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양다리 없이 가족 돌보는 김주환 씨

입력 2015-02-25 05:00:00

진통제로 연명…시력 장애 아내도 암투병

양쪽 다리가 모두 절단된 김주환 씨는 힘들게 빨래, 청소 등 집안일을 하고 있다. 평생 남편을 살뜰히 챙기던 아내가 몇 년 전 심장수술과 위암수술을 받으면서 작은 물건 하나도 들 수 없을 정도로 힘겨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양쪽 다리가 모두 절단된 김주환 씨는 힘들게 빨래, 청소 등 집안일을 하고 있다. 평생 남편을 살뜰히 챙기던 아내가 몇 년 전 심장수술과 위암수술을 받으면서 작은 물건 하나도 들 수 없을 정도로 힘겨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양쪽 다리가 모두 절단된 김주환(62) 씨에게 인생은 버겁기만 하다. 젊은 시절 당한 교통사고로 양쪽 다리를 잃었을 때만 해도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그였지만 애지중지 키운 20대 딸이 정확한 원인도 모른 채 세상을 떠난 뒤에는 절망 속에서 지냈다. 인간 최대치의 고통을 느낀다는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CRPS)까지 겪고 있는 그가 최근에는 마약성분의 약까지 먹어가며 힘들게 빨래, 청소 등 집안일을 돌보고 있다. 평생 남편을 살뜰히 챙기던 아내가 몇 년 전 심장수술과 위암수술을 받으면서 작은 물건도 들 수 없을 정도로 힘겨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리가 없어도 가족들을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 하나로 버텨왔어요. 그런데 최근엔 아내가 아파도 병원에 데려갈 수 없을 정도로 경제 상황이 나빠지다 보니 사는 게 너무 힘들어요."

◆두 다리 잃고도 가족을 돌본 든든한 가장

명문대를 졸업하고 남들이 모두 들어가고 싶어하는 직장을 얻었던 김 씨. 아내와 결혼해 예쁜 딸까지 얻으면서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것 같은 나날들이었다. 하지만 딸이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김 씨는 동료가 몰던 차를 타고 가다 고속도로에서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병원에서 깨어난 김 씨의 왼쪽 다리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남아 있는 오른쪽 다리를 살리기 위해 16번의 수술을 했지만 결국 무릎 밑으로는 잘라내야 했다.

양다리를 잃고 3년간의 병원생활을 했지만 김 씨는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예쁜 딸아이가 있었고, 80㎏ 가까이 되는 무거운 남편을 작은 덩치로 업고 다닐 정도로 지극정성인 아내가 있었고, 다친 후 금쪽같은 아들까지 얻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퇴원한 김 씨는 가장 역할을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최선을 다해서 했다. 시골에 들어가 동물사육을 할 때는 휠체어가 올라가기 힘든 언덕에서 몇 번을 넘어지면서도 동물을 키웠고, 사고가 나기 전 일했던 건설분야에 다시 취직을 했을 때는 하루에 1, 2시간을 자면서도 열심히 일했다. 인간이 느끼는 최대치 고통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CRPS까지 앓았지만 가장은 한 번도 가족들에게 아픈 내색, 힘든 내색이 없었다.

그 와중에도 자신 같은 장애인들을 위한 봉사활동에도 참여해 가족들에게 자랑스러운 가장이 되려고 노력했다. 가장이 열심히 산 덕분에 두 아이를 키우며 작은 아파트도 하나 마련할 수 있었다.

"아내나 주변 사람들이 무리한다고 말할 정도로 맡은 일마다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 봉사도 사비를 털어서 장애인 단체를 운영할 정도로 열심히 했죠. 다리가 없어도 열심히 살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어요.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병원비조차 없지만 도움 받을 길 없는 부부

다시 행복을 찾은 뒤 김 씨에게는 더 큰 고통이 찾아왔다. 갓 20살을 넘긴 딸이 세상을 떠났다.

꿈을 이루고 싶다며 서울로 떠났던 딸아이는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왔다. 13년 전 겨울 친구들과 저녁 모임을 가지던 딸은 바람을 쐬러 잠시 밖으로 나간 사이 다리 아래로 떨어져 숨졌다. 술에 취한 딸이 난간에 미끄러져 떨어진 것이란 경찰 조사에 친구들은 의문스러운 점이 너무 많다며 몇 달 간 근처에서 목격자를 찾아 헤맸지만 결국 딸의 죽음은 의문으로 남았다.

"친구들 모임에 가기 전 딸아이한테서 전화가 왔었어요. '내일 대구에 가겠다'며 밝은 목소리였죠.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딸의 죽음은 김 씨에게 잘린 다리보다 더 큰 상처를 남겼다. 김 씨 부부는 딸을 잃은 슬픔으로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았고, 활발했던 아들도 말수가 크게 줄면서 조용한 아이로 변해갔다. 딸을 떠나보낸 이후 김 씨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

일하며 모았던 돈도, 어렵게 마련했던 아파트도 세 가족의 생활비와 병원비 등으로 모두 써버린 뒤 부부의 몸은 심하게 망가져 있었다. 오랫동안 CRPS의 통증을 억제하기 위한 약을 먹어온 김 씨는 신장에 이상이 생겨버렸고, 30여 년 전부터 당뇨를 앓아왔던 아내는 왼쪽 눈의 시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

설상가상 아내는 몇 년 전 심장 수술과 위암 수술을 받았다. 남편을 업어서 옮기던 아내는 작은 물건도 들 힘이 없을 정도로 약해져 버렸다. 김 씨는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불편한 다리를 끌고 빨래, 설거지, 청소를 했다. 아내에게 제대로 된 치료를 받게 하려고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길도 만방으로 알아봤다. 하지만 부부에게 도움을 주는 곳은 없었다.

자신의 빚을 갚기에도 정신없는 아들이 작은 회사에 다닌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지 못했고, 김 씨 앞으로 나오는 20만원의 장애연금이 두 사람 생활비의 전부가 됐다. 이제는 몸이 아프면 부부는 덜컥 겁부터 난다.

심지어 올 6월에는 은행빚을 내서 구한 작은 전세 아파트마저 떠나야 할 지경이다. 전셋값은 올려줘야 하지만 부부에겐 더이상 빚을 낼 여력이 없다. 김 씨의 신장은 투석을 받기 직전 상태까지 나빠졌지만, 병원비 걱정에 치료는 꿈도 꾸지 못한다.

"의사 선생님에게 아내를 돌볼 수 있을 때까지만 살려놔달라고 얘기했어요. 새벽마다 기도를 하면서도 똑같은 소원을 빌고요. 혼자면 죽어도 상관없지만 내가 가면 아내는 누가 돌보나요."

김봄이 기자 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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