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군상들

입력 2015-01-22 07:23:16

영화를 즐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몇몇 감독들의 작품에는 적잖은 흥미가 있다. 특별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봐도 좋고 나중에 보더라도 별 부담 없는 영화가 좋다. 홍상수의 영화도 그 중 하나다.

그의 영화 속에선 우리 주변의 예술가(또는 지망생) 혹은 그들이 속한 대학의 광경을 자주 접할 수 있다. 홍상수 본인의 직업이기도 한 영화감독을 비롯하여 작가, 평론가, 교수, 학생 등이 주로 등장하는데 이들은 대부분 희화화된 인물로 그려진다. 영화 자체가 특유의 풍자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풍자의 힘도 결국은 이들 등장인물의 특성으로부터 연유하기 마련이다.

개인적으로는 놀랄 정도로 사실적인 부분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는 그의 영화를 좋아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기도 하다. 대학 시절을 비롯하여 그간 주변에서 함께 해온 이들의 모습이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소위 예술을 하거나 예술을 하려는 군상들이 보여주곤 하는 특유의 모순이나 궤변 등을 영화는 능청스럽게 그려내고 있다.

일례로 자신의 예술론에 제자들이 일제히 감동하고 환호해주기를 꿈꾸는 대학교수 혹은 애인에게 심오한 철학에 대해 설명하길 즐기지만 정작 사랑 앞에서는 서툰 영화감독의 모습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어딘가 허를 찔린 기분을 들게 한다. 더러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웃게 하기도 한다. 일종의 부끄러운 폭소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부분에 공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데 있다. 한때는 여성 관객들이 꼽은 최악의 영화 등으로 선정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러한 평가로부터도 자유로워진 듯하다. 군상의 시각으로 만든 군상들의 영화인 까닭일까. 무엇보다도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은 공통적으로 권위에 취약하다. 풍자의 좋은 먹잇감이다. 예술가로서의 권위도, 남성으로서의 권위도 내세우면 내세울수록 코미디가 된다.

이는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구나 자신의 권위나 주장만을 내세우는 사람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정작 그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우리 사회의 모순적 구조를 보여주는 예다. 그러나 영화에서도 볼 수 있듯 이는 때로 가벼운 코미디로 비춰지기도 한다. 흔한 일상의 장면이다.

홍상수의 영화는 결국 예술 하는 사람들에 대한 풍자인 동시에 우리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바꿔 말하자면 예술 하는 사람들 역시 우리 사회의 평범한 일원이라는 뜻이다. 작은 일에 분개하지만 정작 큰일 앞에선 한발 물러나곤 하는 소시민의 모습. 그의 영화 속에서도, 일상에서도 만날 수 있는 예술가의 초상이다. 물론 모든 예술가들이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는 않듯이.

이승욱 대구문화 취재기자

최신 기사