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후섭의 "옛날옛적에"] 병을 고치는 음악가

입력 2015-03-02 05:00:00

어느 마을에 아무리 아픈 사람도 깨끗이 낫게 한다는 할아버지가 있었어.

"의사도 아닌데 모든 병을 다 고친다더라."

"그 할아버지를 만나면 모두 웃는 얼굴이 된대."

"어떻게 고치는데?"

"주로 이야기를 한대. 음악을 들려주기도 하고."

"그래?"

한 신문기자가 이 소문을 듣고 할아버지를 찾아갔어.

"어떻게 병을 고치세요?"

"나는 병을 고치지 못하네. 그저 이야기를 나눌 뿐일세."

그때 마침 한 환자가 찾아왔어.

신문기자는 할아버지가 어떻게 하는지 가만히 지켜보았어.

할아버지는 환자에게 어디서 무엇을 하다가 왔는지 물었어. 그리고 어디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었는지도 물었고….

그러더니 구석에 있는 풍금으로 옛 동요를 연주하였어.

서너 곡이 연주되자 그 환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 불렀어.

"아, 이 노래! 제가 어렸을 적에 많이 불렀던 노래였어요."

환자의 얼굴은 별안간 환해졌어.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편안한 얼굴이 되었어.

할아버지는 환자에게 청년 시절 이야기도 물었어.

그러더니 이번에는 서양 나팔로 음악을 연주하였어. 이 음악은 매우 우렁찼어.

"아, 이 음악은 제가 청년일 때에 많이 들었어요. 이 음악에 맞추어 행진도 하였어요."

그러다가 또 다른 음악으로 바뀌었어.

이번에는 매우 고운 바이올린 가락이었어.

"아, 이 음악은 제가 연애를 할 때에 많이 들었어요."

환자는 눈을 감은 채 춤을 추듯 몸을 흔들었어.

음악은 계속 바뀌었어. 그때마다 악기도 바뀌었는데 흥겹기도 했지만 때로는 슬프기도 하였어.

대금 연주가 시작되자 지그시 눈을 감고 있던 환자가 갑자기 부르짖었어.

"아, 아버지! 으흐흐!"

그러자 할아버지가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어.

"그래, 이 세상 모든 아버지들은 언젠가 세상을 떠나게 되어 있네. 그렇지만 자네를 남겨 놓았으니 결코 떠난 것이 아니지. 나의 아버지는 자네 아버지보다 훨씬 먼저 이 세상을 떠나셨지만 이렇게 나를 남겨 두셨지."

음악도 계속되고 중간 중간 이야기도 계속되었어.

이윽고 시간이 지나자 그 환자는 웃는 얼굴로 일어서며 말했어.

"고맙습니다. 모든 것이 제가 잘못 생각한 탓입니다. 이제 응어리가 확 풀렸습니다. 이제 모든 것을 다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는 돈도 받지 않았어.

신문기자가 물었어.

"할아버지, 어찌 그렇게 음악을 잘하십니까?"

"별것 아닐세. 그저 어린 시절 우리 선생님을 떠올린 것뿐일세."

"네에?"

"어렸을 때에 나는 고아원에서 자랐어. 내가 울 때마다 엄마 같은 우리 선생님이 풍금을 들려주곤 하셨어. 지금도 생생해."

"네에."

신문기자는 고개를 끄덕였어.

심후섭 아동문학가·교육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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