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달해의 엔터 인사이트] 연기력에 흥행파워까지 '조재현의 영역'

입력 2015-02-17 05:00:00

강렬한 눈빛으로 승부한다 막이 내리기전까지 나는…

'한 우물을 파되 노하우를 터득하고 주변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해 성공에 이른다.' 배우 조재현(50)의 연기 인생을 함축적으로 표현해 본 문장이다. 연극무대에서 연기를 시작해 예술영화 진영으로 진출, 이어 상업영화와 드라마 시장으로 나와 존재감을 과시한 인물. 연기활동에 충실하면서도 제작자로 나서 연극을 알리는 데 애쓰고 예술영화 진영의 중심에서 멘토 역할까지 하고 있다. '연기'라는 한 길을 걸으며 주변에도 파장을 일으키는,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된 셈이다. 그리고, 지난해 KBS 대하사극 '정도전'에 이어 현재 방영되고 있는 SBS 월화극 '펀치'를 월화극 1위 자리로 이끌며 '영향력 있는 연기파'의 정석이 뭔지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17일 종영하는 펀치의 흥행성공에 일등공신 역할을 한 인물로 꼽히고 있다.

◆'펀치' 악역 이태준, 입체감 넘치는 캐릭터로 표현

드라마 펀치에서 조재현이 맡은 역할은 검찰총장 이태준이다. 온갖 비리와 악행을 저지르며 오직 자신의 이득과 성공을 위해 달려가는 인물이다. '절대악'에 가까운 캐릭터. 하지만, 절대악도 조재현이 표현하니 달라진다. 악한 면만 부각시키는 게 아니라 캐릭터의 절절한 사연을 입체적으로 표현해 공감대를 높이고 극에 활력을 주고 있다.

국내 드라마 제작시스템의 특성상 작품의 완성도뿐 아니라 캐릭터 역시 작가의 필력에 상당 부분 의지해야 하는 게 현실. 펀치의 이태준이란 인물이 잘 묘사되고 있는 것도 이 드라마의 작가 박경수의 공이 크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작가의 필력이 좋다고 해도 그 의도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캐릭터를 완성시켜 나가는 건 오롯이 배우의 몫이다. 작가와 연출자의 심중을 이해하고 한 발 더 나아가 생명력 넘치는 캐릭터를 만들어낼 때 대중은 그에게 '명배우'라는 수식어를 붙여준다.

펀치에서 보여주는 조재현의 연기가 그렇다. 몇 가지 예를 들어 이 드라마에서 인물 간의 갈등구조를 극대화시킬 때 주로 사용하고 있는 '먹는 장면'들을 살펴보자. 박경수 작가는 어렸을 적 가난에 찌들어 살던 이태준 캐릭터의 성격을 드러내고 극에 긴장감을 주는 요소로 식사 장면을 자주 내놨다.

배우의 연기력이 받쳐주지 못하면 밋밋하게 보일 수도 있는 일. 다행히도 명배우 조재현이 연기한 '먹방'(먹는 방송)은 지켜보는 이들까지 입맛을 다시게 만들 만큼 맛깔스러웠으며 평소 펀치를 보지 않던 시청자들까지 끌어들일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자신이 눌러야 할 상대와 기 싸움을 하면서 게걸스럽게 짜장면을 먹을 때, 죽은 형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칡뿌리를 씹을 때, 탐욕스러운 야망을 드러내며 홍어 한 점을 입속에 집어넣을 때, 조재현은 각 신 안에서의 감정상태를 묘사하는 데 충실한 것뿐 아니라 그 인물의 성장배경까지 짐작하게 만드는 고난도 연기를 펼쳤다. 가난에 찌든 집안에서 성장해 성공에 대한 야심이 커질 수밖에 없었던 인물의 특징을 디테일하게 묘사해 '악역이지만 매력적인 캐릭터'로 만들었다.

조재현이 연기한 이태준 캐릭터가 야망을 위해 타인을 짓밟으면서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타 작품 속 악역 캐릭터와의 차별점은 모호해진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도 지극히 소시민적인 언행으로 웃음을 자아내고 연민의 감정까지 끌어낸다는 점에서 조재현의 악역은 분명히 타 작품 속 악역과 달라진다. 굳이 표현을 하자면 현실에서 실제로 볼 수 있을 법한 '생활유착형 악인'이랄까. 속을 알 수 없는 능글능글한 웃음에서 나오는 페이소스는 시청자들의 뇌리에 펀치를 각인시킨 제1요소로 작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경수 작가가 던져준 각종 재료에 배우가 '손맛'을 가미해 미각을 자극하는 요리를 완성시킨 셈이다.

◆연극무대를 기반으로 스크린'드라마까지

지난해 조재현은 드라마 '정도전'으로 오랜만에 '히트 배우'가 됐다. 그동안 '역린' '뫼비우스' 등 수많은 영화에 출연하고 MBC '스캔들'과 JTBC '신드롬' 등의 드라마에 꾸준히 모습을 보였지만 흥행 성적이 뛰어나게 좋지는 않았다. 조재현의 연기력에 대한 평가야 언제나 호평이었지만, 그렇다고 과거 드라마 '피아노'나 영화 '나쁜 남자' 등을 통해 받았던 극찬이 따라오진 않았다. 그 사이에 조재현은 집행위원장 등의 타이틀을 떠안으며 영화제와 연극제를 이끌거나 극단을 꾸려 후배를 양성하며 연극 활성화를 위해 애쓰기도 했다.

'연기 잘하는 중견배우' '신념이 강한 배우'의 이미지를 가지고 연기자들의 멘토로 불리는 것도 좋은 일. 하지만, 강한 인상을 남기며 작품의 흥행까지 좌지우지하던 시절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정도전은 이런 와중에 조재현이란 배우의 존재감을 다시 한 번 부각시키는 계기를 마련해줬다. KBS 대하사극의 인기를 되살리며 열풍을 일으킨 주역으로 꼽혔고, 그해 백상예술대상과 KBS 연기대상에서도 최우수상을 거머쥐며 연기력과 영향력을 공개적으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정도전 이후 펀치로 이어진 행보 역시 시기적절한 선택이었다. 프라임 시간대에 방영되는 지상파 주중 미니시리즈의 완성도와 흥행을 견인한 주연배우로 자신의 위치를 각인시키는 기회가 됐다.

조재현의 몰입도 높은 연기, 장악력 좋은 연기의 기반은 연극무대에서 시작됐다. 중학교 3학년 시절 우연히 본 연극 한 편에 매료돼 연기에 관심을 가졌고, 사춘기 시절을 거치며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결국 연극영화과로 진학하게 됐다. 대한민국 연극운동의 전환점을 가져온 작품 '에쿠스'를 말할 때 연극 팬들은 항상 조재현을 거론한다. 에쿠스를 거쳐 간 무수히 많은 배우들 속에서도 조재현의 연기가 유난히 빛났기 때문이다.

연극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시기를 지나 조재현은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등의 드라마와 '젊은 날의 초상' 등 영화에 얼굴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어 연기력 좋은 젊은 배우로 인지도를 높여갈 즈음 영화 '악어'로 김기덕 감독과 인연을 맺고 넘치는 에너지를 뿜어내며 연기인생 2막을 열었다.

2001년, 드라마 '피아노'를 만나면서 조재현은 연기인생의 황금기를 맞았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노년 캐릭터까지 소화하며 절절한 부성애 연기를 보여줘 그해 최고의 배우로 떠올랐다. 이 시기에 또 한 번 김기덕 감독과 손잡고 내놓은 영화 '나쁜 남자' 역시 예술영화의 기본 관객층을 뛰어넘어 폭넓은 연령대를 끌어들이며 흥행에 성공했다. 대사 없이 눈빛과 행동만으로 감정을 드러낸 조재현의 연기 역시 '명품'이란 극찬을 들었다.

연기력뿐 아니라 흥행파워까지 증명하며 남부러울 것 없이 사는 배우가 된 지금. 소위 '돈이 될 만한 작품'에 집중해도 될 터. 하지만, 조재현은 가난한 연극배우 시절에 살던 장소에 공연장을 짓고 꾸준히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 연기로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고, 무대에서 관객을 장악하고 그 기운을 화면으로도 옮겨내는 작업. 또 영향력 있는 인물이 돼 후배들을 이끌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조재현이 과거 팬들에게 공개했던 '10년 후에 이루고 싶은 것들'이란 글 안에 포함됐던 내용이다.

성공도 좋지만 소신을 중요시한다는 것, 펀치의 이태준과 조재현의 다른 점이다. 그리고 연기라는 한 우물을 파고 있는 이 명배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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