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비는 종이었다. 밤이기퍼도 오지않었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깜한 에미의아들. 갑오년(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도라오지 않는다하는 외할아버지의 숯많은 머리털과그 크다란눈이 나는 닮었다한다.
스물세햇동안 나를 키운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하드라. 어떤이는 내 눈에서 죄인(罪人)을 읽고가고 어떤이는 내 입에서 천치(天痴)를 읽고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찰란히 티워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우에 언친 시(詩)의 이슬에는 멫방울의 피가 언제나 서꺼있어 볓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느러트린병든 숫개만양 헐덕어리며 나는 왔다.
(전문. 『미당 시전집 1』 민음사. 1994. 원표기대로 인용함)
언젠가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서정주의 시가 아름답기 때문에 그의 친일행위를 용서해줘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시를 규정하는 그 '아름다움'이야말로 그의 친일행위를 통해 탄생한 '이데올로기'인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시는, 시의 말미에 표시된 것에 따르면, 서정주의 나이 23세 되던 소화 12년(1937년) 추석날 무렵 쓴 것이다. 1937년은 그해 7월부터 중일전쟁이 발발했던 해이기도 하다.
시에 매달리던 고등학교 시절 머리맡 책꽂이의 일지사 간행 '서정주 전집'은 나의 교과서였다. 그리고 '팔할의 바람'과 '헐덕어리는 병든 숫개'는 내 젊은 시인의 알리바이였다. 그러나 우리가 놓친 것은 시적 미학의 정치와 정치의 미학이 아니었을까.
프랑스 철학자 랑시에르의 말을 빌리자면 정치란 "새로운 주체와 대상들을 공동체에 끌어들이고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만들고 시끄러운 동물로만 지각됐던 사람들의 말을 들리게 하는 일". 이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한 방편이 미학이고 시다. 앞으로 우리는 이 지면에서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가능하기는 한 것인지 계속 묻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 서정주'는 우리에게 하나의 중요한 질문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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