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에서-가정 여성] "도를 넘은 효자 아들, 나랑 왜 결혼했는지…"

입력 2015-02-26 05:00:00

◇고민=저는 40대 후반의 평범한 주부입니다. 결혼생활 내내 엄마라면 죽고 못 사는 그야말로 도를 넘은 효자 아들과 살아오느라 진이 다 빠졌어요. 결혼하지 말고 혼자 지극 정성으로 효도나 하면서 살지 왜 결혼했는지 정말 알 수가 없어요!

남편은 늘 "불쌍한 우리 엄마, 외도하고 때리는 아버지한테 평생 구박받고 참으면서 오로지 자식을 위해 살아온 우리 엄마, 맏아들인 내가 그 마음 몰라주면 무슨 낙으로 살겠어"라며 평생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이 이야기를 반복합니다.

직장 일 때문에 잠시 분가해 살았지만 오매불망 엄마 걱정만 하는 남편과 사흘이 멀다 하고 아프다며 전화하는 시어머니 때문에 마음 편할 날이 없어 이제는 직장을 옮겨 아래 위층에 살고 있답니다. 남편은 출퇴근 때 아무리 바빠도 아래층 엄마한테 문안 인사를 합니다. 하나 있는 초등학생 딸도 할머니 간섭 없이 2층에서 엄마 아빠랑 셋이 통닭 한 마리 먹는 것이 소원이 될 정도랍니다. 시어머니 혼자 외롭게 음식을 드시기라도 하면 큰일 납니다. 저나 우리 딸은 남편에게 별로 중요한 사람이 아니에요. 남편은 아니라고 펄쩍 뛰지만 말뿐이에요. 그래서 이제 저는 남편 곁을 떠나려 해요. 계속 함께 사는 것은 남편 효도 못하게 제가 죄짓는 일이라 생각해요.

◇해법=도를 넘은 남편의 효도에 질려버린 귀하의 불편한 마음이 절절하게 전해져 옵니다. 남편 사랑 하나 믿고 여러 남매의 장남인 남자를 남편으로 선택해 맏며느리 역할을 자처했습니다만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현재는 이혼까지 생각할 만큼 위기에 직면했군요.

고부갈등 탓인 부부갈등은 아직 우리나라 대부분 가정에서 겪는 일입니다. 귀하의 남편 역시 평범한 가정의 장남으로서 효를 최고의 덕목으로 알고 자기 인생을 성실하게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아내를 단순히 일심동체로만 생각하며 아내의 불평을 귀담아듣지 않아 절벽까지 왔습니다.

귀하는 그동안 남편의 사랑을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시어머니를 모셨지만 언제나 앞서가는 효자 남편 비위를 만족시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시어머니의 마음도 깊이 헤아릴 여유가 없었습니다. 매일 남편의 출근시간에 2층에서 내려다보며 아래층 시어머니께 문안인사 드리고 대문을 나서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며 패배감을 느끼고, 퇴근 시에는 아래층 시어머니께 먼저 인사 올리고 2층으로 올라오는 남편을 맞이하며 애정 다툼에서 패자로서의 씁쓸함을 달래느라 가슴을 쓸어내리며 참았습니다.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며 남편에게 투정을 해보았지만 '불쌍한 우리 엄마'라는 말로 아내의 동조만 구하는 남편 때문에 급기야 정신적 신체적 질병에 수시로 응급실에 가야 하는 불행한 삶을 살았습니다.

옛말에 '효자는 끝이 있다'고 했습니다. 즉 어머니한테 효도하는 남자는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아내한테 충성(?)한다는 뜻이지요. 한 남자를 사이에 둔 애정 다툼에서 패자라고 여기는 내 마음을 내가 다스리는 것이 최선입니다. 내 마음 다스리는 방법을 찾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남편을 내 것으로 생각하는 대신에 내가 사랑받고 싶은 이 멋진 남자가 이전에 누군가의 사랑스러운 아들'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세뇌시켜야 합니다. 시어머니 처지에서 생각하며 수십 년 독점했던 이 사랑을 누군가에게 뺏긴 기분(이해는 되지만 빼앗겼다는 생각 때문에 드는 기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즉 시어머니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멋진 남자로 잘 키워줘 감사하고 어느 날 갑자기 뺏어 와 죄송하다'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동시에 남편은 효도의 방법을 바꿔야 합니다. 어머니의 인생을 아들이 전적으로 책임지려 하지 말고 나의 인생과 분리하며 어머니께 인간의 도리는 하되 의존성은 끊어줘야 합니다. 그리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결국 어머니가 바라는 것은 아들의 행복인데 남편은 부부관계를 돈독히 한 후 아내와 협상한 효도, 아내를 통한 효도가 진정한 가정의 행복에 도달하는 길입니다. 오늘부터 내가 먼저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를 외쳐보면 어떨까요?

■해법 도출 과정

영원히 풀 수 없는 숙제라고 여기는 고부갈등이 생겼을 때 남편이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일까? 이는 매우 어려운 과제다. 결론부터 말하면 가족과 아내가 갈등이 생겼을 때 남편은 무조건 아내 편에 선다. 즉, 가족들 앞에서는 아내의 체면을 세워주고 뒤에서 조용히 타이르는 것이 현명한 해법이다.

보편적으로 남편들이 대처하는 방법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어머니 편들기, 둘째 아내 편들기, 셋째 중립적인 입장에서 방관하기 등이다. 남편이 아내와 어머니 앞에서 어머니 편을 들고 아내는 나중에 집에 가서 위로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의기양양한 시어머니가 아들이 내 편이라고 며느리에게 더 심하게 대할 수도 있고, 또 남편이 아내 편을 들면 시어머니가 아들 뺏긴 설움 때문에 아들에게 섭섭한 마음을 며느리에게 분풀이로 구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두 여자 사이에서 골치 아픈 남편이 중립적인 입장에서 방관하는 것은 가장 좋지 않은 직무유기이다.

본 사례는 남편이 어머니의 불행한 삶을 짊어지고 아내만 양보시킨 첫 번째 유형에 해당한다. 이때 시어머니는 사사로운 가정사를 모두 아들과 직접 의논하며 며느리를 소외시키고 아들에게 의존하며 승자로서 군림한다. 이에 며느리는 무기력에 빠지며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몸과 마음이 병든다. 가장 바람직한 해법은 첫째, 사례자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 인생의 우선순위를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다. 둘째, 남편은 효도의 방법을 바꾸어 갈등이 생길 때 일단 아내 편에서 아내의 마음부터 챙겨야 한다. 즉 남편은 아내를 챙기고 아내는 남편과 함께 시어머니에게 진정한 효도를 하며 남편 사랑을 받아 행복한 가정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박경규 (사)영남가정폭력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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