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한 이유는 '덕수'와 같은 아버지 세대 희생 덕분
현 세대 더 누리겠다고 부담 떠넘기면 우리 자식들이 '장그래'와 같은 신세
지난해 12월 중순 개봉된 영화 '국제시장'이 새해 들어 한 달도 채 안 돼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6'25전쟁을 겪으면서 폐허 위에 오늘의 한국을 만든 아버지 세대의 애환을 그린 영화가 예상 밖으로 중'장년층은 말할 것도 없고 젊은 층까지 폭넓게 관심을 불러 모은 것이다.
국제시장의 흥행 돌풍과 관련하여 일부 진보 인사들의 이념 공세도 있었지만 영화 속 몇몇 장면에서 많은 관객이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듯이, 한 가장의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가족애를 그린 영화 그 자체로 보아야 한다는 여론에 묻혀 버렸다.
국제시장의 주인공인 덕수가 살아온 세대나 6'25전쟁 이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들은 분단의 고통과 지독한 가난을 직접 경험한 세대들이다.
이들은 종종 그 시대의 어려웠던 생활상과 성공담을 자랑삼아 이야기하면서 요즘 젊은 세대의 나약해진 정신 자세를 질타하곤 한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물질적으로 비교적 풍요를 누리며 살아온 젊은 세대들은 할아버지나 아버지 세대가 겪은 애환을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쯤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오늘날 취업'구직전쟁에 내몰리고 있는 젊은 층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래도 아버지 세대는 가난 속에서도 노력하면 부자가 되고 좋은 직장을 얻어 가정을 꾸리며 신분 상승도 할 수 있는 '희망의 시대'로 비칠 수 있다. 말하자면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희망의 사다리 세대였다고 할 수 있다.
세대 간 인식과 가치관은 자라온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서로의 입장만 앞세워서는 대화의 단절로 치닫게 된다.
한국도 근래 들어 저성장'고령화로 인해 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성장이 둔화되고 활력이 떨어지는 정체 조짐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 가운데 특히 심각한 문제가 청년실업이다. 청년 취업문이 날로 좁아지고 있어 부모에 기생해서 살아가는 '패러사이트족'이나 취업을 아예 포기하거나 취업할 의사조차 없는 '니트족'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설령 취업이 되더라도 아르바이트나 드라마 미생의 장그래처럼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88만원 세대' 혹은 연애'결혼'출산에 이어 인간관계와 내 집 마련을 포기한 '5포 세대'가 요즘 젊은 층의 자화상이다.
선진국의 사례에서 보듯 저성장'고령화 현상은 필연적으로 세대 간의 갈등으로 귀결된다. 노동력 없는 노인과 경제적인 부담을 떠맡아야 하는 젊은이 간의 갈등을 묘사한 폴 윌리스의 저서 '에이지-퀘이크'(age-quake)나 축복받는 늙은이와 수탈당하는 청년 간의 대결 구도를 그린 알버트 브룩스의 '2030 그들의 전쟁'도 모두 일자리와 복지비용 부담을 둘러싼 세대 간 전쟁을 묘사한 책이다.
우리보다 먼저 세대 갈등을 겪고 있는 선진국들은 세대 간 일자리 충돌과 미래 세대에 대한 복지 부담 전가를 최소화하기 위해 여러 대책을 마련해 추진하고 있다. 예를 들면,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를 막기 위한 저출산 대책, 노인 일자리 확대를 위한 임금피크제나 정년 연장 추진, 청년 일자리 확대를 위한 벤처'창업 활성화, 미래 세대 부담을 덜기 위한 연금'재정 개혁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영화 국제시장에서 덕수와 같은 아버지 세대의 헌신적인 희생으로 오늘의 한국이 있듯이 현 세대의 희생과 고통 분담 없이는 미래 세대를 위한 개혁은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현 세대가 더 누리겠다고 아버지 세대의 희생과 헌신의 과실을 독식하는 것도 모자라 미래 세대에게 부담을 떠넘긴다면 결국 그 불균형은 부메랑이 되어 현 세대의 노후조차 무너뜨리는 재앙이 될 수 있다.
바로 우리 자식들이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떠돌게 되는 장그래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정부는 날로 추락하는 잠재성장력을 높이기 위해 공공, 노동, 교육, 금융 등 4대 부문의 구조 개혁을 강력히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기득권층의 양보와 협조 없이 성과를 내기란 불가능하다.
청양의 해인 올해엔 지금까지 나에게로만 향했던 눈길을 돌려 주변의 이웃도 함께 살펴봤으면 한다.
대구가톨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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