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의 생각] 내 탓이고, 네 덕이다

입력 2015-02-17 10:13:41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는 '대구체육고등학교'라 불릴 만큼 5월 체육대회 열기가 뜨거웠다. 고1 첫 체육대회를 잊을 수가 없다. 학년별로 같은 반은 '직속 반'으로 묶여 체육대회 때 한팀으로 출전했다. 직속 반 선배들은 대회가 있기 몇 주 전, 후배 반에 내려와 선수들을 선발했다. 후배들의 '하고 싶다'는 열망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길 수 있는' 후배가 필요했다. 선배들은 매의 눈으로 체격과 체력은 물론 정신력까지 꼼꼼하게 살펴 선수들을 뽑았다.

운이 좋게도 나는 '피구' 경기를 뛰게 되었다. 피구는 단체전이라 점수가 높았기에 선배들은 "이겨야만 한다" "피구를 놓치면 끝이다" 등과 같은 말로 긴장감을 높였다. 훈련의 강도도 살인적이었다. 새벽 훈련은 기본이고 농구공으로 패스 연습을 하다 손가락을 다치는 일도 허다했다. 공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야 한다며 공격수들을 벽에 세워놓고 공을 던지기도 했다. 결과는 공에 맞거나 공을 잡거나 둘 중 하나. 우리는 공에 맞기 싫어 공을 잡으며 담력을 길렀다.

"야, 쟤 누가 뽑았어?" 날카로운 선배 목소리에 훈련이 멈췄다. 선수 가운데 A가 자꾸 공을 놓친 탓이다. 선배의 불호령에 A는 위축됐고 실수는 더 잦아질 수밖에 없었다. A는 결국 쉬는 시간에 나에게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팀에 피해만 되는 것 같아. 그냥 포기할래."

혼란스러웠다. 모두가 '네 탓' 만할 뿐 누구도 '내 탓'은 하지 않았다. 공은 혼자만 받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던지는 사람이 없이는 받는 사람도 없었다. '겨우 피구경기 하나 때문에 A가 상처를 받아야 하나'하는 미안함이 머리를 스쳤지만 A를 걱정하는 마음은 잠시뿐이었다. 결국 A를 설득해 붙잡지 못했다. 아니, 붙잡지 않았다. 내게도 A탓에 우승을 놓칠 것 같다는 마음이 한구석에 있었기 때문이다.

A를 제외한 채 출전한 경기에서 우리는 우승했다. 하지만 관중석에서 박수치는 A의 씁쓸한 모습을 발견하곤 기쁨에 앞서 후회가 밀려왔다. 좀 더 힘을 합했다면 한 명의 낙오자 없이, 반쪽짜리 우승이 아닌 온전한 우승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요즘엔 모든 게 공을 던지고, 받는 일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잘된 일도, 잘못된 일도 상호작용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이를 '네 탓, 내 덕'으로 돌리는 순간 혼란은 심각해지고 갈등의 골은 깊어진다. 공을 놓쳤다면 못 받은 사람의 잘못도 있지만 던진 사람의 잘못도 분명하다.

다행히 A를 붙잡지 못했던 죄책감을 씻을 기회는 있었다. 다음 해도 같은 반이 된 A와 함께 피구 대회에 참가했고 이번에는 끝까지 함께 우승을 맛봤다. 별것 아닌 것 같은 '피구 경기'는 소중한 가르침을 남겼다. 남 탓을 하는 '쉽고 편한 길을 택해 후회하느니 '내 탓, 네 덕'을 되새기며 남을 손가락질하기 전에 내 가슴에 손을 얹어보는 게 낫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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