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허점 많은 영화" 냉담 vs 관객들 "적당한 유머+적당한 감동" 열광
영화감독 윤제균(46)은 요즘 충무로에서 가장 환히 웃고 다니는 사람이다. 신작들이 줄줄이 '죽어' 나가는 와중에도 그의 연출작 '국제시장'은 1천230만 명을 모은 뒤에도 여전히 박스오피스 정상을 오르내리며 관객몰이를 하고 있다. 윤제균 감독의 연출작 중에서는 '해운대'에 이은 두 번째 '천만 영화'. 한국영화 감독 중에서는 유일하게 두 편의 '천만 영화'를 연출한 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특히 '국제시장'은 소위 대기업 계열사와 A급 제작사가 만드는 '메이저 영화' 중에서는 처음으로 스태프 전체를 대상으로 표준근로계약서를 체결하는 선례를 남겨 눈길을 끌기도 했다. '지킬 것 지켜가며' 만든 영화로 '대박'을 터트리고 칭찬까지 듣고 있으니 '내 세상'이 따로 없을 터.
◆국민정서 반영한 영리한 상업영화
'국제시장'이 공개됐을 때 평단의 반응은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윤제균 감독의 작품에 평론가나 기자들이 후한 점수를 준 적이 많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국제시장'은 특히나 평가가 엇갈렸다. 크게 아버지 세대의 이야기를 감성적으로 잘 그려냈다는 호평과 현대사를 지나치게 평면적으로 묘사해 보기 불편했다는 혹평으로 나뉘었다. 볼거리와 재미를 갖춘 신파영화 한 편을 두고 뭘 그렇게까지 말들이 많으냐고 혀를 차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일각에서는 그저 웃기고 울리는 데에만 치중했지 치밀함이 보이지 않아 아쉽다는 말이 나왔다. 정치적 해석까지 하며 논란의 중심으로 '국제시장'을 밀어 넣는 이들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국제시장'은 '예술적 성과' 면에서 우수작으로 꼽을 만한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이 영화가 국민정서를 반영해 영리하게 '상업적 성과'를 거둬들였으며, 또 관객으로 하여금 '티켓값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 만큼 '상업영화'로서의 의무를 다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윤제균의 영화는 항상 그랬다. 연출 데뷔작 '두사부일체'는 신과 신이, 심지어 컷과 컷이 연결되지 않을 정도의 어색한 편집으로 '극장에 걸 수 없을 정도의 완성도'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도 이야기와 에피소드에 힘을 실어 재미를 주며 흥행작 대열에 올랐다. 학원 비리와 교사의 덕목 등 메시지까지 담아내 사회적인 이슈를 던지기도 했다. '잘 만든 영화'는 아니었지만 '의도'가 보였다.
'색즉시공' 역시 마찬가지였다. 섹스코미디를 표방하며 화제몰이를 하고 그 안에 젊은이들의 무분별한 성적 호기심이 불러온 안타까운 결과를 보여주며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했다. 신나게 웃긴 전반부까지는 좋았지만 갑자기 진지해지는 후반부는 솔직히 억지스러웠다. 어쨌든 이 영화도 신나게 웃다 나올 수 있는 오락물로 나쁘지는 않았다.
'해운대'도 그랬다. 군데군데 허점이 드러났지만 볼거리와 웃음이 있어 '한국형 재난영화'로 칭찬을 들을 만한 요소가 많았다. 그리고 역시나 웃기고 재미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윤제균의 연출작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영화 좀 안다는 전문가들이 정해놓은 잣대로 평가하기엔 아쉬움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국적인 상업영화'로 다시 잣대를 들이대면 꽤나 볼만한 작품들이다. 특히 관객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두루 갖춰 상업영화로선 충분히 가치 있다는 평가를 받을 만했다.
어떻게 보면 윤제균이라는 감독 자체가 '그런 사람'이다. 스스로의 눈높이를 대중과 같은 위치에 놓고 누구나 즐길 만한 영화를 만드는 데 집중한다. 재미있는 상업영화가 세상의 전부인 감독에게 '예술적 잣대'라니 어불성설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윤제균 감독의 영화가 더 즐거워진다. 이게 바로 윤제균 영화를 보는 방법이다.
◆실패 딛고 충무로에서 입지 다져
윤제균은 2000년 발표된 '신혼여행'의 시나리오 작가로 영화계에 발을 디뎠다. 1998년 IMF가 찾아왔을 당시 LG애드에 근무하다 회사 측의 무급휴가 통보를 받았고, 힘든 시기를 타파해 보자는 생각에 막연히 썼던 시나리오가 공모전에 당선돼 '신혼여행'이란 타이틀로 세상에 나왔다. 그 후 '두사부일체'의 각본을 썼다가 "감독 섭외가 어려운데 직접 연출해 보겠느냐"는 영화사의 제의를 받고 난데없이 메가폰을 들게 됐다.
'두사부일체'의 성공에 이은 두 번째 연출작 '색즉시공'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반지의 제왕'과 맞붙어 승승장구하는 빅히트를 기록했다. 두 차례의 성공이 윤제균을 흥행감독으로 불리게 했다.
하지만, 코미디 영화감독으로 위치를 확보했을 때 자만심으로 일을 그르치는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색즉시공'의 후속작 '낭만자객'의 참패였다. '낭만자객'은 윤제균이 초기에 주로 보여준 '화장실 유머'의 집대성 판이었다. '낭만자객'은 그저 웃기는 데에만 집착하다 관객이 참아줄 수 있는 선을 넘어버렸다. 그저 개별 에피소드만 부각시키며 원초적인 웃음을 끌어내려 하다 보니 처참한 결과물이 나와 버렸다.
연이은 성공으로 우쭐해진 윤제균 감독이 '이 장면만은 안 된다'던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욕심을 부리다 실패를 맛본 것. 흥행 실패뿐 아니라 형편없는 영화라는 혹평에 시달리며 윤제균은 4년이 지나 '1번가의 기적'을 내놓기까지 연출에 손을 대지 않았다.
당시 복귀한 윤제균 감독은 "'낭만자객' 이후 한동안 인터넷도 끊고 폐인처럼 살았다. 뭔가 잘못 생각했던 것 같다"는 말로 당시의 심경을 전했다.
다행히 복귀작 '1번가의 기적'에 대한 반응은 좋았다. 연출력이 한층 탄탄해져 '윤제균이 달라졌다'는 평가를 끌어냈다. 윤제균 감독이 충무로에서 본격적으로 입지를 다지기 시작한 게 이 무렵이다. 연출작을 내놓기 전 제작자로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간 큰 가족' 등 히트작을 발표해 화제가 됐고 이어 '1번가의 기적'까지 흥행작으로 만들며 충무로에서 '상업적 수완이 좋은 건 확실하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얻게 됐다.
이어 2009년 발표한 연출작 '해운대'는 1천145만 관객을 모으며 영화계에 파장을 일으켰다. 이 작품으로 윤제균은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대상까지 거머쥐며 한국형 재난 블록버스터를 성공시킨 감독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이후로는 '국제시장'이 나오기까지 연출보다 제작자로 나서며 '하모니' '7광구' '퀵' '댄싱퀸' '스파이' 등의 작품을 내놨다.
완성도나 흥행 면에서 처참하게 실패했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7광구'와 같은 대형 오락물을 시도했다는 것, 그 와중에 '댄싱퀸'과 같은 탄탄한 코미디 영화를 성공시키며 제작자로서의 안목을 보여줬다는 사실이 윤제균과 그의 회사 JK필름을 충무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로 각인되게 만들었다.
그리고 '국제시장'에 이르러 윤제균의 주특기인 '상업성'과 '추진력'은 또 한 번 증명됐다. 관객이 좋아하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신조도 한층 더 뚜렷해졌다. 일각의 공격에도 "관점에 따라 충분히 그렇게 볼 수 있다"고 '쿨'하게 받아들이며 대중적 호감도를 높였다. 한층 더 여유로워진 모습이었다.
사석에서 윤제균 감독은 영락없는 '부산 남자'다. 걸쭉한 부산 사투리로 툭툭 내뱉듯 대화하고 웃음소리는 생긴 것만큼이나 호탕하다. 의외로 말단 스태프들을 비롯해 관계자들의 이름을 외워 배려하려 애쓰는 섬세함도 가지고 있다.
최근 '천만 기념 회식'에서 윤제균 감독은 "오늘은 무조건 내가 쾌척"이라고 외쳤다. 만만치 않은 액수였겠지만 '이천만 감독'의 호탕함에 어울리는 '골든벨'이었다. 이미 수억원의 제작비 부담을 안고 가면서까지 표준근로계약서 체결을 시도해 스태프들의 처우 개선에 앞장선 인물이다. '되는 것'과 '잘하는 것', 또 '해야만 하는 것'만 생각하는 '부산 남자'다. 까짓 회식비 한번 시원하게 쏘고 좋은 소리 좀 듣겠다는데 그 당당함을 누가 말릴까.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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