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영의 근대문학을 읽다] 신여성 윤심덕은 왜 자살했을까

입력 2015-01-31 05:00:00

윤심덕
윤심덕

1926년 8월 4일 새벽 4시 일본 시모노세키를 출발하여 부산으로 향하는 연락선에서 조선인 남녀가 투신자살을 한다. 약간의 현금과 시계 등 장신구가 그들이 남긴 유품의 전부였다. 이 남녀는 '사의 찬미'로 유명한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과 와세다 대학 영문학부 출신의 극작가 김우진. 두 사람 모두 당시 30세였다. 목포 재벌의 아들인 기혼자 김우진과 신여성 윤심덕의 비극적 사랑은 이렇게 끝을 맺었다. 이들의 정사(情死)는 당시 조선 사회에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고, 이후에도 낭만적 사랑의 전설로 회자되었다. 윤심덕은 왜 자살했을까. 김우진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을까.

조선총독부 관비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 우에노 음악학원으로 유학을 떠났던 윤심덕이 조선으로 귀국한 것은 1923년 6월이었다. 우에노 음악학원 조선 최초의 유학생이며 조선 최초의 여자 성악가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귀국했지만, 그녀가 접한 조선의 현실은 차가웠다. 조선사회에는 '소프라노'가 부르는 '클래식' 음악을 들을 만한 청중이 없었고, 노래 부르는 일은 기생들의 전유물로 인식되고 있었다. 윤심덕이 부딪친 벽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사회진출의 유일한 기회였던 교원 임용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경제적으로 궁핍했으며, 결혼할 기회도 마땅치가 않았다. 조혼의 풍습에 따라 많은 남성이 이미 결혼한 후여서, 부호의 첩이나 재취 자리밖에 남아 있는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윤심덕의 재능은 1920년대의 조선에서는 불필요했고, 그녀의 열정은 사회를 불편하게 할 정도로 과다했다. 그녀가 선택한 사랑 역시 사회적으로 용인되기 어려웠다. 이와 같은 현실 속에서 윤심덕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피폐해져 갔다. 사회를 향한 모든 문은 이미 닫혀 있었으므로 투신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이 아니더라도 윤심덕에게 남겨진 미래는 별로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 당시 모든 신여성들이 봉착한 문제이기도 했다.

염상섭의 '너희들은 무엇을 얻었느냐'(1924)는 당대 신청년들의 삶과 애정관계를 통해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너희들은 무엇을 얻었느냐'에 등장하는 덕순과 마리아는 여학교 출신의 엘리트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물론 일에도 성공적이지 못하다. 그들은 충동적이며, 자신의 선택과 결정을 쉽게 번복할 정도로 불안정하다. 이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타인에게서 자신의 삶의 지표를 발견할 정도로 주관이 없다. 심지어 사랑의 감정조차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주체성이 결여되어 있다.

조선 최초의 여학교인 이화학당이 설립된 것이 1886년, 이로부터 불과 50년도 되지 않은 시기, 소설 속 신여성은 내외법과 조혼의 풍습이 여전히 강건한 조선 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열정은 방종함으로 치부되었으며, 재능은 어디에도 쓸모없는 무용한 것으로 폄하되었다. 이 닫힌 사회 속에서 누군들 죽음에 이를 정도의 히스테리를 일으키지 않을 수가 있었을까. 염상섭 소설의 여학생 출신 주인공들이 삶과 사랑에서 실패하듯이 다수의 신여성들이 실제로 윤심덕과 같이 비극적인 삶의 경로를 밟아갔다. 그럼에도 이들 신여성은 자신의 열정과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 덕분에 여성을 향한 조선 사회의 문은 조금씩 열리기 시작하였다. 지금 한국 여성들이 누리고 있는 기회는 이런 조선 신여성의 열정과 꿈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정혜영 대구대 기초교육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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