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라오스 방비엥의 찻집 로터스(Lotus)

입력 2015-02-24 05:00:00

1967년 포항생.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석·박사. 중국 사회과학원 법학연구소 박사후과정
1967년 포항생.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석·박사. 중국 사회과학원 법학연구소 박사후과정

찻집 로터스 프랑스인 주인의 속죄

라오스 식구들 고용해 빵 구워 대접

아직도 '다케시마의 날' 정해 행사

같은 식민제국 일본의 적반하장 씁쓸

찻집 로터스는 라오스 방비엥에 있는 작은 음식점입니다. 출입문조차 없는 가게에는 홀과 주방을 구분하는 칸막이 하나와 아기자기한 소품 몇 개, 테이블 네 개뿐입니다. 빛바랜 사진과 가게를 상징하는 연꽃 그림이 인테리어의 전부입니다. 손님이 들어서도 맞는 이가 없습니다. 손님 스스로 빈자리를 찾아 엉덩이를 붙이면 그때 비로소 꼬마 여자아이가 메뉴판을 들고 나타납니다. 손님의 메뉴판 검색이 끝날 때쯤 주인 아낙이 주문서를 들고 다가옵니다. 손님은 팬케이크, 바게트, 차 그리고 과일을 고릅니다. 아낙이 뭐라 중얼거리자 홀에 손님처럼 앉아 있던 서양인 남자가 부스스 일어나 주방 쪽으로 갑니다.

찻집 로터스가 자리한 방비엥은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엔의 북쪽에 있는 조그마한 도시입니다. 석회암 지질이 만들어낸 그림 같은 풍경과 강물 때문에 관광지로 급부상하고 있는 곳입니다. 산과 구릉들이 올록볼록 둥글둥글합니다. 그 모양이 천태만상인데 보는 장소와 시간,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형상이 달라 보여서 보면 볼수록 신비한 볼거리입니다. 더 장관인 것은 아침입니다. 여명이 세상을 깨우고 일출을 시작하는 짧은 시간 동안 산은 천변만개(千變萬改)합니다. 일출이 시작되면 희뿌연 안개가 산허리를 감고 올라가 전신이 가립니다. 그러다 햇빛이 산 머리에 비추기 시작하면 일순간 안개 옷을 홀딱 벗고 너무나 청명한 나신을 드러냅니다. 마치 선계에 든 것 같은 황홀함에 빠집니다. 그 아래 흐르는 송강에서는 사람들이 카약을 타고 고무보트를 타며 물고기가 됩니다. 찻집 로터스는 바로 그 강변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찻집 로터스는 라오스의 축소판입니다. 아직 제대로 된 기반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라오스 역시 서방과 주변 욕심쟁이들의 탐욕으로 모든 것을 잃은 후 아직 기반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뒤늦게 세상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지만 팔 것도, 살 돈도, 재간도 없습니다. 돈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라고는 조잡하게 만든 가방이나 목도리, 목공품들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희망은 있습니다. 알고 보면 라오스는 풍성하고 복된 나라입니다. 대한민국 인구의 10분의 1밖에 안 되는 사람들이 땅 넓이는 3배나 가지고 있어 생존공간이 충분합니다. 먹고살기도 수월합니다. 메콩강 줄기를 따라 끝없이 펼쳐진 들판과 하천에는 먹을거리가 사철 가득합니다. 라오스가 부유해지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부유해질 수밖에 없는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드디어 음식이 준비되었습니다. 열 살 남짓한 어린 사내아이가 음식을 나릅니다. 상차림이 끝나자 아낙과 중년남자 그리고 두 아이가 옆 식탁에 앉아 손님을 응시합니다. 바게트에 잼을 발라 한입 베어 문 손님이 탄성을 지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자 여자 아이가 까르르 웃습니다. 정말로 빵 맛이 기막힙니다. 프랑스 식민지를 겪은 라오스의 빵이 맛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작은 시골찻집에서 프랑스 정통의 빵 맛을 보는 것은 행운입니다. 서먹하던 분위기가 금방 달라집니다. 빵 굽는 이야기와 손수 만든 잼 이야기가 펼쳐지고 그 속에 빵을 만든 중년이 프랑스인이라는 사실, 아낙과 중년은 부부라는 사실, 아버지와 전혀 닮지 않은 두 아이는 아낙이 이혼하면서 데리고 왔다는 사실, 그리고 지금의 프랑스 남편을 만나 삶을 꾸릴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포개져 샌드위치가 됩니다.

손님이 소설 같은 러브스토리를 캐묻자 프랑스 주인장은 오래된 사진첩 한 권을 내밉니다. 사진첩에는 프랑스식민지 시절의 라오스 사진들과 1960년대 혼돈 시기의 라오스 그리고 홍수가 나서 물에 잠긴 로터스 찻집의 사진들이 있습니다. 남자의 연배로 미루어 사진 대부분은 그의 아버지 시절에 찍은 것입니다. 궁금증이 배가 됩니다. 찻집 이름도 연꽃, 인연이라는 의미인데 도대체 프랑스인과 라오스 사이에 어떤 인연이 있었을까? 살기 힘든 라오스 식구를 거두고 빵을 구워 대접하는 프랑스인, 그는 대를 이어 속죄할 인연을 찾은 것입니다. 해묵은 사진첩은 그가 라오스에 있어야 할 명분과 이유를 담고 있었던 것입니다. 같은 식민제국이었지만 아직도 '다케시마의 날'을 정하고 적반하장(賊反荷杖) 하는 상대를 대해야 하는 우리는 찻집 로터스의 인연이 참 부럽습니다.

이정태/경북대 교수·정치외교학과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