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본질은 재미…재미 잃지 않고 소통되는 게 중요"
▷한류와 우리의 문화역량
김병준: 다시 우리 문화 이야기로 돌아와서 한류를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일단 널리 퍼지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다. 국력이 커진 느낌도 들고.
유홍준: 처음에는 이러다 말겠지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이게 동남아로 남미로, 유럽과 미국으로 계속 흘러가더라. 동아시아의 주변국으로 중국이나 미국 등으로부터 늘 문화를 수입하고 모방하는 나라였는데, 정말 놀라웠다. 문화 수입국에서 공급국으로 전환된 것이다.
김병준: 그런데 묘한 기분이 있다. 이 한류, 우리 것 맞나? K-pop 같은 것을 보면 우리 것이란 기분이 들지 않는다.
유홍준: 한류가 생명력을 가지는 것은 우리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국제적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사람들이 즐길 수 있고, 또 그들이 재미있어하기 때문이다. 재미없으면 그날로 딱 끊어진다. 이게 한류의 본질이다. 얼마나 한국적이고 전통적이냐는 두 번째 문제다. 재미를 잃지 않고 계속 소통되는 게 더 중요하다.
김병준: 그래도 한류인데, 서양적인 것에 기반을 둔 것 같아 불편할 때가 있다.
유홍준: 서양 것을 받아들여 만든 게 많지만 그냥 복사한 것이 아니다. 그 위에 우리 것과 우리의 일상을 녹이고 합성해서 새로 만든 것이다.
김병준: 우리 것과 우리의 일상이 녹아있다? 또 우리가 합성했으니 우리 것이다?
유홍준: 동남아국가를 보자. 문화적 이상은 미국이나 프랑스일 수 있다. 그러나 서구 것은 이들에 있어 다소 이질적이다. 오히려 우리가 합성한 것에서 동질감도 느끼고 국제성도 느낀다. 서구사회나 일본도 그렇다. 자신들 것에서 볼 수 없는 스토리텔링과 독특한 대화 방법, 그리고 인테리어나 파격적인 생활양식 등을 볼 수 있어 좋아하는 것이다.
김병준: 원래 우리가 이런 합성을 잘하나?
유홍준: 일례로 밥그릇 중에 세라믹, 즉 도자기가 최고인데 이걸 제일 먼저 만든 게 중국이다. 천년에 걸쳐 개발해서 9~10세기에 청자를 만들었다. 우리는 이 기술을 들여와 100년 지나 중국과 맞먹는 청자를 만들었다. 이후 어느 나라도 청자를 만들지 못했다. 그리고 또 100년이 지나 우리는 상감청자를 만들었다. 본래 청자는 문양을 구사하기 어려운데, 중국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백자로 넘어갔다. 그러나 고려는 상감기법을 개발하여 청자문화의 수명을 100년 이상 연장했다.
김병준: 자랑할 만한 문화역량이라 생각된다.
유홍준: 중국 주변의 55개 소수민족이 다 몰락했어도 우리는 끝까지 우리 나름의 문명을 유지해 왔다. 말갈, 여진, 척발, 숙신, 위글, 흉노… 등, 역사에 이름만 남기고 사라진 민족이 얼마나 많으냐. 여기에 한국 문화의 아이덴티티가 있다.
김병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유홍준: 주체적이었고 열정적이었기 때문이다. 흔히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문명이 저절로 흘러들어온 게 아니다. 또 그들이 그냥 가져다준 것도 아니다. 열심히 벤치마킹하며 주체적으로 수용했다. 목화씨를 가져 온 문익점 선생을 봐라. 심지어 훔쳐오기까지 하지 않았나.
김병준: 재미있는 해석이다.
유홍준: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게 한계이기도 하다. 남의 것을 가져와 합성해 발전시키는 능력이 뛰어나다 보니 원천기술이 약하다. 지금도 그렇지 않나. 스마트폰만 해도 세계 최고를 만들지만 그 원천기술은 우리게 아니다. 그러다 보니 노벨상이 평화상 하나만 있다. 일본만 해도 과학과 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수상자가 22명이나 된다.
김병준: 어쨌든 문화합성 능력이 뛰어나다는 이야기로, 한류 또한 그러한 능력으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로 듣겠다.
유홍준: 일부에서는 한류에 우리의 고급 전통문화가 적다고 비판하는데 뭘 모르고 하는 말이다. 싸이가 왜 싸이냐? 즐겁고, 또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싸이다. 우리 드라마나 우리 가수가 부르는 노래로 우리 위상이 올라가면 그 옆에서 한국미술 5천년전 같은 좌판을 벌이면 된다. 그래서 이런 문화적 전통 속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그러면서 한류에 힘을 실어주면 된다. 인위적으로 직접 뭘 얹으려 하다가는 한류를 죽일 수 있다.
▷허물어지는 경계, 그리고 그 의미
김병준: 최근에는 한류산업에 중국자본 등 외국자본이 들어오고 있다. 재주는 우리가 넘고 돈은 이들이 가져가는 예도 있다고 한다.
유홍준: 어차피 세계경제가 국적과 관계없이 투자하고 투자받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자본뿐만 아니다. 가수 작곡자 PD 공연기획자들도 국적 관계없이 뒤섞인다. 싸이만 해도 그 노래를 좋아한 사람들도, 해외 공연을 주도한 사람들도 외국 사람들 아니었나. 그렇게 해서 그 큰 시장과 문화공간으로 나가는 것이다. 경제적 이익도 좀 더 큰 틀에서 계산할 필요가 있다. 즉 음반판매나 영화수출 등으로 얻는 수익뿐만 아니라 한국 상품을 잘 팔리게 하는 효과까지 계산해야 한다.
김병준: 그래도 걱정들이 많다. 투자를 한 뒤 심지어 특정 국가에서 인기 있는 가수나 배우만 출연하도록 하는 등의 간섭을 한다고 한다. 한류문화가 왜곡되거나 힘이 빠지지 않겠나?
유홍준: 중요한 것은 우리의 문화역량이다. 역량이 높으면 시장도 자본도 끌고 간다. 우리 배우나 가수들이 그렇게 간단한 사람들 아니다. 나 같은 것을 봐라. 대단하지 않나. 민족이나 국익 등에 너무 집착할 이유 없다. 넓게 보면 역량이 더 커지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김병준: 경계가 다 허물어지는 느낌이다. 문화도 돈도 사람도 국경을 넘어 흐르고, 그 속에서 다차원의 융합과 복합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유홍준: 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2010년 나라의 약사지(야쿠시지) 대강당이 완공되었을 때 이를 기념하는 무대가 열렸다. 여기서 인기 걸그룹 아이돌 AKB48이 '꿈의 꽃잎들'이라는 이름으로 공연했다. 20명 가까운 소녀 아이돌이 미륵불을 등지고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상상해 보라.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파격적인 공연이었다.
김병준: 묘한 결합이었겠다.
유홍준: 이 일로 AKB48이 어떤 그룹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이 분야를 전공하는 아들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일본서 지존의 경지에 있는 그룹이라 했다. 동남아와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하고, 자신의 친구들은 이들의 도쿄돔 공연을 보기 위해 일본을 다녀오기도 했다는 거다.
김병준: 요즘 젊은이들이 그런 것 같다.
유홍준: 젊은 시절 우리는 민족적인 것과 국제적인 것 사이에서 심각한 고민을 하곤 했다. 그런데 우리의 젊은 세대는 거리낌 없이 그 사이를 오가고 있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너와 나, 네 것 내 것 구별하는 아버지 세대는 이제 구닥다리야. 한일관계도 아버지 세대 것을 우리에게 강요하지 마라. 우리는 같이 춤추고 노래하며 풀어갈 거야."
▷낮은 관심과 부실의 악순환
김병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말씀이다. 다시 문화재와 문화유산 이야기를 조금 하자. 많은 문화재와 문화유산들이 시장에서 상품으로 거래되고 있다. 즉 상업적 관심의 대상이 되어 있다. 이건 괜찮나?
유홍준: 크게 봐서 걱정할 것 없다. 예를 하나 들자.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때 IOC 위원을 지낸 브런디지는 그 해 베를린에서 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열린 중국미술품 전시회에서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생각하지 못했던 또 다른 문화를 본 것이다. 원래 돈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이후 중국미술품 수집을 했다. 어마어마한 규모였는데 후일 이걸 아시아 쪽으로의 창구인 샌프란시스코에 기증했다. 이런 예는 수없이 많다.
김병준: 우리의 경우 그런 정신이 약하다는 게 문제다.
유홍준: 그런 점이 있기는 하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기증하는 것이 큰 명예가 되고, 그래서 부자들이 미술품이나 문화유산을 수집해서 내어 놓고 싶어 하는 환경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하다.
김병준: 결국 문화의식의 문제 아니겠나?
유홍준: 언젠가 독일 쾰른에서 한국미술전을 하는데 우리 국회의원들이 많이 왔다. 그런데 한국관 개관식을 하는데 이들의 모습이 안 보였다. 외교 활동을 하러 갔다고 했다. 아니, 바로 그 자리에 독일 국회의원이 30명이나 와 있는데 어디 가서 무슨 외교활동을 한다는 말인가? 박물관이나 미술관 개관식에 초대받는 것을 큰 영광으로 아는 나라와 그렇지 않는 나라의 차이이다.
김병준: 악순환이다. 관심이 낮으니 잘 안되고, 잘 안되어 있으니 관심이 높아지지 않는다.
유홍준: 다 같이 노력해야 한다. 시립 대구미술관이나 국립 대구박물관도 어렵다. 유물도 없고 돈도 없다. 지역 기업들이 후원하고 협찬하면서 시민들이 보러 가도록 해야 한다. 또 시민도 관심을 가지면서 기업들의 후원을 이끌어 내야 한다. 심지어 보험료가 부담되어 좋은 작품을 빌려오지 못하는 형편이다. 대구 경제력이면 그 정도는 할 수 있다. 같이 노력해서 좋은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
김병준: 문화체육관광부나 문화재청은 잘하고 있나?
유홍준: 문화재청은 지청이 없다. 치명적이다. 그래서 그 업무를 시장군수에게 위임한다. 숭례문이 불났을 때 나도 상징적으로 책임을 지고 사표를 냈다. 그러나 사실상 관리책임은 서울시 중구청장에 있었다. 지청을 만들면 되지 않느냐 하는데 작은 정부 하자는 판이라 쉽지 않다.
김병준: 답사기 일본 편을 쓰면서 일본을 돌아보셨는데 일본은 어떻게 하고 있나?
유홍준: 일본은 지방교육위원회에 위임하고 있는데, 이 교육위원회가 발굴단까지 가지고 있다. 우리가 참고할 부분이다. 그리고 복원 등에 신경을 많이 쓴다. 건물을 수리하는 데도 수리기간을 5~7년씩 잡는다. 건물을 해체해서 썩어가는 서까래를 다 바꾼 뒤 새로 세운다. 하지만 우리는 다 망가진 다음에야 꺼낸다. 수리기간도 짧다.
김병준: 국력차이인가?
유홍준: 돈이 들어가는 문제이니 국력도 관계가 있다. 그러나 문화재에 대한 인식도 문제다. 예컨대 일본 교토에 33칸당이 있는데, 여기에 800년 된 불상 1천 개가 있다. 이 불상에 새로 금칠을 하는 데 매년 20개씩 50년을 잡고 한다. 아예 불상수복실을 두고 있고 수리공은 이를 평생 직업으로 삼아 큰 보람을 가지고 일을 한다. 우리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김병준: 끝으로, 중국까지 포함해 동북아 지역 국가들의 문화적 동질성이 큰데 이것이 이 지역의 화합에 좋은 영향을 주면 좋겠는데 아직 그렇지가 못한 것 같다.
유홍준: 문화재청장 시절 중국 쪽에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한중일 각국이 국보 100점씩을 내어 국보 300점전을 하자고 제안한 적이 있다. 베를린 올림픽 때 브런디지가 감격한 그런 전시회를 열고, 올림픽 이후에는 서울 동경 뉴욕 파리 런던 등을 돌자는 안이었다. 중국은 좋다고 했다. 그러나 일본이 멕시코 이주 120주년 행사 등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는 바람에 못했다. 앞으로라도 이런 노력들이 있어 문화적 동질성을 확인해 나갔으면 한다.
김병준: 이런 부분에서 중국은 잘하고 있나?
유홍준: 잘못하고 있다. 이웃나라 문화에 대한 관심이 매우 약하다. 우리는 한국미술사 전공하다 보면 중국과 일본을 공부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중국은 중국미술사 연구하면서 한국이나 일본 미술사를 공부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성 내지 의무감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다.
김병준: 큰 나라답지 못하다.
유홍준: 그래서 중국 분들에게 말한다. 중국 그림 값이나 올릴 생각하지 말고 대국다운 모습을 보이라고.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리 잘못도 있다. 언제 제대로 우리 문화의 진수를 보여 줬었어야지. 이제 문화 공급국도 되었으니 적극적으로 우리 것을 내세우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균형자 역할을 하며 동북아지역에서의 문화협력을 이끌어 내어야 한다. 충분히 해 낼 수 있는 일이다.
사진=이성근 객원기자 loke3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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