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물
빛과 물의 거리
빛과 물의 모퉁이
구름이라고 하는
새라고 하는
그리고 당신이라고 하는
사랑이라고 하는 말이
오늘은 빛과 물 속을 지난다
오늘은 어느 길을 가도 너와 만난다
길은 모두 빛과 물의 길
빛과 물의 말
빛과 물인 너
어디선가 또하나의 꽃이 소리없이 열리며
빛과 물을 휘저어놓는다.
(『전봉건 시 전집』 문학동네. 2008)
이 시는 봄이 시작되는 바로 지금의 시다. 겨울의 날카로워진 빛과 소리를 잃은 물이 따뜻함과 소리를 얻어 다시 반짝이기 시작하는 계절. 빛과 물이 서로 만나 온 세상을 적시고 구름도 새도 사랑하는 이도 모두 그 빛과 물의 기쁨에 취해 있다. 구름과 새와 사랑하는 사람은 빛을 얻어 나에게 보여지는 그 무엇이 되고 그 가시성은 물속에서 굴절되면서 내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물질이 된다.
어느 길을 가도 우리는 기쁨과 만난다. 늘 세상이 그런 세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모든 길이 빛과 물처럼 순리대로 흐르고 빛과 물의 말을 나누고, 빛과 물처럼 따뜻하고 부드럽게 서로를 안아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세상은 그렇게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흰 꽃이, 붉은 꽃이, 노란 꽃이 그 빛과 물을 휘저으며 그걸 둥글게 말아 올리거나 직각으로 구부리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봄은 아라베스크 문양처럼 빛과 물로서 세상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봄에는, 잠시만이라도, 울음을 멈추고, 빛과 물인, 우리, 꽃처럼 아,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