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나무들이 설원에 펼친 순백의 낭만
#산림청 20여 년간 70만 그루 조림
#138㏊에 트레킹 길 10㎞ 조성
#유아체험·치유'탐험 코스 운영
하얀 눈밭에 선, 숲 속의 귀족이라는 별명이 붙은 하얀 자작나무 숲은 순백의 정령이다. 홀로 서면 빼빼한 자작나무도 숲이 되면 장관을 이룬다. 한 마리 철새는 한 줄기 빛이지만, 수만 마리의 철새가 군무를 추면 새들의 오로라가 된다. 자작나무 숲은 흰빛의 오로라다. 그리고 하늘나라는 이런 곳일 거라고 여겨지는 흰빛의 궁정이며, 몽환의 하얀 산안개였다.
강원도 인제군 원대리.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을 바라고 찾아간 겨울 산은 온 천지가 눈밭이었다. 흰 눈이 온통 먼 산까지 이어져 하늘에 닿아 있다. 들머리 원정임도 3.2㎞(1시간 10분)를 걸어가다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 장승을 만난다. 왼편에는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자작나무 하얀 숲이 기다리고 있다. 마치 '당신을 기다립니다'라는 꽃말처럼.
임도를 벗어나 자작나무 숲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얀 불꽃처럼 타는 자작나무 우듬지 사이로 하늘이 보이고, 자작나무는 바람이 불 때마다 하늘과 소통한다. 알타이 무당들은 자작나무 껍질로 '하늘의 별을 담는 주머니'를 만든다. 시베리아 샤먼들은 사슴뿔과 자작나무 가지를 머리에 꽂고 하늘과 소통한다. 자작나무의 신성을 비로소 본다. 시인 프로스트는 자작나무라는 시에서 "나는 자작나무 타듯 살아가고 싶다"고 했다. 현실에 대한 갈증이다. 무언가 결핍을 느끼면 왜 그리운 사람이 눈길을 헤치고 다가오는지. 그의 손에 희디흰 자작나무 껍질을 쥐여주고 싶다.
산림청에서 1974년부터 1995년까지 이곳 산 138㏊에 70만 그루의 자작나무를 심었다. 인제 국유림관리소는 원대봉(684m) 자락에 위치한 자작나무 숲을 2012년 10월 23일 개장했다. 3.5㎞의 진입로를 정비하고, 성인 기준 4, 5시간 거리 약 10㎞ 트레킹 길을 조성했다. 그중 25㏊는 유아들을 위한 체험원으로 운영하고 있다.
자작나무는 불에 탈 때 '자작 자작' 소리를 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키는 20m에서 30m까지 자란다. 더 자라기 위해 스스로 가지치기를 한다. 그래서인지 군살 없이 희고 미끈하다.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에는 1코스 자작나무코스(0.9㎞), 2코스 치유코스(1.5㎞), 3코스 탐험코스(1.1㎞)가 있다.
원정임도(윗임도 3.2㎞)를 타고 올라가 2코스와 1코스를 돈 다음, 3코스를 거쳐 원대임도(아래임도 2.7㎞)를 따라 내려오는 코스가 좋다. 총 거리 약 10㎞에 달하지만 전체적으로 순탄하다. 자작나무 숲 전 코스를 트레킹하며, 치유와 힐링을 잔뜩 안고 돌아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2코스를 걷다가 다시 자작나무 숲에 서본다. 오직 하나 눈밭과 자작나무 숲에 모여든 겨울, 사랑이 잠복하는 숲은 암호처럼 알지 못할 그리움이 된다. 다음 숲으로 가는 길도 이리 멀까. 이게 얼마 만이냐, 감정을 치유하는 저 자작나무들의 속삭임. 내가 나를 느끼는 것이, 대체 얼마 만이냐. 백석은 '백화'라는 시에서 "산골 집은 대들보도 자작나무다. 메밀국수 삶는 장작도,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라고 하였다. 남쪽 소나무, 북쪽 자작나무는 똑같이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함께 사는 나무다.
다시 걷는다. 겨울 구름은 흰 산봉우리를 데리고 더 멀리 달아난다. 얼마를 더 걸어야 어제 본 반달을 만날 수 있을까. 자작나무 숲은 시베리아 눈표범 무늬의 하얀 숲이다. 자작나무 숲은 백두산 흰 사슴 두 뿔 무늬의 하얀 숲이다. 자작나무 숲에서 움직이는 흰옷 입은 선조를 본다.
2코스를 다 돌고 1코스로 진입하기 전 하늘만지기 전망대에 서서 하늘을 만져 본다. 점자 같은 허공을 만진다. 허공을 만지는 것은 나를 만지는 것이 아닐까.
다시 만남의 광장으로 가는 1코스를 걷는다. 하얀 껍질이 벗겨져 마치 허리띠를 두른 것 같은 자작나무가 여럿이다. 자작나무 껍질로 사랑 편지를 써서 보내면 사랑이 이루어진다 하여 벗겨간 자국이다. 요즘은 그것을 금하고 있다. 사랑 때문에 자작나무도 한때 몸살을 앓았던 모양이다.
만남의 광장을 지나면 3코스로 접어든다. 30분 걸려 자작나무 숲이 끝나고 원대임도로 나온다.
사실상 오늘의 자작나무 숲 트레킹이 마무리된다. 원대임도를 걷는 길에 자작나무들의 속삭임이 들려온다. 하늘나라 하얀 궁정 같은, 하얀 산안개 같은 자작나무 숲의 환상이 아롱거려 숫제 눈을 감는다. 새로운 감동으로 두근거리는 가슴이 언제쯤 진정될까. 다른 계절에 오면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이 어떤 감동으로 우리를 또 두근거리게 할까.
김찬일(대구문학인트레킹회 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 장익헌
◆Tip: 여행 정보
▷내비게이션 주소: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원남로 760(주차장)
▷3월 16일~5월 15일까지 입산금지
▷숙박: 인제 민박협의회(033-463-5754), 하늘내린 호텔(033-463-5700), 파인밸리 가족호텔(033-462-8955)
▷주위의 볼거리: 대승폭포, 방동약수, 합강정, 백담사, 내린천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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