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나도 가짜 의심…증도가와 똑같은 글자체 보고 확신"
2010년 9월 2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고미술관. 국사 교과서와 세계 인쇄술의 역사를 송두리째 바꿀지도 모를 '증도가자'(證道歌字)가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증도가자의 실물을 대중에게 공개한 남권희(59)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는"'직지'보다 더 오래된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로 추정된다"며 "지난 5년간 혼자 연구해 온 증도가자를 학계가 같이 연구하자는 뜻에서 공개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4년 6개월여가 흐른 현재, 증도가자의 진위 여부가 마침내 판가름난다. 지난해 국립문화재연구소의'증도가자 기초학술조사 연구' 용역 사업을 수행한 경북대 산학협력단이 '세계 최고(最古)'라는 결론을 내리면서, 이달 12일 문화재청은 국가문화재 지정을 위한 최종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
증도가자에 대한 국가문화재 지정이 마냥 순탄한 것은 아니다. 우선 문화재청 용역을 수행한 경북대 산학협력단의 책임연구자가 증도가자의 최초 공개자인 남 교수라는 논란이 있다. 여기에 활자 출처와 입수 경위가 모호하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남 교수에게 ▷증도가자란 대체 무엇이며 ▷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라고 주장하는 것인지 ▷논란이 될 줄 뻔히 알면서 책임연구자를 맡은 이유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 들었다.
-증도가자란 무엇인가?
▶증도가(證道歌)라는 책을 찍을 때 사용한 금속활자(字)를 말한다. 증도가의 원래 제목은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로, 당나라 현각 스님이 득도한 뒤 선종의 법문을 설명한 것에 송나라 법천(남명) 스님이 주석한 책이다. 현재 원본(금속활자본)은 남아 있지 않고, 고려 무신정권 때(1239년) 강화도에서 찍은 번각본(책을 한 장씩 목판에 뒤집어 붙여 그 글자를 그대로 새긴 판본'보물 758호)만 전해 온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로 알려진 '직지'와는 어떻게 다른가.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찍은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약칭 직지)은 금속활자가 아니라 활자본이다. 활자는 전해내려 오지 않는다. 이에 반해 증도가자는 실물 형태로 남아 있는 금속활자이다. 진품으로 인정되면 직지와 비교해 적어도 138년(1239년 기준) 이상 세계 최고의 역사가 앞당겨진다.
-증도가자가 세계 최고라는 증거는 무엇인가?
▶느닷없이 세계 최고가 나타났다면 누가 믿겠나. 그것도 활자본이 아니라 활자라면 더 믿기 힘든 게 당연하다. 나도 처음에는 가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게 2004년쯤이었다. 그러다가 1년쯤 지나 증도가자와 증도가의 서체를 비교하면서 이게 아니다 싶었다. 놀랍도록 같았다. 증도가에만 나타나는 글자 모양이 있는데, 그 모양까지도 같다는 것은 과학적 검증 이전에 움직일 수 없는 증거라고 본다.
-과학적 검증도 거쳤나?
▶그렇다. 증도가자에 묻은 먹에 대해 여러 번 탄소연대를 측정했다. 지난해 경북대 산학협력단이 탄소연대를 측정한 결과에서는 서기 1033년에서 1155년 사이에 만든 것으로 나타났다. 산학협력단은 탄소연대 측정 외에도 활자 서체 및 금속 성분 분석 등을 통해 세계 최고(最古)라는 결론을 내렸다.
-경북대 산학협력단 책임연구자(남권희 교수)가 증도가자 최초 공개자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왜 책임자를 맡았나?
▶물론 안 하겠다고 했다. 대신 도와줄 수 있는 건 도와주겠다고 했다. 근데 용역 기간이 6개월여에 불과했다. 내가 활자를 최초 발견하고 공개하기까지 6년이나 걸렸다. 100개가 넘는 활자에 대한 조사를 그 기간 안에 마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할 수 없이 책임자를 맡았다. 분명한 것은 나는 책임자로만 있었을 뿐이라는 사실이다. 이론'판본 분석, 과학 분석, 서체 연구, 주조, 조판 복원 연구 등에 걸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각 분야 전문가 32명이 다 했다.
-많은 논란에도 증도가자에 대한 문화재 지정은 가능하겠나?
▶사실 보물, 국보가 중요한 게 아니다. 세계사적으로, 문화사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게 중요하다. 학문은 학문으로, 문화재는 문화재로 봐야 한다. 문화재 지정과 관계없이 올해는 증도가자의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고자 한다. 국제학술대회를 통해 외국 학자들에게 증도가자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알리겠다. 증도가자는 우리나라 활자 인쇄사,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어지는 서체의 많은 부분을 설명해줄 수 있다. 그 맥을 학문적으로 제대로 연구해보고 싶을 따름이다.
이상준 기자 all4you@msnet.co.kr
◇남권희 교수 증도가자 연구 일지
▶2004년 증도가자(證道歌字) 실물 활자 확인(국내 개인 소장)
▶2005년 증도가자 판명 후 종합적 연구 시작
▶2010년 9월 증도가자 공개
▶2011년 6월 '고려시대 금속활자 증도가자' 학술 발표(경북대 사회과학연구원'청주고인쇄박물관 주최)
▶2012년 2월 '고려의 금속활자와 세계인쇄사의 재조명' 국제학술회의(한국학중앙연구원'미국 버클리대 동아시아도서관 주최)
▶2014년 6월 10일 ~ 11월 30일 '증도가자 기초학술조사 연구' 용역(국립문화재연구소 발주) 사업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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