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유통단지]<상>무너지는 지구단위계획…정체성 잃은 '종합유통단지'

입력 2015-01-27 05:00:00

26일 오후 대구 북구 산격동 종합유통단지 내 전자관. 장사가 잘 되지 않고 임대상가 공실이 증가하면서 빈 공간에 가구업체들이 잇따라 들어서고 있다. 작은 사진은 텍스빌 외관. 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26일 오후 대구 북구 산격동 종합유통단지 내 전자관. 장사가 잘 되지 않고 임대상가 공실이 증가하면서 빈 공간에 가구업체들이 잇따라 들어서고 있다. 작은 사진은 텍스빌 외관. 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대구 유통의 핵심거점을 목표로 출발한 북구 산격동 종합유통단지가 위기를 맞고 있다. 산업용재관 등 일부 공동관을 제외하고는 장사가 안 되거나 설립 당시 목표를 상실하면서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다. 공동관 조합원들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대구시는 이해 당사자 간 갈등을 우려해 눈치 보기에 급급하고 있다. 위기에 처한 종합유통단지의 실태와 대책 등을 살펴봤다.

◆무너져 가는 지구단위계획

23일 오후 종합유통단지 텍스빌. 이곳은 애초 침장, 침구류, 공예품류, 패션 소품 등 섬유 관련 제품을 50% 이상 판매하도록 돼 있다. 나머지는 다른 공동관이 독점적으로 판매하지 않는 품목에 한해서 판매를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2층과 3층에는 가구업체들이 완전히 점령했다. 섬유 관련 제품보다 가구판매점이 더 많다. 최근 전자관은 "텍스빌에 가구업체가 60% 이상으로, 섬유 관련 제품보다는 가구업체가 더 많아 지구단위계획을 위반했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텍스빌 측은 적반하장이라며 반박하고 있다. 전자관에 헬스기구 판매점이 들어선 것을 문제 삼았다. 지구단위계획에 따르면 운동 및 경기용품은 텍스빌만 판매할 수 있는 고유 품목이기 때문이다. 텍스빌 측 관계자는 "전자관도 취급 품목 제한 규정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전자관은 1997년에도 텍스빌 1층에 전자제품 매장이 있다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고, 소송으로까지 비화됐다. 대법원까지 가는 진통 끝에 2012년 텍스빌 전자제품 매장을 철거하는 것으로 판결이 난 바 있다.

대구시가 2012년 고시한 지구단위계획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취급 품목 제한 규정을 위반하지 않은 공동관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공구류를 전문으로 판매하는 산업용재관과 전자부품이나 주변기기를 판매하는 전자도매상가에 전선, 발전기, 전동기 등을 판매하는 점포도 있다. 하지만 지구단위계획에는 이들 점포는 전기재료관에 위치해야 한다. 일반의류관에는 텍스빌에서만 판매할 수 있는 커튼, 이불, 요 등을 판매하는 점포가 있다. 기업관에는 커피숍 등 휴게음식점이 있다.

김광식 종합유통단지관리공단 이사장은 "빈 점포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다른 공동관에 간 점포도 있다"고 했다. 김원조 텍스빌 조합이사장은 "장사가 안 되는 탓에 해당 공동관과 크게 관계없는 점포가 영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애꿎은 가구업체만 난립

산업용재관과 전기재료관, 전기조명관을 제외한 공동관에는 늘어나는 빈 점포를 가구업체들이 속속 채우고 있다. 텍스빌, 전자관, 기업관에 가구업체들이 입주해 있고, 엑스코 지하에도 가구업체들이 영업하고 있다.

종합유통단지에 가구 전문관이 없다는 점을 교묘히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텍스빌은 10여 년 전부터 가구업체가 입주했고, 전자관은 2, 3년 전부터, 기업관은 1년 전부터 가구업체를 입점시키고 있다. 가구업체가 비교적 넓은 공간을 차지한 탓에 업체 수는 적어도 임대료를 받기에 유리한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하지만 가구업체가 난립하면서 과열 경쟁으로 수익이 점점 떨어지는 실정이다.

한 가구업체 관계자는 "가구업체가 너무 많아 서로 경쟁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각 도매단지들이 빈 공간을 메우기에 가구업체가 가장 손쉽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기업관의 한 사업주는 "종합유통단지는 완전히 실패작"이라며 "도매단지마다 빈 매장을 가구업체를 끌어들여 땜질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심각한 부익부, 빈익빈

경기가 침체하면서 종합유통단지 내 공동관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도 심각하다. 산업용재관과 전기재료관, 전기조명관 등은 상당한 수익을 내는 반면 그 외 공동관은 심각한 매출 하락에 허덕이고 있다.

볼트, 너트, 공구류 등 산업용품을 취급하는 산업용재관은 전국 최대 규모라는 이름에 걸맞게 각종 공구류를 판매하면서 가장 장사가 잘되는 곳으로 꼽힌다. 실제 산업용재관은 최근 80여㎡(25평)에 5억원이 넘는 가격에 매매되기도 했다. 전선, 조명, 변압기 등을 취급하는 전기재료관과 각종 조명기구를 판매하는 전기조명관도 비교적 수익이 괜찮다. 하지만 두 공동관 모두 부지가 9천여㎡에 불과해 규모를 더 키워야 한다는 의견도 없지 않다.

이 때문에 지난해 제2관 설립을 위한 용역 조사를 하기도 했다. 당시 종합유통단지 인근의 철강공단을 이전시키고 그 부지에 제2관을 설립하거나 향후 개발될 검단들에 제2관을 설립하는 안이 제안됐다.

나머지 텍스빌, 전자관, 전자도매상가, 일반의류관, 기업관 등은 고전하고 있다. 실제 애초 분양 당시 1구좌(약 25평)에 2억~2억5천만원에 분양을 받았지만, 설립 15년이 지난 현재 2억원에도 못 미치는 실정이다. 전자관의 경우 빈 매장이 갈수록 늘어나면서 위기감이 크다.

한 상인은 "4, 5년 전만 해도 장사가 그런대로 됐지만, 지금은 정말 장사가 안 된다. 매장문을 닫고 떠나는 상인들도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김동주 전자관 조합이사장은 "대구시가 나서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창환 기자 lc15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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