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부끄러운 포항의 관문
"이곳이 인구 52만 도시의 터미널이라고요? 1970, 80년대 시골 터미널을 보는 것 같네요."
3일 오전 9시 포항시외버스터미널(포항시 남구 상도동'이하 포항터미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곳곳에 페인트칠이 벗겨진 바닥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유리문에 붙여진 온갖 스티커와 글자들은 수차례 덧씌워진 듯 어지러운 흔적들을 남겨놓았다. 게다가 낡아서 곳곳에 틈새가 벌어진 유리창은 터미널 전체 분위기를 흉물스럽게 만들었다.
◆포항의 부끄러운 얼굴
대합실 안에서 출발시간을 기다리는 이용객들은 저마다 두꺼운 옷깃을 여미고 있었다. 대합실 실내온도는 약 7도. 이날 바깥온도가 3도임을 감안하면 고작 4도가 높을 뿐이다. 온풍기에서 따뜻한 바람이 계속 쏟아지고 있었지만, 매서운 외부 바람은 실내까지 들이닥치고 있었다.
취재 중 만난 터미널 한 관계자는 "밤이면 이용객들이 춥다고 아우성이다. 아무리 온풍기를 높여도 외풍이 워낙 심하고 건물도 낡아 노숙자들도 잘 안 찾을 정도"라고 귀띔했다.
터미널 벽 곳곳은 때가 잔뜩 묻어 색이 까맣게 바랬고, 화장실은 악취가 심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특히 대합실 양쪽에 있는 화장실은 장소가 좁아 이용객들이 대거 몰리는 주말이면 연신 길게 줄이 늘어지게 마련이다. 대합실 가운데 설치된 매표소도 조립식 샌드위치패널로 지어진 가건물이다 보니 화재 위험성은 물론 미관상 보기 흉해 관광객들도 금세 혀를 찬다.
시민 서귀자 씨는 "대합실 한가운데 조립식 건물로 된 매표소가 있다 보니 전체적으로 답답해 보이고, 처음 오는 사람은 매표소를 찾기도 어렵다. 행여 화재라도 나면 조립식 건물이 유독가스를 내뿜어 큰 사고를 일으킬 것 같다"면서 "주말이나 휴일에는 표를 사기 위해서 터미널 밖까지 줄을 서는 경우도 있다. 넓고 안전한 터미널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용객 안전까지 위협받아
현재 포항터미널에서 운행 중인 노선은 모두 114개. 지난 4년간 매표 건수를 살펴보면 2014년과 2013년 각각 295만 명, 2012년 295만2천 명, 2011년 287만1천 명이 포항터미널에서 표를 구입해 다른 도시로 이동했다. 하루에 약 8천 명가량이 이용한 셈이다.
이는 순수하게 포항에서 다른 도시로 떠난 수치이며, 다른 도시에서 포항으로 유입된 인원까지 합하면 이 숫자의 곱절은 될 것으로 추측된다. 즉 1년에 약 590만 명, 하루에 약 1만6천여 명 정도가 포항터미널을 이용하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특히 경북 동남쪽에 위치한 포항은 편수가 제한된 철도보다는 차량으로 여행하기에 훨씬 편리하기 때문에 시외버스 이용자 수도 다른 도시에 비해 상당히 많다.
그러나 이들을 수용할 터미널 시설은 조악하기 그지없는 수준이다. 편의시설 등 이용객 중심의 서비스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가건물로 지어진 매표소와 대합실, 간이판매대 등이 현재 포항터미널에 설치된 이용객 이용시설의 전부이다. 이마저도 낡을 대로 낡아 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포항터미널 측은 매년 수억원의 예산을 들어 새로 페인트칠을 하고, 유지보수작업에 나서지만 단기적 미봉책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주변 개발에 따라 각종 공사가 이어지면서 터미널 건물의 일부가 침하되는 현상까지 빚어지고 있지만 해결책은 전무하다. 이로 인해 유발되는 누수와 갈라짐 현상 등은 하루 2만 명 가까운 이용객들의 안전마저 위협하고 있다.
◆물류 관광 중심도시의 관문 돼야
포항터미널은 단순히 포항만의 관문이 아니다. 울릉'영덕'울진 등 경북 환동해권을 찾는 관광객들이 포항터미널을 거쳐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동하는 사례가 많다. 포항이 경북 제1의 도시이자, 환동해 중심도시로의 도약을 꾀하고 있는 상황에서 포항터미널은 울릉'영덕'울진 등 100만 인구의 밀집지이자 관광 허브의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 포항시는 현재 개발 중인 KTX포항신역사(포항시 북구 흥해읍) 인근에 포항터미널을 신축 이전하고, 낡은 터미널 청사를 재개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 계획도 현실성이 떨어진다. KTX포항신역사 인근 지역 땅값이 수십 배나 치솟아 막대한 투자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선뜻 나서려는 민간사업자가 없다.
터미널을 운영하는 민간사업자에게 이전비용으로 600억~700억원을 부담케 하는 계획 자체가 애당초 터무니없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포항시 건설안전도시국 이재열 국장은 "현 포항터미널의 시설과 환경이 열악해 꾸준히 보수'보강을 지시하고 있다"면서 "당장 KTX포항신역사 인근으로 신축 이전을 논의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포항터미널 발전 방안에 대한 새로운 변화를 고민 중"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경북도 차원의 환동해 통합정책을 수립한 후 시외버스터미널을 포함한 장기적인 도심 재생 프로젝트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동대 구자문(공간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환동해경제문화연구소장은 "승객들이 1만 명 이상 모인다면 당연히 이들을 수용할 편의시설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현재 포항터미널은 편의시설은커녕 이용객 수용에도 버거운 상태"라며 "당장 터미널을 옮기더라도 현 상도동 부지의 도심 공동화 현상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우선은 1만 명 이상의 고정적인 고객을 활용한 상업시설 설치 등 새로운 개발 방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포항 신동우 기자 sdw@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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