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생기면 '돈 보따리' 풀어 해결…지자체도 지원금 유혹 못 뿌리쳐
한국 원자력발전소(이하 원전) 정책이 시끄러운 이유는 뭘까? 미국'캐나다 등 해외 원전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소통과 신뢰 부족'을 원인으로 꼽았다. 그들은 "한국은 뛰어난 원전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국민들에게 '늘 불안하다'는 하소연을 듣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또 일방적인 원전 정책 추진에 대해 '매우 위험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들의 평가처럼 한국의 원전 정책은 미로에 갇힌 것처럼 답답하다. 일은 엄청나게 벌여놨는데 마무리가 제대로 안 된다는 얘기다. 주민들의 의견 수렴 없는 '일방통행식' 업무 추진이나 주민 반발이 있을 경우 돈으로만 해결하는 원전 정책은 전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원전 정책과 돈이 직결되다 보니, 안전은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원전을 둘러싼 '돈 메커니즘'에 원전 안전 관련 정보가 숨어들고, 일부 이해관계자들이 중심이 돼 원전 정책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이를 내놓고 비판하기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여기에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들도 세금이나 지원금 등 원전 혜택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내심 원전을 반기는 경우도 많다.
◆원전이 돌아가면 해당 지자체장이 '싱글벙글'
영덕과 울진은 경계를 이루고 붙어 있지만 자치단체장이 쓸 수 있는 재량 예산은 10배 가까이 차이 난다. 매년 원전을 통해 받는 200억원 가까운 기본지원사업비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가난한 영덕군수'는 주민들을 위해 여유롭게 돈을 쓸 수 있는 '부자 울진군수'를 부러워한다. 가난한 영덕군수도 최근 정부가 영덕에 원전 유치를 추진하자, 이를 호재로 여기며 주민간담회 때마다 '원전 유치의 당위성'을 밝히고 있다.
원전 유치로 예산이 많아지면 사회간접자본(SOC) 확충 등 다양한 사업이 가능해지고, 이것이 군수 치적이 되기 때문에 단체장 입장에서는 원전 유치가 달가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원전 유치 이후 변화되는 산업에 대한 고민이 없다는 점에서 근시안적인 판단이라는 지적이다. 미국 메인주 위스카셋 지역의 경우 원전 운영에 대해 굉장히 긍정적이었지만, 폐로 이후에는 입장이 확 바뀌었다. 신성장 산업을 찾지 못해 도심 공동화 현상을 겪는 것도 부족해 예전의 지역특산물인 '바닷가재'도 원전지역이라는 오명 때문에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대게 팔고 원전 유치'라는 영덕어민들의 주장이 해외 사례를 본다면 헛구호는 아닌 셈이다.
위스카셋 세무 담당자는 "원전이 돌아가면 돈을 풍족하게 쓸 수 있기 때문에 선거를 계속 치러야 하는 단체장이 가장 활동하기 좋아진다. 그래서 당시에도 단체장이 나서 원전 유치에 사활을 걸었다"며 "폐로된 이후 도시를 보니, 원전 유치 당시에 원전산업에 대한 다각적인 분석과 주민 수용성을 보다 꼼꼼히 따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원전 정책을 돈으로 해결하는 유일한 국가
미국과 캐나다 원전 정책은 폐로와 계속운전으로 분명한 반대 성향을 갖고 있지만 원칙만큼은 궤를 같이한다. 원전 정책 결정 시 100% 공개와 주민 참여, 그리고 돈을 배제한다는 것이다. 원전 유치 또는 계속운전 결정 시 주변 지역민들에게 주는 혜택은 '취업' 외에는 없다. 원전과 경제적으로 관계가 없다 보니 원전을 감시하는 주민들의 눈도 매우 매섭다.
캐나다 온타리오 발전소 홍보팀 관계자는 "계속운전을 주장하기에 앞서, 안전에 대한 공개와 지역사회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 우선이다. 정기적으로 지역민들과 함께 주민설명회를 열고, 특히 원전에 반대하는 NGO들의 완전한 이해를 얻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했다.
반면 국내 원전은 처음에는 '안전'으로 시작했다가 '돈'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월성1호기가 재가동으로 승인되면 '안전 불안'을 외치는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정부는 엄청난 '돈 보따리'를 풀 가능성이 높다. 경주에서도 이왕 재가동 승인이 날 거면 실익이라도 제대로 챙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부에서 벌써 나오고 있다. 양남 등 동경주 지역 주민들은 반대가 원칙이지만 계속운전 결정에 따른 주변지역 지원 문제도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의견이다.
주민들은 국내 처음으로 계속운전으로 결정된 고리1호기 사례를 유심히 살피고 있다. 당시 정부는 고리1호기 계속운전 대가로 특별가산세 50억원을 제외하고 1천960억원을 지역에 줬다. 고리1호기 주변지역인 기장군과 울주군 등은 연안바다 목장화 사업, 농수산물 특산물 판매장, 장례식장, 체육관, 간절곶전망대 건립 등에 돈을 투자하며 주민들의 반대를 잠재우는 동시에 실익을 얻었다. 월성1호기 역시 계속운전이 결정된다면 고리1호기 이상의 돈이 들어갈 전망이다.
민간환경감시센터 한 관계자는 "국내 원전 정책이 말로는 안전을 외치지만 대부분 돈으로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에, 결국은 '주민 반발-자금 투입-원전 정책 추진'이라는 악순환이 이어질 것"이라며 "지역주민들도 돈 때문에 안전이 묻혀 버리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도 워낙 지원금이 막대해 내놓고 말을 못하고 있다"고 했다.
포항 박승혁 기자 psh@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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