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패션을 재생시키는 여인들

입력 2015-01-26 05:00:00

언니는 대학 때 일찌감치 점잖고 덩치 큰 미남 선배를 점찍어 신랑으로 택했단다. 밑에 동생은 당시 졸업하자마자 중등교사로 발령받았지만 길이 너무 멀고 털털거리는 신작로에 지레 겁먹고 오지 적응이 어려워 처녀 선생님을 그만뒀단다. 서울 태생 막내는 경상도 유학생을 만나 종부로 시집왔단다. 이런 이웃 자매 넷은 한 달에 한 번씩 끈끈한 정을 잇다가 이젠 아예 수시로 만난단다.

"동생! 오후 두 시에 지하철 3번 출구로 나와?" '나오라니… 행여 무슨 잘못을 저질렀나?' 곰곰이 생각하며 약속시간에 맞춰 나갔는데 만나자마자 대뜸 따라오랬다. 당황하며 뒤따른 곳은 의류점, '옳지, 언니가 내게 조언을 구하려는 모양이구나.' 예상은 빗나갔다. 디자인이 맘에 들어 미리 봐 놓았다며 입어 보랬다. 하지만 이건 아니라며 버텼단다. 과분하고도 마음이 허락하지 않아 극구 사양한 나머지 그날은 그냥 넘어갔단다. 자신도 그 나름대로 베풀긴 했지만 또 다른 날은 뿌리칠 수 없었다는 것. 언니는 두 동생들에게도 똑같이 그랬단다. 어쩐지 옷가지가 더러더러 바뀌었나 보다. "언니께서 또…?" 묻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답은 급히 돌아왔다.

하루는 언니 모르게 두 동생에게 전화로 언질을 줬단다. 집단 토의하자며 제의했다는데 반기가 아니고 진정 마음만 주고받는 정(情)을 간직하자는 뜻. 아무리 넘치는 정에 베풀기 좋아하지만 경제적 부담이 뒤따라서 그랬다나. 이걸 문제점으로 제시해 브레인스토밍을 거쳤다는 것. 화두의 해법은 입던 옷을 주거나 돌려 입기로 했단다. 여성들에겐 결코 쉽지 않은 결정, 패션을 재생시키기로 합의점을 찾은 결과 의류에 비해 핸드백은 더더욱 무난하단다.

송구영신의 경계 선상에서 훈훈한 온정이 넘쳤다. 자선냄비나 주민자치센터에 얼굴 없는 천사들이 내민 통 큰 기부도 있었다. 언뜻 생각하기에 삶이 넉넉했을까, 그렇진 않다. 삯바느질과 노점상은 물론 폐지 줍는 노후의 고난과 역경도 보람으로 여겼으리라. 이렇듯 우리 민족의 내심은 초근목피로 살아와 넉넉지 못한 과거도 있었고, 배우지 못한 자신을 달래기 위해서도 장학금을 쾌척한다. TV 뉴스 끝에는 연중 이웃돕기 성금 자막이 줄줄 뜨고, 신문의 화보에도 성금액판을 함께 들고 환한 웃음을 짓는다. 사람 사는 세상은 이런 것. 진정 아름다운 삶이 있어서 선진국 대열에 앞장섰으리라.

여성들은 몸매도 다르고 디자인 등 취향도 다르다. 하지만 모두 동감을 표시하면서 정도의 차이(?) 단연코 넘어간단다. 이게 물꼬였을까, 지인들과 이웃에도 물감 번지듯 조용히 퍼진다며 자랑한다. 수선집도 바쁘단다. 허름한 종이 가방은 패션을 재생시키는 매개체였나 보다.

시인'전 대구시앞산공원관리사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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