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람회의 그림'이라는 곡이 있다. 러시아의 작곡가 모데스트 무소르크스키의 작품이다. 그는 건축가이자 화가인 친구 빅토르 하르트만의 유작전에서 영감을 받아 이 곡을 작곡했다. 당시 유작전에는 하르트만의 유화나 수채화뿐만 아니라 각종 스케치와 소품 등도 전시되었다. 친구의 죽음을 슬퍼한 무소르크스키는 이 중 열 점의 작품을 음악으로 재탄생시켰다. 곡 사이에는 산책이라는 뜻의 '프롬나드'를 삽입했다. 비교적 짧고 가벼운 이 간주 부분은 작품과 작품 사이를 천천히 거니는 관람객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 곡이 듣는 이로 하여금 전시장을 둘러보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하는 이유다. 음악으로 또 하나의 전시회를 마련한 셈이다.
원래 피아노 독주곡인 이 곡은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에 의해 관현악곡으로 편곡되기도 했다. 라벨의 편곡 역시 원곡과 비교하여 훌륭한 평가를 받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관현악보다 피아노곡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곡의 주인공인 하르트만의 그림이 상대적으로 소박한 인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소르크스키의 피아노곡이 소박한 것만은 아니다. '전람회의 그림'에는 다양한 형태의 곡들이 자리하고 있다. 단출한 프롬나드부터 경쾌한 속주, 화려하고 웅장한 연주들을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다. 다만 친구의 유작전을 쓸쓸히 둘러보고 있는 무소르크스키와 혼자서 전시장을 둘러보는 관람객, 그리고 독주를 하는 피아니스트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연결될 뿐이다.
사실 이 곡에 흥미를 가지게 된 것은 작품의 구성 때문이었다. 각기 다른 그림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곡들은 저마다 독특한 곡조와 빠르기를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곡들을 하나의 '전람회'로 만든 데는 프롬나드의 역할이 컸다. 그러나 이와 함께 자리한 곡들의 배열 역시 듣는 이로 하여금 좋은 관람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이들은 단순한 나열처럼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하나의 서사를 형성한다. 30여 분의 연주시간을 풍성한 전시장으로 만드는 것이다. 말하자면 무소르크스키는 작곡가인 동시에 큐레이터로서의 역할 또한 수행한 것이다.
문득 전시장에서 이 곡이 떠오를 때도 있다. 전시에 있어서는 작품도 중요하지만 작품의 설치나 배열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작가와 큐레이터가 오랜 협의를 거쳐 진행되는 사항이다. 그런데 간혹 작품에 비해 전시 자체가 인상적이지 않은 경우도 있다. 대부분 관람객의 생각을 고려하는 데 미흡한 경우다. 하나의 전시는 관람객의 행보를 통해 진행되는 하나의 흐름이다. 물론 이 흐름을 파괴함으로써 의미를 얻는 전시도 있다. 그러나 공간이 부족하거나 반대로 넓은 공간을 활용하지 못해 이를 망가뜨린 전시들도 있다. 그때마다 '전람회의 그림'처럼 전시보다 더 전시 같은 음악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승옥 월간 대구문화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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