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언여한'(綸言如汗)이라는 말이 있다. '예기'에 나오는데 '군주의 말은 흘린 땀과 같다'(出令如出汗)는 뜻이다. 땀이 다시 몸 안으로 들어갈 수 없듯 군주의 말은 되물릴 수 없다는 의미다. 지위가 높을수록 말을 신중히 하라는 경고로 누구든 매사 실언이나 천박한 말을 삼가는 게 도리다.
얼마 전 국회 정우택 정무위원장과 이상민 법사위원장이 김영란법 처리 문제를 놓고 TV 토론회에서 논쟁을 벌이다 급기야 욕설까지 주고받는 일이 벌어졌다. 다행히 녹화방송이라 문제가 된 부분은 편집돼 크게 이슈가 되지 않았으나 의원의 막말'욕설 본능은 의사당이나 TV를 가리지 않는다. 장관이 국회에서 욕설을 내뱉다 문제가 된 적도 있다. 2009년 한미 FTA 비준 동의안을 처리하는 국회 외통위에서 당시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마이크가 켜진 것도 모르고 야당 의원에게 막말과 욕설을 해 파문을 일으켰다.
국회 윤리특별위원회라는 기구가 있다. 여야 15명으로 구성돼 의원 신분에 흠이 있거나 품위를 손상한 의원에 대해 징계와 자격을 결정하는 기구다. 윤리심사자문위원회로부터 출석정지나 경고'사과 등 심사 의견을 받아 해당 의원의 징계를 확정한다. 이번 19대에서 윤리위에 제출된 의원 징계안은 모두 37건(28명)이지만 징계가 확정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다. 의원 10명 중 1명꼴로 윤리위에 회부됐지만 처리는 전무하다는 말이다. 계속되는 의원의 욕설과 막말도 이런 영향이 클 것이다.
올해부터 재판 과정을 모두 녹음하는 '법정 녹음 제도'가 도입되면서 판사'변호사들이 긴장하고 의뢰인의 말도 조금씩 다듬어졌다고 한다. 그동안 조서로 기록되던 변론기록이 녹음으로 대체되면서 재판 당사자들이 실언 등을 막기 위해 리허설까지 한단다. 다산 정약용은 빈천할수록 말수를 줄여야 한다고 했지만 요즘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막말과 욕설이 더 문제인 점을 감안하면 언행을 조심하게 만드는 효과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42년간 총리로 재임하면서 스웨덴 역사상 가장 유능한 총리로 평가받는 17세기 악셀 욱센화나(Axel Oxenstierna) 백작은 죽을 때 이런 유언을 남겼다. '내 아들아, 얼마나 하찮은 자들이 이 세상을 다스리는지 똑똑히 보아라"고. 의원이나 법관이 '하찮은 자'라는 소리 듣지 않으려면 속기록이나 녹음을 의식하기보다 스스로 언행을 주의하는 길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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