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칼럼] 공공 R&D 혁신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입력 2015-03-11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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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강원도 원주생. 원주고·고려대. 고려대 경제학 석·박사.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 산업연구실 실장
1970년 강원도 원주생. 원주고·고려대. 고려대 경제학 석·박사.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 산업연구실 실장

공공 R&D 정책 기조에 위기감 고조

많은 자금 들여도 가시적 성과 못 찾아

관련 부처들 실적 위해 사업화에 주력

연구개발 행정 틀에 넣으려는 발상 잘못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연구개발(R&D, Research and Development)이란 지식을 축적하고 그 활용성을 높이는 창조적인 활동으로 정의되고 있다. 한 국가가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충분한 연구개발을 통해 지식 자산이 축적돼야 한다. 이것이 기술 경쟁력을 높이고 산업 고부가화의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식을 축적하는 과정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하다. 더구나 대부분의 연구활동은 성공보다 실패로 끝날 확률이 훨씬 더 높다.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연구개발을 시장에 맡겨 놓으면 필요로 하는 수준에 크게 모자라게 된다. 그래서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도 국가 전체 R&D에서 정부가 관여하는 공공 R&D가 약 4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정부의 역할이 크다.

그런데 최근 공공 R&D 정책 기조를 흔들 수 있는 위기감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한 배경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해마다 많은 자금이 들어가는데 뚜렷하게 가시적인 성과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미 흔히 언급되는 바와 같은 논문 수, 기술료 수입, 사업화 건수 등 세부적인 성과 지표의 문제에서 벗어난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이 주도하는 스타 기술이 쉽게 떠오르지 않으며, 전반적인 산업 경쟁력에서도 선진국과의 거리는 좁히지 못한 채 중국에 추월당하는 부문이 늘어만 간다. 특히 시간이 갈수록 잠재성장률이 추락하면서 우리의 연구개발은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는 의문이 확산하고 있다.

둘째, 국민들이 성장보다는 분배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졌다. 이에 따라 복지, 고용 등에 대한 수요가 크게 높아져 정부 예산의 무게중심이 그러한 쪽으로 빠르게 이동 중이다. 정부의 재정수입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부문의 예산을 줄여야만 한다. 공공 R&D 관련 예산도 예외가 아니다. 그동안 많은 자금을 투입하고서도 뚜렷한 성과가 나타나지 않은 부문이 손대기에 가장 명분이 서기 때문이다. 특히 연구개발은 속성상 먼 미래를 위한 투자이다. 그리고 어려운 민생은 현실적인 생존 문제이다. 지금 살아 있어야 미래도 기대할 수 있다. 이러다가는 R&D에 대한 여론 기반이 크게 약화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인지 관련 부처들에서 성과를 내기 위한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사업화가 중요한 성과 지표로 대두하고 있다. 그런데 이건 아니라고 본다. 이렇게 되면 자율성과 창의성이 보장되어야 하는 연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또한 연구개발비를 사용하는 많은 부처가 실적평가 때문에 사업화에 목매게 된다. 공공 R&D의 주변 환경이 악화하는 현실에서 관련 부처들이 성과를 높이고자 하는 노력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과연 얼마나 될지는 의문이다. 2013년 현재 공공연구기관 기술보유 건수는 약 25만여 건에 달한다고 하는데 대부분이 장롱기술이라 한다. 사업성이 있었으면 누군가에 의해 벌써 그 성과가 나타났었을 것이다. 방향이 잘못되었다. 공공 R&D의 혁신을 하려 한다면 연구개발의 출발점에서 찾아야 한다. 연구 주제와 연구자의 선정 단계가 보다 강화되어야 한다. 특히 정부 연구개발사업의 혁신은 진실되고 열정적인 연구자를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나아가 연구개발 활동의 동기 부여가 필요하다. 그 사람에 대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간섭하지 말고 기다려 주어야 한다. 그래서 온 정신이 연구에만 매달리게 하여 1년 365일 연구실의 불이 꺼지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사업화는 그다음의 문제다. 제발 연구개발을 행정의 틀에 넣으려는 생각과, 반드시 성과가 나와야만 한다는 생각부터 버려주었으면 한다.

필자가 얼마 전 공공 R&D의 방향성에 대한 우려를 담은 비슷한 취지의 보고서를 작성한 바 있다. 정부기관들로부터 전화도 많이 받았다. 그중에서 기억이 나는 것은 이름도 밝히지 않고 보고서 상의 정부연구개발사업 성과와 관련된 데이터의 출처가 어디이고 그 숫자가 맞는지 따지는 전화였다. 그 정도로 민감한 모양이다. 안쓰럽기도 해서 대부분 그냥 듣기만 했다. 차마 그 출처가 그 사람이 소속되어 있는 정부기관의 수장 이름이 첫 페이지에 버젓이 박힌 문건에 나오는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주원/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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