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의 신규 원전건설과 관련,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안전이다. 영덕 원전 추진이 늦어진 것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국내 원전을 둘러싸고 비리들이 줄줄이 들춰지고 수사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론상 아무리 안전하다 하더라도 부품이 위조되는 지경이라면 안전이 담보될 수 없다는 것이 원전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다.
두 번째는 원전이 과연 지역발전을 약속할 보증수표가 될 수 있는 가다. 국내의 부산 기장군 고리원전과 관련, 기장군이 부산대학교에 용역을 의뢰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마을은 원전건설 기간 중 해당 지역경제가 일시적으로 활력이 돈 것은 사실이지만, 건설이 끝나면 도리어 지역경제가 자생력을 잃고 몰락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미국의 한 폐로지역의 사례 역시 지역경제가 원전 의존형 경제로 바뀌면서 폐로 이후 해당 지역경제와 사회가 급격히 붕괴한 것을 보여주고 있다. 반짝 원전건설 경기가 결국 부도수표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산 기장군 장안읍 길천리
부산 기장군 장안읍 길천리는 원래 반농 반어업의 경제구조에 해수욕장에서 오는 관광수입이 더해진 전형적인 바닷가 마을이었다. 1971년 고리1호기가 건설되기 시작하면서 마을의 경제구조는 급격히 바뀌어 갔다. 먼저 원전건설로 농업과 어업 그리고 관광업이 축소되거나 상실됐다.
원전건설과 함께 유동인구가 많아지면서 상업과 임대업 등이 발달했다. 그러나 원전건설이 끝나자 인구가 대거 유출되면서 상권이 크게 줄어들었다. 또한 최근의 원전 추가 건설은 그에 따른 인구유입과 경제효과가 과거에 비해 상당히 줄어들면서 마을은 경제적으로 낙후되고 침체일로를 걷고 있다.
인구주택총조사를 보면 1971년 기장군 장안읍의 인구는 1만2천480명이었다가 원전이 건설되기 시작하면서 10년 만에 1만9천 명을 돌파했다. 건설 인력 유입과 더불어 유흥업'임대업 등이 번성했다. 하지만 고리4호기 건설이 완료된 1986년부터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해 2010년 현재 장안읍의 인구는 원전이 들어서기 전보다 3천 명 이상 줄어든 8천300여 명에 불과하다. 신고리4호기까지 건설이 더 진행됐지만, 이젠 건설 인력은 교통망이 좋아지면서 해당 지역에 상주하기보다 편리한 다른 도심지역에 거주하며 일시적 체류로 주거 형태를 바꿨다.
사실 길천리를 포함한 고리'월내 지역은 해안 경관이 매우 수려했지만 고리원전이 들어서면서 천혜의 자연환경이 사라졌다. 주민들은 월내~길천 해수약장의 규모가 한국의 10대 해수욕장, 부산의 5대 해수욕장에 지정될 정도로 명성이 자자했다고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원전건설 과정에서 바다가 매립되면서 해안선의 변화가 찾아왔다. 자연방파제 역할을 하던 백사장은 유실되기 시작했다. 결국 관광객들로 북적이던 해수욕장은 눈앞에서 사라졌다.
고리원전건설 이전 지역경제의 한몫을 담당하던 어업 역시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백사장 소실로 인해 해수욕장이라는 관광자원의 상실뿐만 하니라 전통어업방식인 '후리질'(얕은 바다나 강에서 행해지는 전통 어로기법)이 불가능해졌다. 여기에 원전 반경 700m에 대한 어로제한 구역이 설정되면서 어업 해역이 줄어들었다.
원전의 냉각수 공급과 배출과정의 영향으로 어종 변화와 함께 어획량도 줄어들었다. 백사장이 사라지면서 패각류도 자취를 감추었다.
한국수력원자력 자료에 따르면 고리원전과 관련해 기장군에 대한 어업 관련 보상 내역을 보면 1980년부터 1992년까지 4차례에 걸쳐 총 58억9천500만원이 어민들과 수협 등에 지급됐다. 더 이상의 보상은 없었다.
◆미국 메인주, 원전 폐로 이후
메인(Maine)주 위스카셋(Wiscasset) 지역에 있는 메인 양키 원전(90만kW급)은 1972년 가동을 시작해 경제적인 이유로 1997년 폐로를 시작했다. 폐로는 2005년 미국원자력규제위원회(NRC)로부터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잘 진행됐다.
하지만 폐로지역에는 1천434개의 핵폐기물이 64개 관(캐스크) 속에 들어 있고, 이를 언제 어디로 옮길지 엄두도 못 내고 있는 상황이다. 폐로 이후 신성장 산업을 찾지 못해 도심공동화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이곳 바닷가재 가게 주방장 메튜(Matthew) 씨는 "원전 폐기물이 지역에 있다 보니, 사람들이 들어오려고 하지 않는다. 원전 폐로 이후 가게 매출이 3분의 2 이상 줄어들었을 정도로, 도시가 죽어버렸다"고 했다.
위스카셋 세무담당 수잔 발레이(Susan Varney) 씨는 "도시 경제사정이 참혹할 정도다"라며 각종 지역경제지표를 공개했다. 1992년도 연간 400달러가량 내던 세금이, 폐로가 진행된 98년에는 1천600달러, 현재는 2천달러가 훌쩍 넘는다. 시가 돈이 없다 보니 주민들의 집세를 올리는 방식으로 세금을 충당하고 있는 것이다.
원전이 돌아갈 때는 세금이 많아 집세도 낮고, 지역에 투자되는 돈이 많아 인구도 넘쳐났다. 도시인구는 현재 3천700명으로, 20년과 비교해도 달라진 게 없다. 도시 내에 개발지역이 2배 이상 크게 늘었지만, 인구유입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초등학교 1개를 문 닫고, 중'고등학교 2군데만 남았다. 고등학생도 400명에서 현재 100명으로 줄었다. 시는 인구유치를 위해 땅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핵폐기물 보관소 때문에 실효를 얻지 못하고 있다.
매년 120억원씩 거둬들이던 세금은 현재 8억원으로 줄었다. 이 8억원은 핵폐기물 보관하는 대가다. 소방시설 등 긴급주요 안전시설에 대한 투자도 크게 줄었다. 원전운전 당시만 해도 2년에 한 번 소방차를 바꿨지만 지금은 10년에 한 번 바꾸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대형사고가 날 경우 대처능력이 크게 떨어져 있는 상황이다.
발레이 씨는 "원전이 들어올 때 막대한 경제적 혜택을 준다는 사탕발림에 주민들이 속았다. 원전이 있을 때는 정말 먹고살기 좋았는데, 어느 순간 경제성을 이유로 대책 없이 폐로 한 뒤 떠나버렸다"고 했다.
메인주 양키 원전은 수리비와 유지비 등 경제적으로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스스로 폐로를 결정했다. 정부가 중심이 돼 운영하는 국내 원전과 달리, 미국은 전기업체 등 개인회사가 운영하다 보니 폐로 결정이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폐로에 들어가는 비용은 원전 혜택을 받은 주민들의 전기료에서 일정부분 적립해 모았다.
이곳 원전을 폐로 하는 데는 모두 5억7천만달러(6천억원)가 소요됐다. 폐로 이후 직원들은 600명에서 100명으로 줄었다. 100명은 핵폐기물 관리 때문에 이곳에 상주하고 있다. 전기는 다른 지역에서 끌어오기 때문에 전기수급에는 큰 문제가 없다. 폐로는 세계 최초로 발족한 '커뮤니티 페널'을 통해 진행 속도를 높였고 주민 반발을 잠재웠다. 현재도 15명의 패널들이 폐로에 대한 공청회와 방사능 위험에 대한 감시를 계속하고 있다.
미디어 담당자 에릭 하우스(Eric Howes) 씨는 "핵폐기물을 해결하지 않는 한 폐로 이후 산업을 생각할 수 없다"며 "특히 이곳 관리를 위해 소요되고 있는 회사 돈이 매년 100억원에 달할 정도로 손실이 많다. 최근에는 핵폐기물 처리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만들지 못한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1천억원을 받아냈고 앞으로도 소송 전을 계속 해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미국 원전 가운데 폐로 된 이후 녹지로 방치된 것은 모두 12곳. 이들이 모두 소송에 나설 경우 정부는 힘에 겨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폐로 이후 도시가 맨살을 드러낼 정도로 가난해졌다는 것이 더욱 큰 짐이다.
김대호 기자 dhkim@msnet.co.kr
박승혁 기자 psh@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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