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제로 연명…시력 장애 아내도 암투병
양쪽 다리가 모두 절단된 김주환(62) 씨에게 인생은 버겁기만 하다. 젊은 시절 당한 교통사고로 양쪽 다리를 잃었을 때만 해도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그였지만 애지중지 키운 20대 딸이 정확한 원인도 모른 채 세상을 떠난 뒤에는 절망 속에서 지냈다. 인간 최대치의 고통을 느낀다는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CRPS)까지 겪고 있는 그가 최근에는 마약성분의 약까지 먹어가며 힘들게 빨래, 청소 등 집안일을 돌보고 있다. 평생 남편을 살뜰히 챙기던 아내가 몇 년 전 심장수술과 위암수술을 받으면서 작은 물건도 들 수 없을 정도로 힘겨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리가 없어도 가족들을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 하나로 버텨왔어요. 그런데 최근엔 아내가 아파도 병원에 데려갈 수 없을 정도로 경제 상황이 나빠지다 보니 사는 게 너무 힘들어요."
◆두 다리 잃고도 가족을 돌본 든든한 가장
명문대를 졸업하고 남들이 모두 들어가고 싶어하는 직장을 얻었던 김 씨. 아내와 결혼해 예쁜 딸까지 얻으면서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것 같은 나날들이었다. 하지만 딸이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김 씨는 동료가 몰던 차를 타고 가다 고속도로에서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병원에서 깨어난 김 씨의 왼쪽 다리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남아 있는 오른쪽 다리를 살리기 위해 16번의 수술을 했지만 결국 무릎 밑으로는 잘라내야 했다.
양다리를 잃고 3년간의 병원생활을 했지만 김 씨는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예쁜 딸아이가 있었고, 80㎏ 가까이 되는 무거운 남편을 작은 덩치로 업고 다닐 정도로 지극정성인 아내가 있었고, 다친 후 금쪽같은 아들까지 얻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퇴원한 김 씨는 가장 역할을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최선을 다해서 했다. 시골에 들어가 동물사육을 할 때는 휠체어가 올라가기 힘든 언덕에서 몇 번을 넘어지면서도 동물을 키웠고, 사고가 나기 전 일했던 건설분야에 다시 취직을 했을 때는 하루에 1, 2시간을 자면서도 열심히 일했다. 인간이 느끼는 최대치 고통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CRPS까지 앓았지만 가장은 한 번도 가족들에게 아픈 내색, 힘든 내색이 없었다.
그 와중에도 자신 같은 장애인들을 위한 봉사활동에도 참여해 가족들에게 자랑스러운 가장이 되려고 노력했다. 가장이 열심히 산 덕분에 두 아이를 키우며 작은 아파트도 하나 마련할 수 있었다.
"아내나 주변 사람들이 무리한다고 말할 정도로 맡은 일마다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 봉사도 사비를 털어서 장애인 단체를 운영할 정도로 열심히 했죠. 다리가 없어도 열심히 살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어요.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병원비조차 없지만 도움 받을 길 없는 부부
다시 행복을 찾은 뒤 김 씨에게는 더 큰 고통이 찾아왔다. 갓 20살을 넘긴 딸이 세상을 떠났다.
꿈을 이루고 싶다며 서울로 떠났던 딸아이는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왔다. 13년 전 겨울 친구들과 저녁 모임을 가지던 딸은 바람을 쐬러 잠시 밖으로 나간 사이 다리 아래로 떨어져 숨졌다. 술에 취한 딸이 난간에 미끄러져 떨어진 것이란 경찰 조사에 친구들은 의문스러운 점이 너무 많다며 몇 달 간 근처에서 목격자를 찾아 헤맸지만 결국 딸의 죽음은 의문으로 남았다.
"친구들 모임에 가기 전 딸아이한테서 전화가 왔었어요. '내일 대구에 가겠다'며 밝은 목소리였죠.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딸의 죽음은 김 씨에게 잘린 다리보다 더 큰 상처를 남겼다. 김 씨 부부는 딸을 잃은 슬픔으로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았고, 활발했던 아들도 말수가 크게 줄면서 조용한 아이로 변해갔다. 딸을 떠나보낸 이후 김 씨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
일하며 모았던 돈도, 어렵게 마련했던 아파트도 세 가족의 생활비와 병원비 등으로 모두 써버린 뒤 부부의 몸은 심하게 망가져 있었다. 오랫동안 CRPS의 통증을 억제하기 위한 약을 먹어온 김 씨는 신장에 이상이 생겨버렸고, 30여 년 전부터 당뇨를 앓아왔던 아내는 왼쪽 눈의 시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
설상가상 아내는 몇 년 전 심장 수술과 위암 수술을 받았다. 남편을 업어서 옮기던 아내는 작은 물건도 들 힘이 없을 정도로 약해져 버렸다. 김 씨는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불편한 다리를 끌고 빨래, 설거지, 청소를 했다. 아내에게 제대로 된 치료를 받게 하려고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길도 만방으로 알아봤다. 하지만 부부에게 도움을 주는 곳은 없었다.
자신의 빚을 갚기에도 정신없는 아들이 작은 회사에 다닌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지 못했고, 김 씨 앞으로 나오는 20만원의 장애연금이 두 사람 생활비의 전부가 됐다. 이제는 몸이 아프면 부부는 덜컥 겁부터 난다.
심지어 올 6월에는 은행빚을 내서 구한 작은 전세 아파트마저 떠나야 할 지경이다. 전셋값은 올려줘야 하지만 부부에겐 더이상 빚을 낼 여력이 없다. 김 씨의 신장은 투석을 받기 직전 상태까지 나빠졌지만, 병원비 걱정에 치료는 꿈도 꾸지 못한다.
"의사 선생님에게 아내를 돌볼 수 있을 때까지만 살려놔달라고 얘기했어요. 새벽마다 기도를 하면서도 똑같은 소원을 빌고요. 혼자면 죽어도 상관없지만 내가 가면 아내는 누가 돌보나요."
김봄이 기자 bom@msnet.co.kr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대구은행). 700039-02-532604(우체국) (주)매일신문사 입니다. 이웃사랑 기부금 영수증 관련 문의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대구지부(053-756-9799)에서 받습니다.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탄핵안 줄기각'에 민주 "예상 못했다…인용 가능성 높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