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풍족하게! 맛있게! 건강하게!

입력 2015-01-23 05:00:00

미국으로 유학길을 떠난다는 아들을, 최씨에다 곱슬머리인 호랑이띠 우리 어머니는 눈물을 참으시며 언제나처럼 강한 모습으로 지켜봤다. 하지만 성악은 미국이 아니라 오페라, 칸초네의 나라 이탈리아이다. 나는 미국으로 갈 수 없었다. 김포공항에서 비행기표를 바꿔 이탈리아로 떠났다.

어머니에 대한 배신! 이기적인 내 꿈의 결실은, 혹독하게 십사 년 피렌체 생활에 반영되어졌다. 비자가 없으니 불법 체류자가 되었고 어머니의 경제적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25세 배고픈 성악도는 빈민구제소에서 끼니를 해결하며 노래를 했지만 성대결절에 노래도 할 수 없고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난민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피렌체의 첫 번째 한국인이었던 코레아노 킴은 어머니의 강인함과 성실함을 바탕으로 열심히 생활했고 기회의 땅이었던 피렌체는, 친구이며 스승이고 큰 형님 같은 까를로를 만나게 해주었다. 비자 문제가 유태인 친구 까를로 덕분에 해결되었다. 까를로와 함께한 무역회사도, 여행사도 내게 풍요로움을 주었지만 30년 전 너무도 배고프고 추웠던 그 겨울을 모닥불처럼 따뜻하게 녹여주었던 사람들과 음식들을 잊을 수 없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빈민구제소에서의 음식 중 하나는 마늘과 고추, 올리브오일만으로 만든 심플한 파스타. 알리오 올리오 에 뻬빼론치노다. 식었지만 맛있는 간단하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스파게티다. 가장 쉽지만 셰프들이 만들기 싫어하는 정말 어려운, 싸늘하게 식었지만 셰프의 연륜을 느낄 수 있었던…. 그리고 어릴 때부터 유난히 좋아했던 닭고기. 정식 이름은 리보르노식 닭요리지만 한국에서 어머님께서 해주시던 닭볶음탕과 같다고 할까. 마늘, 감자, 양파, 당근, 닭고기에 토마토, 화이트와인, 허브향 올리브오일…. 하얀 쌀밥이 없어 쓱쓱 비벼 먹을 순 없었지만 정말 기억나는 음식이었고 허기를 달래주던 한 끼의 고마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강렬한 빈민구제소의 기억은 지금도 나의 식당을 찾아오는 많은 손님이 꾸중하고 걱정하는 양 많은 나의 요리 철학의 바탕이 되었다.

이탈리아 남자들은 윗배가 심하게 나와 있다. 많이 먹어서다. 하지만 그들은 오래도록 건강함을 유지한다. 그 이유는 건강한 식단에 있다고 믿는다. 마늘, 양파, 올리브, 토마토, 레드와인. 음식에 빠지는 법이 없는 다섯 가지다. 마늘과 양파는 한국 사람보다 많이, 그리고 생으로 먹는다. 올리브유와 레드와인은 테이블에 항상 있었으며 내게는 과일이던 토마토는 조리해서 먹는 채소. 마블링이 없지만 스테이크에 올리브유를 듬뿍 뿌려 지방과 단백질을 함께 섭취하고 적포도주 한잔으로 콜레스테롤의 산화를 억제시켜 주는 센스! 앙상블의 끝은 진한 한 모금의 레드와인.

이 글을 읽는 누구든 도전해보자. 풍족하게! 맛있게! 그리고 건강하게!

김학진 요리 칼럼니스트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