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터View] 이상춘 현대강업 대표이사

입력 2015-02-09 05:00:00

경북 첫 父子 1억 기부 "경비아저씨에 붕어빵 드리면 내가 더 행복"

이상춘 현대강업(주) 대표는 나눔이란 살면서 받아온 다른 사람의 도움을 제자리로
이상춘 현대강업(주) 대표는 나눔이란 살면서 받아온 다른 사람의 도움을 제자리로 '원위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소유에 대한 집착은 질기고 끈덕지다. 물욕과 배금주의가 춤을 추는 세상에서 '내 것'을 내놓기를 권하고, 나아가 남에게 '나눔'을 권하는 일은 굉장히 어렵다. 하지만 세상이 늘 험악한 건 아니다. 집요한 소유의 굴레에서 벗어나 나눔을 실천하는 이들 덕분이다.

경북의 '아너 소사이어티 1호'인 이상춘(47) 현대강업㈜ 대표이사도 나누는 삶에 힘을 보태고 있다. 아너 소사이어티는 5년에 걸쳐 1억원을 기부할 것을 약속한 이들이다.

이 대표는 2010년 경북에서 처음으로 가입했다. 자신만 가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교 동문들을 설득해 2명을 추가로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시켰다. 또한 자신의 아버지 이름으로도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했다. 덕분에 그의 고향인 경주지역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 수는 10명으로 경북에서 가장 많다. 그중에 4명은 이 대표이사가 애쓴 덕분이다.

그가 나눔의 손길을 뻗은 곳은 이곳뿐만이 아니다. 매년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내고 있고, 경주 지역 저소득 아동'청소년 장학금 지원과 홀몸노인 경로잔치, 저소득가정 가족여행 비용 지원, 사회복지시설 봉사활동 등도 하고 있다.

그는 자신에게 나눔은 '원위치'라고 했다. "누구나 살면서 크든 작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습니다. 나눔은 누군가로부터 받은 도움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원위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사회는 더욱 풍성해지겠죠."

-경북에서 처음으로 '부자(父子) 아너 소사이어티'로 이름을 남겼다. 아버지가 흔쾌히 허락했는지?

▶사실 상당히 망설였습니다. 자식으로 인해 지금까지 살아오신 아버지의 뜻이 퇴색되진 않을까 고민하기도 했죠. 하지만 아버지가 제 몫으로 논의 일부를 내주시기에 장학재단을 만들까 하다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버지도 굉장히 좋아하셨습니다.

-나눔에 대한 열정은 부모님으로부터 배운 것인가?

▶사실 저희가 덕동댐 인근에 살던 수몰민입니다. 1975년에 황성동으로 이주했죠. 아버지는 8남매 중의 장남이시고, 저희도 4남매인데요. 조부모님도 모시고 살았으니 정말 대가족이죠. 조부님과 부모님이 다른 이들에게 신세 지지 않고 늘 누군가에게 나눠주려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몸으로 느낀 것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어떤 학생이었는가?

▶그냥 촌놈처럼 살았어요. 크게 말썽을 부린 적도 없고요. 경주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제게 '백곰'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셨어요. 묵직하고 끈기있게 자리를 지킨다고 붙여주신 별명인데, 그게 상당히 오래갔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보니 그때 담임선생님이 모교에 교장으로 계시더군요. 그래서 2002년 처음으로 장학금 500만원을 기부한 걸 시작으로 매년 장학금을 내놓고 있습니다. 5년 전부터는 장학금을 1천만원으로 늘렸습니다.

-처음으로 남을 위해 뭔가 내준 것이 언제인지 기억나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그저 길을 가다가 거리에서 좌판 노점을 하는 할머니들을 보면 따뜻한 음료수라도 사다 드리고, 경비아저씨에게 붕어빵이라도 사드리는 작은 일부터 시작했어요. 서로 부담을 느끼지 않는 선에서 도와드리면 마음이 편안했죠. 2000년 창업을 한 뒤 수입이 늘면서 경로당에 생필품을 전해 드리는 것부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금액은 100만원 정도로 기억합니다.

-창업을 굉장히 일찍 했는데, 이유는 무엇인지?

▶자동차부품업체에서 4년을 근무하고 나와서 창업을 했습니다. 사실 돈을 벌고 싶었어요. 가족들이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서로 소원해지고 관계가 멀어지는 게 정말 싫었어요. 그래서 돈을 벌면 가족들 간의 관계도 달라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표를 내고 6개월 만에 울산시 중산동 1004번지에 9.9㎡짜리 사무실을 얻었는데, 전화기 한 대에 직원이라고는 저뿐이었습니다. 어렵게 무일푼으로 시작했는데 다행히 철강 경기가 호황이어서 첫해 4개월 만에 매출 9억원을 올렸고, 이듬해에는 70억원으로 매출이 늘었어요. 지금은 매출이 700억원 규모입니다. 철강 외에도 자동차부품 제작과 중국 진출도 준비 중입니다.

-지역 사회에서 좋은 뜻으로 나눔활동을 해도 삐딱한 시선이 있었을 텐데?

▶처음에는 오해도 많이 받았습니다. 경주가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면이 있거든요. 정치하려는 것 아니냐는 오해도 많이 받았고, 실제로 제안이 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제 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게 꼭 투쟁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소리 없이 조용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도 있다고 믿습니다. 나눔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는 게 중요합니다.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우연히 신문을 보고 알게 됐습니다. 기분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기부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체계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시작했습니다. 경주 아너 소사이어티 모임도 만들었는데 굉장히 반응이 좋습니다. 연간 6차례 모임을 하면서 네 번은 봉사활동을 나가기로 했어요. 포항과 연대해서 모임도 하기로 했습니다.

-기부나 나눔활동을 통해 자신도 스스로 변화했다고 생각하는지?

▶제가 정말 기분이 좋고 행복해집니다. 욕심을 많이 버릴 수 있어서 좋습니다. 사소한 일에도 감사를 느낄 수 있게 됐습니다. 가장 수혜를 받는 대상은 바로 자신입니다. 아내와 아이들을 대할 때도 마음의 여유와 배려하는 마음이 생겨요. 거창하진 않지만 세상이 아름답다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나눔 활동에 대한 소문이 나면 도와달라고 손을 내미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

▶정말 많습니다. 교도소 수감자인데 다짜고짜 돈을 보내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아예 비누를 몇 박스를 보낸 뒤에 돈을 보내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요청이 오면 진정성이 있는 건지, 일회성인지 판단해서 결정합니다. 그래도 지역에서 오는 요청은 거의 받아들이는 편입니다.

-지역의 나눔 문화 활성화를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는지?

▶지역 정서도 있지만 지역 사회의 지도층이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1인당 기부액이 높은 의성군 같은 곳은 지도층이 나눔'기부활동을 굉장히 독려하고 활성화하거든요. 또 모금을 하는데 그치지 않고 어떻게 그 돈을 배분하고 활용하느냐에 더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장성현 기자 jacksoul@msnet.co.kr

사진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경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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