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글픈 서민 역주행 대한민국] (5)서민 교육차별 '악'

입력 2015-02-26 05:00:00

공부가 가장 쉬웠다는 1996년 그 말, 사교육비 차 16.6배 지금도 응답할까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가장 교육열이 높은 것으로 정평이 난 대구 수성구 범어동 학원가 일대. 사교육비는 대부분이 유명 학원가에서 소비된다. 매일신문 DB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가장 교육열이 높은 것으로 정평이 난 대구 수성구 범어동 학원가 일대. 사교육비는 대부분이 유명 학원가에서 소비된다. 매일신문 DB
1996년이 그립다. 개천에서 용이 난 대표적인 사례인 장승수 변호사.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1996년이 그립다. 개천에서 용이 난 대표적인 사례인 장승수 변호사.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예전엔 용도 났다지만, 지금은 개천에 미꾸라지만 한가득∼.'

교육은 신분상승의 사다리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판'검사, 의사가 나오고 홀어머니가 키운 자식이 경제적으로 대성공을 거둬 효도하는 그런 사회여야 건강하다. 1996년 '장승수'라는 대입 준비생이 사회적으로 핫이슈가 됐던 적이 있다. 아주 가난한 집안 환경에서 막노동을 했던 이 학생은 서울대 전체 수석이라는 인간승리를 일궈냈다. 이후 이 학생의 공부 투혼을 다룬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는 책을 출간됐는데, 베스트셀러가 됐다. 2003년 장 씨는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지금은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20년 가까이 지난 2015년, '개천에서 크게 용났다'는 소식은 더 이상 언론의 큰 이슈로 다뤄지지 않고 있다. 그만큼 교육 차별이 커졌다는 방증이다. 좋은 집안,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자녀들이 일류 대학이 입학하는 것이 당연지사다. 타고난 집안의 교육환경이 자녀들의 미래까지 보증해주기 때문이다. 서민들에겐 '악' 소리 나는 교육차별의 현실이다.

◆'220만원' VS '40만원'

지난 20여 년 역대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부르짖었던 '백년대계'(百年大計)는 공중에 붕~ 뜨고, 서민 자녀들의 꿈마저 빼앗아버리는 냉엄한 교육 현실이 남아있을 뿐이다. 교육정책은 당초 목표나 취지와는 정반대로 역주행에 역주행을 거듭하고 있다. 2015년 대구지역 내 교육격차 들여다보면, 대한민국 교육의 현 주소를 가늠해볼 수 있다.

#1. 대구 수성구 범어동에 사는 한 가정의 한 달 교육비는 220만원이다. 아버지, 어머니 모두 의사인 이 집안에는 딸만 둘이다. 고교생인 첫째 딸은 음악을 전공하려고 학원을 다니고 있는데, 학원비와 개인 레슨비만 150만원이다. 중학생인 둘째 딸은 부모처럼 의사가 되고 싶어한다. 첫째 딸보다는 적은 금액이지만 학원비와 수학 개인과외비 70만원이 든다.

#2. 서구 내당동에 사는 한 가정의 교육비는 40만원이다. 자녀가 셋이라 1명당 13만원 정도 드는 셈이다. 이 집안의 가장은 성서산업단지로 출퇴근하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월 250만원의 수입으로 살림을 꾸려나가야 할 형편이다. 부인은 평범한 주부로 살고 있다. 중학생인 첫째'둘째 학원비가 30만원 정도, 초등학생인 막내딸 피아노 학원레슨비 10만원이다.

대구라는 한 도시에서마저 가정형편에 따라 자녀 1인당 교육비가 9배나 차이 나고 있다. 이 격차는 노력으로 극복될 수 없는 현실의 벽이다.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똑똑한 부잣집 아들보다 몇 시간 덜 자고, 코피를 흘려가며 공부해서 전교 1등, 반 1등을 차지하는 불굴의 투지를 보여준 가난한 학생들이 더러 있었다. 2015년 불굴의 투지로 공부하는 학생들은 코피만 날 뿐, 공부 실력은 제자리에 머무는 경우가 대다수다. 대한민국의 교육은 이렇듯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다.

◆갈수록 격차 벌어지는 사교육비…'교육의 양극화' 심각

지난달 7일 시민단체인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은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3/4분기의 '가계동향지수' 중 학생 학원교육비(사교육비)를 분석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골자는 소득계층별 사교육비 지출 격차가 2013년 10.1배에서 지난해 16.6배로 차이가 더 벌어졌다는 내용이다.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교육차별'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소득 1분위(최하위 저소득층)와 소득 10분위(최상위 고소득층)의 격차가 2013년 3/4분기에 소비지출 격차 4배, 사교육비 10.1배에서 지난해 3/4분기에 각각 4.3배, 16.6배로 더 벌어져 갈수록 교육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불경기 탓인지 전체 가구당 사교육비 역시 2013년 18만2천900원에서 지난해에는 17만9천원으로 3천900원이 감소했다. 더욱 특이할 만한 분석은 소득 10분위의 경우 사교육비가 0.8% 감소한 반면 소득 1분위는 무려 39.5%나 떨어져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구일수록 사교육비 지출이 급격하게 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나라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교육 격차는 더 급격하게 벌어지고 있음을 통계가 보여주고 있다. 교육부는 이런 통계자료에 대해 "소득계층 간 사교육비 지출 격차가 심각해짐에 따라 사교육비 격차가 교육차별로 이어지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 조속히 도입해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가 마련한 미봉책(?)들에 대해 대한민국 학부모들은 이제 실망을 넘어 체념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대구,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 전국 4위

대구는 교육도시답게 사교육비 지출이 많은 도시로 정평이 나있다. 지역 최고의 교육구인 수성구를 중심으로 대구의 교육열은 사교육비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전국 시도별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 자료에 따르면 2013년 24만2천원으로 전국 16개 시도 중 4위를 차지했다. 2012년에는 24만8천원으로 전국 3위,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최고를 기록한 바 있다.

2013년 가장 많은 사교육비를 지출한 시도는 서울이 32만8천원으로 1위를 차지했으며, 2위 대전 25만9천원, 3위 경기 25만3천원 순이었다.

대구의 경우 사교육비(2013년 기준)는 ▷초등학생 21만9천원 ▷중학교 26만7천원 ▷고등학교 24만9천원으로 중학생 사교육비가 가장 많이 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국 시도별 사교육 참여율 역시 대구는 4위였다. 2013년 기준으로 서울이 75%로 1위, 대전이 72.7%로 2위, 경기가 72%로 3위를 차지했다. 대구는 71.9%로 전국에서 사교육열이 높은 도시임을 나타냈다.

경북은 사교육비 지출이 낮은 편이었으며, 참여율도 전국 시도 중에서 가장 낮은 편이었다. 사교육비는 18만7천원으로 전국 12위를 차지했으며, 참여율은 64.3%로 전국 11위를 기록했다.

특이한 통계 중 하나는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사교육비 지출과 참여율이 높게 나타난 점이다. 여학생의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4만3천원으로 남학생의 23만5천원보다 높았으며, 참여율 역시 여학생이 69.3%로 남학생의 68.4%보다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교육차별 및 양극화도 통계조사에 극명하게 드러났다. 성적 상위 10% 이내 학생의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31만6천원인 반면 하위 20% 이내 학생은 16만2천원으로 성적 상위권 학생들의 사교육비가 하위건 학생들의 갑절에 달했다.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의 송인수'윤지희 공동대표는 "공교육 정상화와 교육 희망사다리 재구축을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들이 실천되어야 교육차별이 완화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기획취재팀 권성훈 기자 cdrom@msnet.co.kr

신선화 기자 freshgir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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