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5년 11월 1일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대지진이 발생했다. 만성절이라 성 빈센트 대성당은 입추의 여지가 없이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성직자가 "이 축제의 날에 우리 모두 주님을 즐거워합시다"라고 외치는 그 순간, 성당의 벽이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종탑은 바람 앞의 갈대처럼 휘청거렸고, 종은 미친 듯이 울려댔으며, 촛대는 바닥으로 사정없이 내동댕이쳐졌다. 그날 만성절에 리스본에서 정확히 몇 명이 목숨을 잃었는지를 아는 사람은 없다.
리스본의 참사는 사람들 신앙의 기초를 뒤흔들었고 하나님의 선한 창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도록 만들었다. 하나님은 도대체 그때 무엇을 하셨단 말인가? 하나님이 악을 막기를 원했으나 그렇게 하실 수 없었는가? 그렇다면 그는 무능하다. 하나님이 악을 막을 수 있었지만 그렇게 안 하시려고 하신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사악하다. 하나님은 악을 막을 수 있고 또한 그렇게 하시기를 원하셨을까? 그렇다면 악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흔히 제기되는 신정론의 삼단논법이다. 신정론은 '하나님'과 '정당성'이 합쳐진 단어로서, '악과 고통이 가득한 세상에 어떻게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 존재하실 수 있는가'를 묻는 기독교의 오랜 질문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리스본의 후손들이다. 적어도 이 문제를 피해갈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평안할 때 하나님의 존재, 능력, 그리고 사랑의 결합은 확고하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충격이 우리 존재의 터전을 흔들 때 그 연결고리는 돌연 해체되고 질서 정연하던 삶은 혼돈의 심연에 처박힌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3장에서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를 드신다. 농부는 밭에 좋은 씨를 심었지만 잠시 자는 동안에 원수들이 와서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종들이 주인께 물었다.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이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면 왜 악이 있습니까?"라는 항의의 신정론이다. 하나님을 신뢰했다 절망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나타내는 본능적인 반응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신앙의 부재라기보다는 오히려 신앙의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종들은 계속해서 "우리가 가라지를 뽑기 원합니까?"라고 질문한다. 그러나 주인의 대답은 그대로 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악을 제거하는 것이 이 땅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하나님이 가라지를 제거하듯이 악을 제거하신다면 이 땅에 살아남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러므로 이 질문은 하나님의 인격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다.
그렇다면 악은 어떻게 되는가? 주인은 "추수 때에 가라지는 태우고 알곡은 곳간에 들인다"고 말한다. 종말에 모든 악이 제거될 것을 말하는 것이다. 세상은 악으로 끝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지막이어서는 안 된다. 역사의 중간을 사는 우리의 관점으로는 이 악이 어디서 왔는지 다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 악이 하나님의 불구대천의 원수임을 안다. 하나님은 고통하는 자들의 울음소리를 지금도 들으신다. 하나님은 이 악과 싸우기 위해 십자가의 능력으로, 사랑의 능력으로 오늘도 임하신다. 그러므로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악이 우리를 덮친다 해도 하나님의 정의를 믿고 그분과 함께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누가 나의 진정한 친구라는 사실을 정말로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와 함께 인생길을 걸어보는 것뿐이다!
박창식 달서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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