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사용하기는 어려워지고 잃기는 쉬워진다"

입력 2015-03-07 05:00:00

모이제스 나임
모이제스 나임

권력의 종말/모이제스 나임 지음/ 김병순 옮김/ 책읽는수요일 펴냄

'땅콩 회항으로 구속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연말정산 세금폭탄 논란에 고개 숙인 정부'여당' '쉽사리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복지'증세 논란' '지지부진한 사회'경제 개혁'….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이 같은 우리 시대의 문제들을 모이제스 나임은 '권력의 종말'이라는 말로 일갈(一喝)한다.

조 전 부사장의 갑질은 아마 땅콩 회항 소동 이전에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 큰 사회적 파장과 일신의 구속이라는 상황 속에서도 진정으로 뉘우치는 모습을 찾기 어려운 탓이다. "도대체, 내가 뭘 그렇게 크게 잘못했다는 말인가?"라는 반문이 오히려 솔직한 심정일지 모른다. 그렇다. 조 전 부사장은 변하지 않았지만, 우리 사회는 변했다. 그래서 과거에는 그처럼 문제가 되지 않던 재벌가 딸의 갑질이 지금은 사회적 분노와 법적 처벌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무소불위처럼 여겨졌던 정치권력도 예전 같지 않다. 여론에 이리저리 휘둘리고, 옥신각신 다투기만 할 뿐 뭐 하나 제대로 결정하지 못하는 국회 역시 작아지고 있다.

권력은 한 집단(개인)이 다른 집단(개인)에 중요한 일을 하게 하거나 못 하게 하는 능력을 말한다. 이런 권력이 작동하면서 일어나는 거대한 변화의 파노라마는 기업과 정치의 영역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교회나 종교집단, 노동조합, 자선단체, 연구실, 대학, 박물관, 화랑, 음반회사, 출판사, 영화사,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에도 권력은 깃들어 있고, 따라서 닥쳐오고 있는 엄청난 변화를 피할 수 없다.

저자 모이제스 나임은 권력을 연구하는 학자이자, 권력을 집행하는 권력자이기도 하다. 36세에 베네수엘라 무역산업부 장관을 지냈고, 14년간 폴린폴리시의 편집장을 지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최대 일간지의 국제평론가이며, 파이낸셜타임스의 '저명인사 목록'에 포함된 기고자이고, 애틀랜틱의 편집고문이기도 하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최고연구원으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그는 "권력을 얻기는 점점 쉬워지고, 사용하기는 어려워지며, 잃기는 쉬워지고 있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권력 투쟁은 점점 격렬해지고 있지만, 권력의 힘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변화는 권력의 이동이나 분산, 쇠퇴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동안 알고 있는 권력이라는 개념의 종말을 선언하며, "권력은 지금까지 우리가 이해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훨씬 더 근본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 중"이라고 강조한다.

권력의 종말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은 '양적 증가 혁명' '이동 혁명' '의식 혁명' 3가지이다. 뭐든지 더 많은 세상, 더 풍요로운 세상이 되면서, 국가도 정당도 사회단체도 심지어 범죄단체도 더 많이 생김으로써 권력을 가진 집단이 다른 집단을 통제하기 어려워지면서 권력의 종말은 시작됐다는 설명이다. 더욱이 사람, 돈, 아이디어, 상품, 서비스, 이데올로기, 금융위기, 질병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더 많은 이동을 하게 됐다. 이러한 이동 혁명은 새로운 도전자들이 기득권의 장벽을 우회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 두 혁명은 새로운 사고방식과 마음가짐, 기대, 열망, 행동과 가치관을 창출하면서 권력의 종말을 초래하게 됐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권력의 종말은 장점도 많다. 유권자로서, 기업가로서, 혁신가로서, 시민으로서, 투자자로서, 소비자로서 전보다 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반면에 우리 사회가 경험하고 있듯이 정체와 마비상태라는 부작용을 피하기 어렵다. 권력의 종말로 인해 각국 정부가 어떤 정책도 합의에 이르거나 추진하지 못하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보다 많은 권력이 개인에게 이전되는 것이 다가올 사회의 한 모습이다.

'권력을 가진 자, 권력을 원하는 자 모두가 읽어야 할 책'으로 이 책이 꼽히는 이유는 신문을 읽고, 뉴스를 보고, 스마트폰을 보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는 방식을 '다르게 생각해 보자'고 제안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석민 기자 sukm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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