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母女 사망, 자살? 가족은 아니라는데…

입력 2015-02-04 20:31:03

"생활고 비관" 경찰 주장에 반박…가족들 "예금 충분, 궁핍하지 않아"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한 아파트에서 60대, 40대 모녀가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정황증거상 경찰은 자살로 보고 있지만, 유가족들은 "경찰이 밝힌 자살 이유가 맞지 않다"며 반발하고 있다.

포항남부경찰서에 따르면 3일 오후 8시쯤 포항시 남구 오천읍 S아파트 2층에서 A(66) 씨와 큰딸 B(44) 씨가 안방 장롱에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둘째딸(34)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시신은 발견 당시 이미 상당히 말라 있는 상태였다.

경찰은 시신의 부패 정도로 미뤄 사망한 지 3, 4개월가량 지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안방 창문과 방문 틈이 비닐테이프로 꼼꼼히 막혀 있었으며, 식탁에는 마치 제사상을 차려 놓은 것처럼 밥과 국 등이 놓여 있었다고 경찰은 전했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사망한 지 이토록 오래 지났지만 이웃들은 이들의 죽음을 낌새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큰딸이 평소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을 앓아오는 등 주변과 왕래가 전혀 없었던 탓이 크다.

더욱이 이들이 사는 아파트는 관리사무소가 없는 옛날식 아파트였다. 관리비 등이 미납됐지만 연락이 되지 않아 이웃들은 그저 장기간 집을 비운 것으로 추측했다. 시신이 부패해 현장에 악취가 심했지만 사전에 테이프 등으로 틈새가 모두 밀봉돼 바깥으로 새어나가지 않았다.

최근 도시가스회사 측이 3개월치 정도 밀린 가스요금 납부를 독촉하기 위해 이전에 요금을 낸 적이 있는 둘째딸에게 연락한 것으로 확인됐다. 결혼해 울산에 살고 있는 둘째딸은 도시가스업체로부터 '어머니 집 가스요금이 3개월째 미납 중인데 연락이 안 된다'며 독촉전화가 오자 이를 이상하게 여겨 이날 포항을 방문했다가 참변을 목격했다.

둘째딸은 경찰 조사에서 "어머니와 미혼인 언니가 함께 살고 있었으며, 1개월 전부터 계속 연락이 되지 않았다"면서 "언니의 우울증이 최근 더 심해져 어머니가 속상해했다"고 진술했다.

당초 경찰은 이들의 시신에서 저항 흔적이 발견되지 않은 점, 사건 현장이 깨끗하고 외부의 침입 흔적이 없는 점 등을 근거로 생활고 등을 비관한 자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A씨가 억대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등 생활고에 의한 자살은 아니라며 재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유가족에 따르면 15년 전 이혼한 A씨는 울산 신정동 한 아파트에서 살다가 이를 처분하고 5년 전 포항 오천읍에 56㎡(거래가 약 3천만원) 크기의 아파트를 구입해 이사를 왔다. 울산 아파트 처분가는 약 1억7천여만원에 달하며 포항의 아파트를 사고 남은 금액은 은행에 예금해 둔 채 생활했다. 또한 A씨는 기초연금으로 매달 20만원을 지급받았으며, 주변 이웃들에 따르면 이들은 고가의 옷을 입고 자주 등산까지 다니는 등 전혀 궁핍하지 않은 생활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둘째딸 등 유족들은 경찰에서 "몇 달에 한 번씩 100만원씩 생활비를 보태 드린 적도 있고, 평상시에도 궁핍하거나 힘들게 생활하시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현재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을 통해 B씨의 병력을 조사하는 등 재수사를 벌일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A씨 등 두 명 모두 별다른 직업 없이 예금해둔 돈만으로 생활하며 최근 가계가 급속히 나빠진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유가족의 주장을 받아들여 여러 가지 가능성을 모두 열어둔 채 수사를 벌일 계획"이라고 했다. 포항 신동우 기자 sdw@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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