해면어업 생산현황'(양식'내수면 제외) 자료에 따르면 경북 동해안 대표 물고기였던 오징어와 대게, 도루묵의 어획량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오징어의 경우 2005년 6만7천594t이 잡히던 것이 2009년 9만2천872t으로 급증한 이후 감소세를 보이다가 지난해 5만9천744t으로 어획량이 뚝 떨어졌다.

동해안 어민의 대표적인 생계수단인 대게도 2005년 2천530t에서 지난해 1천707t으로 32.5%나 줄었다. 도루묵도 2005년 819t에서 2014년 586t으로 어획량이 감소했으며, 꽁치는 해마다 수천t이 잡혔지만 지난해 172t만 잡히는 등 아예 자취를 감췄다.

◆아열대 물고기가 동해로 이사왔다

조선 순조 때 정약전이 집필한 '자산어보'. 이 책에는 우리나라에서 서식하고 있는 해양생물을 모두 227가지로 분류했다. 그러나 20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 해양생물은 600종(국립수산과학원 통계치)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과거 온대기후였던 우리나라 해양에는 차가운 수온에 잘 견딜 수 있는 200여 종의 어류만 살았으나, 아열대기후로 점차 변화하면서 이보다 몇 배나 늘어난 다양한 어종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에 따르면 경북 동해안의 해수 표층 수온은 최근 40년간 약 0.8℃ 상승했다. 해양생물은 특성상 육상생물보다 이동이 수월하기 때문에 환경변화에 따른 서식지 변화가 큰 편이다.

해양기술원 분석결과 명태 등 온난화에 민감한 어종들의 경우 10년에 평균 72㎞씩 북쪽으로 이동한 것으로 집계됐다. 대표적 한류 어종인 명태는 1970, 80년대 동해안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지만 2000년대 이후 아예 어획량을 찾아볼 수 없다.

동해수산연구소 한 관계자는 "어류의 먹이가 되는 식물'동물성 플랑크톤이 해수면 온도 상승으로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어류들도 함께 따라갈 수밖에 없다"면서 "특히 동해안 어업인들의 주수입원이었던 명태는 씨가 마른 지 오래고, 오징어 어획량도 해마다 줄어 어촌 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새로운 어종 생성, 어업 부가가치는 높아져

해양 생태계 변화로 인해 다양한 어종이 경북 동해안을 찾는 것은 어업인들에게 나쁜 영향만은 아니다.

포항에서 근해 자망어업(그물을 세로로 쳐놓고 지나가는 물고기를 가둬 잡는 방법)을 하고 있는 이윤환(57) 씨는 요즘 콧노래가 절로 난다.

이 씨는 "청어나 물가자미(기름가자미) 등 비교적 값싼 어류들이 잡히던 예전과 달리 최근엔 참가자미, 쥐치, 아귀 등 고급 어류들이 많이 잡힌다"고 했다.

대표적인 고급어류인 줄가자미'돌가자미 등 가자미류가 최근 10년 새 경북 동해안의 최대 어획 물고기로 이름을 올렸다. 가자미류는 2005년 3천792t의 어획량을 올린 뒤 현재까지 꾸준하게 어업인들의 주요 수입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동안 보이지 않던 고급 어류들이 늘면서 동해안지역 어류 위판가에도 변동이 생겼다. 포항수협에 따르면 과거 1㎏당 2만원까지 거래됐던 참가자미는 현재 1㎏당 평균 1만5천원선을 보이고 있다. 제철을 만나 가장 풍족했을 때는 1㎏당 6천~7천원까지 하락했을 때도 있었다. 이 밖에 쥐치나 아귀 등도 1㎏당 1만~1만5천원 등 예전에 비해 20~30%가량 가격이 낮아진 것으로 집계됐다.

◆어업 변화 미리 준비해야

동해안의 어획량 감소와 어종 변화가 최근 동시에 급속도로 이뤄지면서 전문가들은 이에 맞는 어업체계의 변화를 최우선 과제로 꼽고 있다. 어선 감축은 물론 양식업 활성화, 불법 어업에 대한 감시 체계 강화 등 어업 선진화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경북도 이상욱 동해안발전본부장은 "과거 많이 잡히던 동해안 대표 어종들이 자취를 감춘 것은 생태계 변화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최근 폭발적으로 늘어난 중국 어선들의 마구잡이 남획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면서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 부분에 대한 대책을 강구해야 하며, 경북도 역시 어업 선진화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국립수산과학원 동해수산연구소 손명호 연구원은 "어종 변화는 해수 온도나 해류, 기후 중 어느 한 가지가 아니라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끼친 결과이며,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현상"이라며 "선진국의 예처럼 이제는 우리도 마구잡이로 자연을 소비하는 어업이 아니라 '자연을 가꾸고 어류를 보호하는 어업'을 준비한다면 변화에 좀 더 빨리 순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정욱진 기자 penchok@msnet.co.kr

포항 신동우 기자 sdw@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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