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7년 1월(인조 15), 병자호란을 끝내면서 청은 조선에 11가지 항복조건을 요구했다. 그중 하나가 '조선은 신구(新舊) 성원(城垣)을 허락 없이 보수하거나 쌓지 말 것'이었다. 전쟁으로 허물어진 성(城)을 보수하지도 말고, 새로 쌓지도 못하도록 한 것이다. 자기네 나라를 침공할 수 있는 군대를 키우지 말라는 정도가 아니라 '기댈 만한 언덕을 쌓아 우리말 안 들을 궁리는 아예 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조선은 이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가 사드 배치를 고려하는 가운데 중국이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는 탄도미사일 공격으로부터 자국을 방어하는 방패이지 창이 아니다. 물론 사드의 AN/TPY-2 레이더는 최대 탐지거리가 1천800~2천㎞에 달해 방어체계이지만 주한미군이 중국 일부 지역을 감시할 수 있기 때문에 중국으로서는 못마땅한 것이다.
국내 일부에서는 한국 내 사드 배치가 중-미간 긴장과 갈등을 고조시킬 뿐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 사람들은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에 대해서도 "중-미 대립 지역에서 제주도민과 한국인을 인질로 잡아두는 일이며, 중미 갈등이 최악으로 치달을 경우 한반도인은 상상 이상의 재앙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니 사드나 해군기지로 괜한 갈등을 조장하지 말자는 것이다.
맹수들은 사냥할 때 건강한 성체가 아니라 어리거나 병든 동물을 노린다. 건강한 성체를 공격해도 잡을 수 있겠지만 사냥 중에 자신이 다칠 것을 염려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손쉬운 상대를 노리는 것이다.
한반도 주변 강대국과 전쟁할 경우 한국이 이길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맞고 주저앉는 한국과 쓰러지더라도 한 대쯤 상대에게 강한 충격을 줄 수 있는 한국은 다르다. 청나라가 조선을 짓밟고 돌아가면서 조선은 신구 성원을 보수하거나 쌓지 마라고 한 것도 그 때문이다.
주한미군에 사드가 배치되지 않으면 중-미간 대립이 해소될까? 제주도에 해군기지가 없다고 중미 갈등에서 우리가 안전해질까? 과거 청-일 전쟁, 러-일 전쟁 때 변변한 무기도 군대도 없었던 한국이 전쟁터가 되었다는 사실을 제주도 해군기지와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설명할까.
해방 70년이 흐른 지금도 우리에게 분열과 분노, 논란을 안겨주는 문제들, 즉 친일논란, 위안부, 독도문제 등은 우리에게 강한 군대가 있었더라면 생겨나지도 않았을 문제들이다. 화냥년(환향녀)이란 몹쓸 말도 마찬가지다. 사드 배치와 관련해 우리가 고려할 것은 중국의 입장이 아니라, 사드가 핵미사일 방어에 얼마나 효과적인가 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