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냉수마찰

입력 2015-02-09 05:00:00

▲권 영 시
▲권 영 시

어릴 적 추위는 무척 강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등굣길은 낙동강 다리를 건너야 했고, 그때 강물에 떠가는 얼음장이 맞부딪치는 굉음과 얼음장의 크기로도 추위를 가늠하곤 했다. 그럼에도 아버님은 새벽이면 상의를 벗은 채 냉수마찰을 이어 가셨다. 이런 환경이다 보니 우린 결코 겨울철 방학이라도 늦잠이란 엄두도 내지 못했고, 눈 내린 날이면 마당도 함께 쓸어내야 했다.

신혼 때 어머님은 새색시는 집안의 '가례·도·음·풍'(家禮·道·飮·風) 전수라며 최하 1년쯤은 함께 살 것을 주장하셨다. 하지만 아버님의 냉수마찰이 며느리 보기에 줄곧 마음에 걸려서 예상보다 일찍 신접살림을 차릴 수 있었다.

"새댁! 젊은 사람이 돌았나 왜 저래…." 연탄보일러가 있는 뒤란에서 주인아주머니의 말에 아내는 "왜요?" 하고 되물었다. "아니, 엄동설한에 찬물을 덮어쓰다니, 정신이상자 맞잖아…." 아내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아! 그거요, 신랑이 냉수마찰하는 겁니다." 이게 신혼 때 정신이상자 취급받은 에피소드다.

아버님을 모시면서 아침운동은 늘 수목원에서였다. 팔굽혀 펴기도 여전히, 높이 차기도 거뜬히, 돌아오시면 아파트였지만 냉수마찰도 마찬가지였다. 그날도 밤늦게까지 가족들과 담소를 나눴는데 예견하신 걸까? "애비야! 오늘은 저쪽 방에서 같이 자자." 이런 말씀에 함께 잠든 자리에서 새벽 3시경에 "답답하다. 창문 좀 열어라" 하셨고, 다시 주무시다가 한 시간쯤 지나자 "나 좀 앉혀봐라" 하셔서 앉혀 드렸지만, 아무 말씀이 없어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끝내 몸을 가누지 못해 껴안았고, 그 상태에서 시간은 흘러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스스로 운명의 정점에 닿으셨다. 100세를 바랐는데…. 아니, 푸른 나뭇가지 꺾이듯 갑작스러운 그런 영면에 드셨다. 당황한 나머지 황급히 옮긴 병원에서 "지금껏 의사 생활하면서 이렇게 깨끗한 분은 처음 봅니다"라는 그 한마디가 아직도 선하다.

과거 산에서 근무할 때도 새벽이면 먼저 서두른 게 냉수마찰로, 대(代)를 이었다. 해발 1,058m에서 암석 밑을 흐르는 물은 얼지 않았다. '계곡에서 수건을 흠뻑 적신다. 왼팔에서 오른팔로 번갈아 마찰한다. 이어서 왼쪽 가슴과 오른쪽 가슴으로, 다시 왼쪽 허벅지에서 오른쪽으로, 다음에 엉덩이와 등을 마찰한다. 몇 차례 반복하고, 마지막에 냉수를 뒤집어쓴다.'

어느 날 TV에 출연한 93세 할아버지께서 노익장을 과시하실 때 진행자가 건강비법을 묻자 냉수마찰을 강조하셨다. 게다가 82세에 얻은 막둥이가 11살이라며 크게 자랑하셨다. 흔히들 이젠 100세 시대라고 일컫는다. 중요한 것은 저마다 체력단련으로 병수발 없는 장수, 그게 수명의 바람이니라. 국민이 건강해야 나라가 건강하지 않을까.

<시인·전 대구시 앞산공원관리사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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