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사라진 미사여구들

입력 2015-03-19 05:00:00

세대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핫 뮤직'이나 'GMV' 같은 잡지를 구독하는 일이 유일한 낙이었던 시절도 있다. 온라인 문화가 활성화되면서 이런 대중음악 잡지들이 하나둘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로 인해 다시금 반추하게 되는 지점들도 있다. 비단 잡지뿐만 아니라 음반이나 감상실을 통해 록 음악을 찾아다니던 한때의 모습이다.

정확히는 해외 록 밴드들에 관심이 있었다고 해야겠다. 그 이전과 이후 세대의 환경을 비교해보면 당시는 대체로 과도기에 가까웠다. 소위 해적판 레코드로 대표되는 이전 세대에 비하자면 라이선스 음반뿐만 아니라 직수입 음반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시기였다. 그런가 하면 유튜브로 거의 모든 동영상이 시청 가능한 요즘과는 달리 음악 감상실을 찾아가야만 밴드의 공연 실황이나 최신 뮤직비디오를 볼 수 있던 때이기도 했다.

내한 공연도 마찬가지였다. 대형 밴드들이 하나둘 국내를 찾기 시작한 시점이었으나 그 빈도가 높지는 않았다. 해마다 펼쳐지는 록페스티벌은 이웃나라 일본에서나 가능한 것으로 생각했다. 한번은 당시 잘나가는 외국 밴드가 내한한 적이 있었는데 홍대 앞 좁은 클럽에서 뛰놀던 사람들이 한날한시에 넓은 공연장으로 몰려들었다. 너무 흥분한 탓인지 들것에 실려 나가는 관객들도 적잖이 목격할 수 있었다.

당시 이들 밴드에 대한 정보들은 앞서 말한 잡지들, 혹은 음반에 담긴 해설에 의존하는 것이 전부였다. 생각해보면 미사여구로 가득한 글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럼에도 인상적인 글들을 자주 접할 수 있었다. 굳이 음반을 듣지 않더라도 전곡을 들은 듯한 느낌을 주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한 문학평론가는 본인이 글을 쓸 수 있게 된 8할은 '핫 뮤직' 때문이었다고 말할 정도다.

미사여구의 정점은 특히 장르에 대한 설명이었다. 대부분은 영문 단어들이었기에 나열식으로 서술하기 시작하면 난해한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이 역시 무슨 가사인지 제대로 알 수 없는 외국 밴드들의 노래만큼이나 흥미로운 것이었다. 그저 음반 해설지나 잡지 리뷰, 추천 명반 100선 같은 도서 등을 꼼꼼히 찾아 읽으며 감흥을 즐기는 방식이었다. 눈으로 음악을 듣는다고 해도 무방했다. 말하자면 단순한 지적 유희와도 같은 것이었다. 이후 대학에서 예술사조 강의를 들을 때마다 졸음과 싸웠던 것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최근 음악 장르들은 더욱 세분화되거나 전문화되었고 게다가 음악을 굳이 눈으로 들을 필요도 없어졌다. 그 때문인지 그때처럼 미사여구로 가득한 글들 역시 찾아보기 어렵다. 한 시대를 풍미한다고 평가받는 슈퍼스타의 존재도 이 미사여구들과 함께 사라진 듯한데, 상대적으로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주던 그 글들이 가끔 그리울 때도 있다. 전보다 풍요롭고 다양하게 음악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인데도 말이다.

이승욱 월간 대구문화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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