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믈리에·바리스타·밴드…학생의 꿈과 끼를 키워줘라

위기의 일반고 경쟁력 살리려면

일반고가 도약하려면 위기를 극복하려는 의지와 어떻게 달라질지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특히 학생 수준에 맞춘 교육 프로그램을 어떻게 전개할지 연구할 필요가 있다. '실용음악 과정' 진행 모습. 달서고 제공

달서고의 '소믈리에+바리스타 입문 과정' 운영 모습.

일반고가 붕괴 위기라는 말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이 같은 현상을 두고 특수목적고와 자율형사립고가 위세를 떨치는 탓이라는 지적이 있는 반면 일반고 스스로 변화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것이 근본 원인이라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일반고가 돌파구를 찾기 위해 힘을 쏟아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물론 일반고라고 다들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다. 문제는 '잘나가는' 고교의 교육과정을 흉내 내는 데 그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체형, 체격이 다른데 같은 옷을 입는다고 멋져 보일 리 만무하다. 학생과 교사의 수준, 학교와 주변 교육환경 등 자기 학교의 여건에 맞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것이 도약의 발판을 만드는 데 더 효과적이다. 대구시교육청이 학교 여건에 맞는 진로 집중 과정을 잘 운영한 곳으로 꼽은 달서고의 사례와 더불어 올해 시교육청의 일반고 경쟁력 강화 방안에 대해 살펴봤다.

◆'적성과 진로, 수준을 고려한 교육', 달서고의 교육과정 운영 방식

'진로 집중 과정'은 단순히 인문'자연계열 구분에서 벗어나 학생의 흥미와 적성 등을 고려해 진로를 적절히 안내할 수 있도록 편성한 교육과정을 이르는 말이다. 국제정치, 생명과학실험, 과제연구 등 소수의 학생이 선택하는 '심화과목'과 교육학, 심리학, 미디어의 이해 등 대학에 진학 후 전공하고 싶은 분야를 미리 경험해 이해도를 높이는 '전공 탐색 과정'도 여기에 포함된다.

달성군 하빈면에 자리한 달서고등학교(교장 양근식)는 지난해부터 최근 겨울방학 때까지 학교 실정에 잘 맞는 진로 집중 과정을 운영해 대구시교육청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달서고는 시 외곽 지역에 위치한 데다 입학생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 수준별로 교과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한편 다양한 특기'적성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달서고는 기초 학력이 부족한 학생을 위해 ▷개념 이해를 통한 기초 영어 독해 완성 ▷기초 교재를 활용한 수학 탈출 ▷개념으로 배우는 국어 완성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좀 더 수준이 높은 학생들을 대상으로는 국제정치, 시사 및 전공 영어 독해, 시사논술, 교육학, 심리학 등 심화과목과 전공 탐색 과정을 운영했다.

윤나은(2학년) 학생은 "책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해 기자가 되는 게 꿈"이라며 "시사논술 수업이 어려워 힘들기도 했지만 생각의 폭을 넓히고 미래를 보는 눈높이를 키울 수 있어 좋은 경험이었다"고 했다.

지난 1월 달서고는 다양한 직업 세계를 체험해보고 싶어하는 학생들을 위해 특기'적성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소믈리에+바리스타 입문 과정'은 대경대, 대구공업전문대와 연계한 프로그램. 소믈리에(포도주를 전문적으로 관리하고 추천하는 사람), 바리스타(커피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사람) 등 두 과정을 각 8시간씩 운영했다.

박수민(2학년) 학생은 "교과 학습에서 벗어나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을 학교에서 접할 수 있어 즐거웠다"며 "직접 커피를 내려보고 포도주 향을 맡아보면서 작은 카페를 열고 싶다는 꿈이 더 굳어졌다"고 했다.

대구예술대와 연계, '실용음악 과정'도 8시간에 걸쳐 진행했다. 참가 학생들은 각 악기의 특성과 기본 연주법, 실용음악 장르와 편곡법 등을 배웠다. 안휘습(3학년) 학생은 "실용음악 강좌를 통해 짧은 시간이었지만 전자 기타를 접할 수 있어 정말 좋았다"며 "대학에 진학한 뒤에도 밴드 활동을 하면서 기타를 연주하고 싶다"고 했다.

달서고는 올해도 학생들의 수준과 소질, 적성에 맞춰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달서고 김순천 교감은 "시 외곽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노력 없이는 학교가 살아남기 힘들다는 데 교사들이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학력 향상과 진학에 초점을 맞춘 수준별 맞춤식 교과 프로그램과 적성과 진로를 고려한 체험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운영할 것"이라고 했다.

◆대구시교육청, 일반고 지원 확대한다

'일반고 교육 역량 강화 사업'은 일반고 학생의 진로와 적성에 맞는 선택과목과 프로그램 등 진로 집중 과정을 다양하게 운영해 일반고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대구시교육청은 올해 이 사업에 대한 지원을 늘려 일반고 살리기에 나선다.

지난해 이 사업의 핵심은 '학교 간 협력 교육과정 거점 학교', 이른바 '클러스터' 운영이었다. 대구 전체 고교 91개교 가운데 자율고, 특목고, 특성화고를 제외한 일반고 50개교가 참여했다.

시교육청이 클러스터 방식을 택한 것은 개별 고교가 다양한 선택과목 등 진로 집중 과정을 운영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시교육청은 인근 고교끼리 묶어 8개 클러스터로 나눈 뒤 소수의 학생이 선택한 과정을 각 클러스터의 거점학교에 개설하고, 나머지 고교 학생들이 거점학교를 찾아 해당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

시교육청 측은 "각 고교가 정규 교육과정에 보충수업까지 진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소수의 학생만 선택하는 과정을 많이 운영할수록 강사 수급과 관리, 운영 비용 등 학교의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며 "각 일반고가 클러스터별로 연계해 다양한 교육과정을 운영,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질 수 있게 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클러스터를 운영한 결과 학생들의 수요와 수준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고교 간 협력도 원활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럼에도 시교육청은 올해 클러스터 방식을 유지한다. 다만, 각 고교가 자체적으로 진로 집중 과정을 좀 더 운영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시교육청이 가장 우선적으로 지원하는 세부 사업이 '학교별 학생 소질과 적성 중심의 진로 집중 과정 설계'. 각 고교가 학교 내에 3개 이상의 진로 집중 과정을 개설하게 한 것으로 얼마나 이 과정을 잘 편성해 운영하느냐에 따라 고교당 5천만~1억원을 차등 지원한다. 정규 교육과정에 진로 집중 과정을 포함하기 힘들다면 평일 야간이나 주말, 방학 중에 운영하도록 할 예정이다. 현재 각 고교의 이 과정 운영 계획이 마무리 단계여서 다음 달이면 본격적으로 운영될 전망이다.

일반고 교육 역량 강화 사업 중 '꿈&끼 해피 데이'는 시교육청이 이번에 새로 추가한 것이다. 매주 수요일 8, 9교시를 보충수업 없는 날로 정해 각 고교가 학생의 소질과 적성, 수준에 맞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운영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도록 했다. 이 시간에는 ▷진로'진학'직업 캠프나 대입 전형 아카데미 ▷전문가 초청 특강 ▷주제탐구형 진로동아리 ▷연구논문 쓰기, 인문학 강좌, 실험 연구과정 등 대학 및 전문기관 연계 프로그램 ▷학습 부진 진단 및 관리, 자아존중감 교육 등 학습 결손이나 기초학력 미달인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도록 권장한다.

클러스터를 통해 진행될 프로그램은 단순 문제 풀이식 수업에서 벗어나 주제를 정한 뒤 탐구, 토론하는 '프로젝트 학습' 위주로 운영한다. 특정 과정을 교육하는 데 강점을 지닌 학교를 거점 학교로 선정한 뒤 평일 야간과 주말, 공휴일을 이용해 각 고교가 따로 개설하기 힘든 소수 선택과목, 전공 탐색 과정 등을 다루게 한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학생, 학부모, 교사를 대상으로 한 특강이나 연수 등을 통해 대입제도의 변화와 교육 정책, 특색 있는 진로 집중 과정 등 변화하는 교육의 흐름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기회도 늘려나간다"며 "고교별, 지역별 여건을 고려한 고교 간 연계 프로그램과 거점 학교 운영 등을 통해 일반고의 경쟁력을 높이고 교육 격차를 해소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채정민 기자 cwolf@ms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